가본 곳

늪으로 가는 생태여행 (3) 창녕의 습지

김훤주 2021. 10. 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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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에 가려진 원석,

당당히 제 빛 뽐내는 보석

 

대봉늪, 숲속에 서면 꿈 같은 풍경

제방 따라 걸으면 또 다른 매력

가항마을 앞에 자리한 작은 늪,

습지 경관·관개수 제공 두 역할

1976년 개간사업 후 생긴 대학늪,

너른 들판 중심에 고요한 습지

 

창녕은 우포늪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창녕에 우포늪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게 보면 창녕은 우포늪 말고 다른 습지를 찾아내 사람들이 탐방할 수 있도록 가꾸고 꾸밀 필요가 있다. 갈수록 우포늪으로 집중되는 탐방 압력을 골고루 흩어놓으면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할 그럴듯한 습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열매를 따야 한다는 조급한 기대를 접고 차근차근 해볼 만하다. 초목을 심고 길을 내고 포토존을 설정하면 사람들이 꾸준하게 찾을 습지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봉늪 = 대봉늪은 창녕 장마면 대봉리 422-6 일대에 있다. 화왕산에서 발원한 계성천이 낙동강을 향해 나아가는 어귀에 형성된 습지인데 그 바로 위에 대봉마을 민가와 농지가 놓여 있다. 한 번 보기만 하면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공영교 다리에서 내린 다음 제방에 올라 길 따라 상류를 향하면 만날 수 있다. 조용히 흐름을 잊은 물줄기가 먼저 나오고 뒤이어 크거나 작게 무리를 이룬 버드나무들이 다양한 높이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스치는 바람이 사람만 지나가는 것은 아닌 모양인지 버들 군락도 아래위로 출렁인다.

상대포교 다리에서 바라본 계성천 전경.

자동차가 한 대 다닐 만한 콘크리트 도로는 제방 위에서 습지 한가운데로 내려가면서 여름철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에 잠길 정도로 낮아진다. 습지의 속살은 여기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양쪽으로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높이 자라지 않았고 둥치도 한 아귀에 들어올 정도로 가늘어서 부드러운 느낌이 한결 더하다.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대봉늪은 약간 어둑어둑하면서 희끄무레하다. 여기에 햇살까지 그늘을 잘게 가르면서 내려서면 분위기는 좀더 몽환적으로 바뀐다.

위로는 새로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린 나뭇잎이 하늘거리고 숲속에서는 공기가 부윰한 기운을 일으키면서 몽글거리고 있다. 바닥에 미치는 햇살은 그다지 세지 않은 편인지 그 아래로는 억세지 않은 풀들이 곱게 자라나 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돌아서면 자리를 깔고 잠깐 머물 만한 공간도 나온다. 노랑어리연이 동동 떠 있는 물웅덩이와 푸른 잎사귀로 그를 둘러싼 나무들이 잘 어울린다. 가만 앉았으면 바람도 햇살도 나를 위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장마면 대봉리 422-6으로 검색해도 되지만 공영교로 검색하면 가장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

대봉늪에서 볼 수 있는 습지의 부드러운 속살 모습.

공영교성사교상대포교 제방 = 계성천은 대봉늪 말고도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여럿 베풀어놓았다. 공영교에서 대봉늪이 있는 상류로 올라가는 대신 아래로 길을 잡아 걸어도 그럴듯한 습지 경관이 이어진다. 공영교성사교상대포교로 이어지는 2남짓한 거리다.

봄이 지나고 여름 기운으로 접어들면서 제방에는 제법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무릎 높이에서 출렁인다. 찔레와 산딸기는 군데군데 꽃을 피우고 뽕나무는 까맣게 오디가 익어가고 있다. 건너편으로 눈길을 던지면 푸른색으로 둥그스름한 버들 군락이 멀리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봉늪에서는 걸으면서 버들 군락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지만 여기 제방에서는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할 뿐 숲속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제방을 타고 넘는 바람은 대봉늪에서보다 두어 배는 더 시원하다. 주소는 남지읍 성사리 542-48과 남지읍 신전리 957인데 성사교와 상대포교로 검색하면 좀더 편하다.

전형적인 습지 경관을 보여주는 가항늪.

가항늪 = 유어면 가항마을 앞에 있다. 우포늪이 뒤편으로 바로 붙어 있는데 가항은 목덜미()를 더한다()는 뜻이다. 15801581년 창녕현감을 지냈던 한강 정구가 마을 뒤편 야산의 움푹하게 꺼져 있던 목덜미를 돋우는 토목공사를 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원래 가항마을은 이를테면 메기가 하품만 해도 꺼진 목덜미를 따라 물난리가 들었던 데다. 한강 정구 덕분에 물난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농사도 좀더 안정되게 지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러면서 마을 앞쪽에 하나 남은 조그만 습지가 가항늪이다.

사방이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마을 뒷덜미를 돋운 공사 덕분에 우포늪과 이어지는 물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습지 경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주는 역할을 겸하고 있다.

가항늪은 이처럼 습지의 심미적 효용과 실재적인 쓰임새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옛적에도 사람이 습지에게서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향을 주기도 했음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들판 한가운데에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학늪.

대학늪 = 대학늪은 그럴듯한 습지 경관을 품은 채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한낮에 가면 햇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할 정도로 조용하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지금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은 채 50년도 되지 않았다.

1975년 안동댐이 낙동강 상류에 들어서면서 홍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1976년 낙동강 하류 창녕군 유어면에 대단위 종합개발계획이 착공됐다. 세거리벌과 사말리벌을 개간하는 사업이었는데 그전에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저습지가 태반이었고 농지조차 해마다 수해를 겪어야 하는 실정이었다.

세거리벌과 사말리벌이 농지로 바뀌면서 마주치는 지점에 습지를 하나 남겼는데 바로 대학늪이다. 이런 내력을 알고 보면 대학늪과 주변 들판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데 습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찾아가볼 만하다.

 

이 가운데 탐방로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있는 데는 가항늪뿐이다. 젊은 부모들이 어린아이 데리고 간다면 2층 조망대까지 갖춘 가항늪이 가장 좋고 다음으로는 대봉늪도 그럭저럭 괜찮다. 어른들끼리 둘러보고 걷는다면 대봉늪과 공영교성사교상대포교 제방이 먼저이고 나머지는 그 다음이다.

 

경남도민일보 202152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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