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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으로 가는 생태여행 (5) 낙동강 따라 걸어보는 옛길

김훤주 2021. 10. 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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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넉넉하게

걷는 이 맞아주는 낙동강

 

2000년대 걷기 붐에 벼랑길 부활

창녕 남지·임해진개비리길 유명

함안 합강정·반구정에 오르면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에 감탄

 

낙동강 물은 사람이 서두르지 않고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흐른다. 남강과 밀양강처럼 굵은 지류를 만나면 흐름이 더욱 느려져서 커다란 호수와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경남에서 낙동강은 이처럼 넉넉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강물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흐른다. 가늘고 굵은 다른 물줄기도 받아들이고 높고 낮은 산을 만나면 그 발등도 적셔준다. 낙동강이 이들과 만났다 헤어지는 어귀에는 모래톱이 펼쳐지고 수풀 무성한 둔치가 자리를 잡았다.

강가 벼랑에는 옛길이 남아 있다. 대부분 사라졌다가 2000년대 들어 걷기 바람이 불면서 되살아난 몇몇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길을 생활상 필요에 따라 오갔고, 요즘 사람들은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오가고 있다.

반구정 느티나무 아래에서 바라보는 풍경. 유장하게 굽이치는 낙동강 너머로 남지 읍내와 남지철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지개비리길 = 남지 용산마을과 창아지마을을 잇는 길이다. 왕복 6남짓인데 잘 다듬어져 있다. 개는 물가를 뜻하고 비리는 벼랑을 일컫는 경상도 지역말이다. 말하자면 강가 벼랑에 나 있는 길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고 두 사람만 마주쳐도 비좁은 길이었다. 지금은 옛날처럼 좁은 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럿이 함께 걸어도 좋을 만큼 적당하게 널찍하다.

영아지마을에서 마삭줄이 감싸고 있는 흙길을 걸어 들어가면 시원한 강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온다. 가슴을 펴고 코를 벌렁거리면서 걷다 보면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여럿이 올라가도 될 정도인데 바라보는 낙동강이 일품인 곳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눈을 부시게 한다. 걷는 길은 벼랑 위에 놓여 있다.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느낌이 절로 든다. 조용하게 출렁이는 강물이 무서워질 정도다. 중간 즈음에서 대나무숲을 만나 안으로 들어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어둑어둑할 정도로 우거진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살이 스며들고 있다.

대숲을 지나면 강가에 정자가 있고 옆에는 큼직한 플라타너스가 한 그루 멋스럽게 자라나 있다. 지금은 초록으로 싱싱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화려하고 겨울이면 남김없이 버리고 텅 빈 줄기와 가지가 늠름하다. 이쪽 강물이든 저쪽 산기슭이든 어느 것을 배경으로 삼아도 멋진 자리다. 이쯤에서 앉아 놀다가 발길을 돌려도 좋고 용산마을 끝까지 걸어가도 나쁘지 않다. 아니면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전설이 서려 있는 마분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골라잡아도 좋다.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아 누구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산길이다.

옛날과 달리 군데군데 안내판이 있고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주차장이 상류 남지읍 신전리 943과 하류 용산리 144-1에 제각각 마련돼 있다.

남지개비리길 중간 즈음에서 만나는 대나무숲. 맑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임해진개비리길 = 남지개비리길보다 먼저 알려졌고 명성도 높았던 것이 바로 임해진개비리길이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벼랑길 안쪽에 있는 노리마을 사람들이 남지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86년 육군부대가 콘크리트 도로를 닦았으나 좁고 꼬불꼬불해 자동차가 다니기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절벽을 깎고 길을 넓히면서 아스팔트를 깔았다. 자동차가 다니기는 더 편해졌지만 걷는 맛은 많이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걸으면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눈맛은 여전히 살아 있다. 건너편으로 둥글게 굽이치면서 펼쳐지는 둔치와 그 아래에 형성된 모래톱이 아주 근사하다. 왕복 2남짓인데 자동차는 부곡면 노리 828 강나루휴게소 근처에 세울 수 있다.

합강정반구정 산길 = 창녕에 남지개비리길이 있다면 함안에는 합강정반구정 산길이 있다. 대산면 장암리 산 60-25 장포제방 끝자락에 자동차를 세우면 덱로드 계단이 눈에 띈다. 걷는 내내 평탄한 길인데 하나같이 나무 그늘이 내려와 있다. 낙동강을 끼고 걸으면서 풍경에 감탄 몇 번 하고 사진 몇 장 찍다 보면 금세 합강정이 나타난다.

여기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거대한 호수 같다.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한 직후라서 흐름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정자 이름 합강도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정자 앞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 앉으면 그 조용한 정경이 가만히 안겨든다.

정자를 둘러본 다음에는 반구정으로 향한다. 위쪽으로 올라가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개망초와 싸리에만 꽃이 피었을 뿐인데도 향기가 코끝을 감싼다. 살짝 비탈져 있지만 설렁설렁 걸으면 땀도 나지 않고 힘도 거의 들지 않는다.

들머리 남방바람꽃 자생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에 서면 유장하게 굽이치는 낙동강 너머로 남지 읍내와 남지철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향기를 담은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이다. 왕복 2.5가량이다.

용화산 산길에서 내려다본 낙동강 벼랑과 남지철교 .

용화산 산길 = 함안군에서 내어놓은 용화산트레킹길의 일부분이다. 남지철교 앞 능가사에서 시작해 뒷동산 정상까지 350m, 거기서 다시 건너편 도흥저수지까지 350m 거리이다. 오르내리면서 낙동강 풍경과 숲속 정경을 모두 누릴 수 있다.

도흥저수지에서 반구정까지는 2정도 떨어져 있다. 절반은 평지이고 나머지도 비교적 평탄한 산길이다. 마음 내키면 반구정은 물론 합강정까지 가서 느긋하게 둘러보고 와도 되는 거리다.

 

경남도민일보 202162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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