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은 며칠 전 줌(Zoom)으로 화상 송년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미리 받은 먹거리 꾸러미를 풀어 맥주를 마시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원래 공부 모임이다 보니 한 시간은 화면공유 기능을 통해 파워포인트를 보며 강의를 들었고, 이후엔 각자 근황과 내년 계획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술집에서 왁자지껄 보내는 송년회보다 오히려 의미와 재미가 더했다.
코로나19는 올 한 해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줬다. 한 지인은 요즘 웬만한 회의도 줌이나 구글 미트(Meet)로 한단다. 덕분에 단 한 시간 회의를 위해 왕복 10시간 이상 서울을 오가는 일이 사라진 게 너무 좋단다. 나도 올 하반기 들어 세 개의 강의를 영상으로 녹화해 보냈고, 두 번의 강의는 줌을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했다. 그중 하나는 김해시 민주시민교육 활동가 양성과정이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접속해 적극 의견을 내고 질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말에도 꼼짝없이 집에만 있다 보니 지저분한 집안 꼴이 눈에 들어왔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납과 정리정돈의 기술을 익히고 실행했다. 옷장과 냉장고, 주방과 세탁실 등이 새롭게 바뀌었다. 외식이 줄다 보니 모바일 앱을 통해 배달음식을 먹는 일이 크게 늘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파트 쓰레기 집하장에는 온갖 플라스틱 음식 포장재가 매일 산처럼 높아져 갔다. 죄책감이 들었다.
식료품 구입은 그나마 포장재가 가장 적고 친환경 종이봉투로 배달해주는 이마트 쓱(SSG) 배송을 택했다. 그걸로 요리에 도전했다. 그 결과 두부조림과 고등어조림, 된장찌개, 어묵탕·볶음, 닭백숙, 멸치국수, 돼지수육, 카레밥, 볶음쌈장 등 나만의 요리기법이 탄생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저녁이 있는 삶'이다.
술자리가 사라지고 여유시간이 늘었다. 마침 내년에 조기퇴직을 계획한 터라 노후설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전혀 모르고 살았던 자산관리에 눈을 뜨니 쓸데없이 가입한 보험이 너무 많았다. 거기서 매달 나가는 돈도 적지 않았다.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싹 해지한 후, 실손의료비보험과 순수보장형 질병보험만 새로 가입했다.
연금저축도 은행에서 증권사의 펀드로 옮겼다. 이걸 직접 관리하려다 보니 주식과 펀드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다.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인터넷, 특히 유튜브는 정말 보물창고였다. 없는 게 없었고 실력 있는 강사와 좋은 강의가 넘쳐났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휴일엔 돈에 대한 공부에 열중했다. 세상에나! 내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자각이 밀려왔다. 아마 올해 증시에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확 늘었다는 얘기도 코로나 덕분이지 싶다.
유럽과 미국에서 백신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곧 치료제가 나올 거라고 한다. 하지만 1년 사이에 바뀐 생활방식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다들 바뀐 세상에 잘 적응해 내년에도 살아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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