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생물 삶터로 경남 연안 첫 습지보호지역
갖은 욕설 내뱉던 개발업자
1999년 7월 19일자 경남도민일보 1면 머리기사는 봉암갯벌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 첫머리는 이랬다. “마산만의 유일한 갯벌인 봉암갯벌이 공장용도로 매립될 예정이어서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같은 해 5월에 삼원준설 등 4개 업체가 레미콘·콘크리트제품 공장 건설을 위하여 마산시 회원구 봉암동 21 지선 공유수면 1만3700평 남짓에 대한 매립 면허를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보도가 나가자 삼원준설 대표는 경남도민일보에 대하여 갖은 욕설을 섞어가며 항의했다. “텅텅 빈 채 놀리고 있는 갯벌을 메워 공장을 짓겠다는데 뭐가 문제냐?” “매립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갯벌에 오염물질도 없앨 수 있는데 반대만 한다.” “법률상으로도 하자가 전혀 없는 만큼 매립 허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개발업자 눈에는 봉암갯벌이 공한지(空閑地)로만 여겨졌다. 거기 살고 있는 게·조개, 물고기와 새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지금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은 바로 성명을 내고 반대를 천명했다. 산호동 어촌계도 마산지방해양수산청에 매립 반대 진정서를 냈다. 대립과 갈등이 오래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상황은 바로 정리되었다.
먼저 관련 행정기관이 매립에 찬성하지 않았다. 경남도청은 “매립을 하면 침수지역 확대가 우려된다”는 이유를 댔다. 창원시청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 봉암갯벌의 오염 정화 기능 저하, 홍수 피해 위험 증가’를 반대 이유로 꼽았다. 마산해양청은 환경단체 반대성명 시점에서 열흘도 되지 않은 7월 23일 ‘매립 면허 불허’ 결정을 내렸다.
마산만에 남은 마지막 숨구멍
경남도청과 창원시청의 결정은 합당했다. 둘 다 공동으로 ‘홍수 피해 위험 증가=침수 지역 확대’를 매립 불허 이유로 꼽았다. 봉암갯벌은 옛 창원지역에서 형성된 물줄기가 바다로 나가는 유일한 출구이다. 옛 창원의 모든 물줄기는 일단 창원천과 남천으로 수렴된 뒤 바다로 나아간다.
두 하천은 봉암갯벌이 시작되기 직전에 몸을 합한다. 봉암갯벌 끝머리의 옛 창원과 옛 마산을 잇는 봉암대교 일대는 하천물이 바다에 드는 초입이다. 여기가 널찍하면 홍수가 나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지금 보는 대로 좁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올 경우 물이 제때 빠지지 못하기 십상이었다.
말하자면 봉암갯벌 일대는 물론 그 상류인 창원천·남천 유역과 지천(支川)까지 물에 잠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4년 전인 2014년 8월 25일에도 비가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창원천 유역인 팔룡·명곡동 일부, 내동천(창원천의 지천) 유역인 창원종합터미널 둘레 도로, 남천 유역인 창곡삼거리~신촌광장 구간이 물에 잠긴 적이 있었다.
생태환경 측면에서 보면 봉암갯벌 매립은 더욱 천부당만부당하다. 갯벌은 생태계의 숨구멍이다. 갯벌이 매립되면 그 숨구멍이 막히는 셈이다. 동쪽 부산 가덕도에서 서쪽 거제 앞바다까지를 일러 진해만이라고 한다. 마산만은 진해만의 일부로서 가장 안쪽에 있다. 그래서 마산 앞바다뿐만 아니라 진해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마산에도 옛날에는 갯벌이 많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부터 2010년대까지 100년 동안 줄곧 매립되어 왔다. 옛 마산은 마산자유무역지역·가포신항 설치가 결정적이었으며 옛 창원은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이 결정적이었다.(이밖에 마산만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2010년에 옛 마산 옛 창원과 함께 통합되어 지금 창원시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으로는 옛 진해도 있다. 옛 진해 또한 지금은 갯벌이 대부분 매립되고 해안도 콘크리트로 직선화되었지만 예전에는 그 어느 곳보다 갯벌이 풍성했다.)
지금 마산만에서 갯벌은 봉암갯벌을 빼면 덕동에만 일부 남아 있다. 하수처리장에 꽤 많이 자리를 내어주었어도 남은 면적이 상당히 너른 편이다. 하지만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는 역할은 봉암갯벌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봉암갯벌은 심각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도심 지역과 바로 붙어 있는 반면 덕동갯벌은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산만에 남은 마지막 숨구멍이 봉암갯벌인 셈이다. 봉암갯벌은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다. 기수역은 생태환경이 다양하고 복잡하기에 다른 바닷가보다 더 많은 생물이 산다. 갯벌은 그 자체로도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거기 사는 식물·동물도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봉암갯벌은 옛 창원 지역 도심과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하나뿐인 자연 필터라 할 수 있다.(행정구역상 옛 마산에 포함되는 명주·욱곡·창포·진동에도 갯벌이 널찍하게 남아 있으나 이는 마산만 바깥 서쪽이다.)
물고기조차 살지 못했던 마산만 해역
게다가 마산만은 해류의 흐름이 거의 없다. 육지 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전체 모양이 거꾸로 세워놓은 호리병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산해양신도시를 만들겠다며 가포신항 항로 준설토로 바다(공유수면)를 매립해 더욱 잔잔한 호수처럼 되었다.
흐름이 없으면 오염은 심해지게 마련이다. 반면 마산 도심에서는 1960년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오염물질 배출이 크게 늘었다. 19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과 1974년 창원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더욱 많아졌다. 그 탓에 경남대 근처 가포해수욕장이 1975년 폐쇄되었고 1979년에는 게·조개 같은 수산물 채취가 금지되기까지 하였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는 마산만이 물고기도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의 대명사가 되었다. 마산만 일대가 1982년 해양오염방지법에 따라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된 까닭이다. 2007년 해양오염방지법이 없어지고 대신 해양환경관리법이 신설되면서 관련 육지부까지 더하여 재지정되었다. 부산 연안, 울산 연안, 광양만, 시화호·인천 연안과 함께였다. 우리나라에서 해양 오염이 가장 심각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마산만이 공인되었다는 얘기이다.
지금 마산만 해역을 특별관리하기 위한 기구로 마산만특별관리해역민관산학협의회가 있다. 이 민관산학협의회는 2007년부터 오염총량관리제를 마산만에 적용했다.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오염총량관리제란 목표 수질 달성을 위하여 오염물질의 배출 총량을 정하고 그 범위를 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제도다. 1차(2007~11년) 목표 수질은 화학적산소요구량(COD) 기준 2.5㎎/ℓ, 2차(2012∼16년) 목표 수질은 2.2㎎/ℓ였다. 2016년 마산만 수질은 COD 2.19㎎/ℓ를 보이며 목표치를 살짝 초과 달성했다.
협의회는 2017년 7월 18일 3차(2017~21년) 목표 수질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논의를 시작했다. 환경단체인 창원물생명시민연대는 목표 수질을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잡아야 한다며 COD 2.0㎎/ℓ를 내세웠다. 같은 해 9월 20일 열린 34차 협의회에서 COD 2.1㎎/ℓ로 정했다. 환경단체 요구보다 0.1㎎/ℓ 모자라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목표다.
마산해양신도시 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이 마산만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창원시청은 진해 행암만 등 마산만 내만 수질 개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조건을 내놓아 타결에 이를 수 있었다.
도심 속 생태교육 현장
마산해양청은 1999년 매립 면허를 불허하면서 동시에 생태학습장도 짓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이었다. 배경에는 마창환경운동연합이 있었다. 마창환경련은 매립 반대 과정에서 99년만 아니라 해마다 서너 차례 봉암갯벌 매립 면허 신청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봉암갯벌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를 막으려면 지역 주민들의 관심 속에 두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생태학습장 설치를 마산지방해양항만청에 제안한 직접적인 이유였다.(마창환경련은 앞서 96년부터 지역 주민과 학생을 위한 생태교육 공간으로 봉암갯벌을 활용하고 있었다.)
매립 면허 불허 결정 두 달 뒤인 9월 20일 ‘봉암갯벌 되살리기를 위한 생태디자인 발표회 및 민·관 합동 간담회’가 열렸다. 마산시청·창원시청·마산지방해양수산청·환경단체가 함께했다. 여기서 생태학습장 설치에 합의하고 ‘생태공원 조성을 위한 협의체’를 꾸렸다. 생태학습장은 이태 뒤인 2001년 12월 27일 문을 열었다. 관찰로·학습장·탐조대가 들어섰고 철새들을 위하여 조그만 인공섬도 하나 곁들였다.
마산해양청은 2008년 8월부터 교육·학습 활성화를 위하여 마창진환경련에 관리·운영을 위탁하고 있다. 생태교육·학습이 시작된 지 20년을 넘기면서 창원 지역 어지간한 유치원과 초·중학교 학생들은 다들 한 번씩은 찾은 봉암갯벌이 되었다. 이처럼 봉암갯벌은 행정기관·환경단체·지역주민·기업체가 협력하여 도심 갯벌을 되살려낸 대표 사례다.
면적 적어도 사는 생물 많은 갯벌
그래서 2008년 10월 경남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는 우포늪·주남저수지와 함께 봉암갯벌을 공식 방문지로 꼽았다. 2009년 11월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봉암갯벌과 순천만을 ‘잘 가꾼 자연유산’으로 선정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자연환경·문화유산을 시민 기부금으로 사들이고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다.
2011년 12월 16일에는 국토해양부가 습지보호지역(면적 9만2396㎡=2만8000평)으로 지정했다. 경남에서 내륙이 아닌 바닷가의 연안 습지가 지정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인 붉은발말똥게·물수리·말똥가리·흰목물떼새·검은머리갈매기와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봉암갯벌은 면적은 적지만 찾아오는 새는 많다. 새들이 많다는 말은 먹을거리=야생 동·식물이 많다는 얘기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2015년 봉암갯벌과 우포늪, 주남저수지, 화포천, 번개늪(창녕) 장척늪(창녕), 남강 유역(진주), 창포만(마산), 진동갯벌(마산), 마동호, 동대만(남해), 섬진강 하구(하동) 등 열세 곳에서 ‘철새 도래지 동시모니터링’을 했다.
여기에서 한 해 동안 봉암갯벌을 찾은 새들의 종류는 57가지였다. 우포늪(97), 남강 유역(94), 섬진강 하구(86), 주남저수지·화포천(76), 진동갯벌(60)에 이은 일곱 번째였다. 찾아온 전체 숫자는 9335마리였다. 주남저수지(5만9659), 우포늪(5만2554), 남강 유역(3만5430), 섬진강 하구(2만5829), 화포천(2만3279), 마동호(1만1393), 번개늪(9620)에 이은 여덟 번째였다. 면적은 가장 적은데도 찾는 새들은 중간 수준으로 많은 편이었다.
201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멸종된 황새도 찾아왔다.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청에서 복원하여 자연으로 날려보낸 봉순이(J0051)·울산이(J0094)가 그 해 3월 12일 봉암갯벌에서 한꺼번에 눈에 띄었다. 봉순이는 2014년 김해 봉하 들녘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컷이고 울산이는 2015년 울산(태화강)에서 처음 확인된 수컷이다.
이들은 화포천, 섬진강 하구, 주남저수지, 남강 유역, 우포늪 그리고 천수만(충남 서산)을 돌아다녔다. 생태환경이 좋다고 손꼽히는 지역들이다. 봉암갯벌을 그런 황새 두 마리가 찾았다. 한 때 게나 조개를 잡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봉암갯벌이 다른 빼어난 습지들과 견줄 만한 정도로 생태환경이 좋아진 것이다.
이로써 봉암갯벌은 도심 한가운데서도 지역 주민이 역량을 모으면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었다.
※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에 실린 글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도서출판 피플파워'에서 2018년 11월 출간했으며 2008년 펴낸 <습지와 인간>의 후속편에 해당됩니다. 2019년 문화관광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세종도서’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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