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창간 전 몸담았던 신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낙 낮은 임금에다, 그마저도 체불되기 일쑤였다. 편집권 독립은커녕 최소한의 자율성도 없었다. 중요한 기사를 빼거나 키울 권한은 모두 사장에게 있었다. 기자 출신이었던 사장은 직접 사회부장이나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다.

내가 입사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비밀리에 노동조합 결성이 추진됐다. 회사 인근 다른 빌딩 강당을 빌려 기습적으로 창립총회를 열었다. 나는 '무임소 부장'이란 직책을 맡았고, 수개월간 사측과 갈등을 거쳐 전면파업에 들어갔을 땐 사무국장이 되어있었다.

당시 노조가 내세운 구호는 '부실자본 축출, 독립언론 건설'이었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한 달 후 파업이 끝났을 땐 사주가 바뀌었고 월급이 올랐으며, 제한적이지만 편집권 독립 장치도 마련됐다. 노조는 승리했다.

파업 출정식 모습 1994년

나는 이런 날이 오면 기자들이 정말 신명나게 취재하고 소신있게 좋은 기사를 써낼 줄 알았다. 당연히 신문의 질이 좋아지고 독자들의 호응도 높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순진했음을 깨닫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기사 마감 후(당시 신문은 석간이었다) 대낮에 사우나에 가거나 테니스를 치러 다니는 기자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기업인 스폰서를 두고 룸살롱에 들락거리기도 했다.


정말 혐오스러웠던 것은 나보다 어린 후배녀석들의 행태였다. 어느날 이른 아침, 출근 후 커피를 빼먹으러 자판기 앞에 갔더니, 예의 그 스폰서를 둔 기자 선배와 후배녀석 서넛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아직도 술이 덜깼는지 얼굴이 불콰했고 쉰듯한 술냄새도 났다. 들어보니 어젯밤 함께 놀았던 룸살롱 접대여성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 홍이 어땠니, 미스 박은 어떠니'하는….


순간 자판기에서 나온 커피를 녀석들 얼굴에 끼얹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루하루 피 마르는 파업을 거쳐 겨우 따낸 편집권 독립, 언론자유가 일부 기자들에게는 '나태할 자유' '타락할 자유' '자본·권력과 유착할 자유'가 되었던 것이다. 내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부르짖었던 말은 이랬다. '이런 더러운 꼴 안보는 신문사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일해보고 싶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다. 민주적 통제장치가 없는 자유와 독립이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독극물이 되는지를.

사퇴의 변을 밝히는 조국 법무부장관 @뉴스1

'검찰의 정치적 독립' 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최근 윤석열 검찰의 브레이크 없는 폭주에서 절절히 깨닫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검찰의 독립만 보장해주면 모든 검사가 공정하고 소신있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해 정의로운 나라가 될 줄로만 알았다. 진짜 순진한 생각이었다. 민주적 통제와 적절한 견제장치가 없는 독립과 자유는 괴물 기자를 낳고 망나니 검사를 낳는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축소하겠다고? 아니다. 완전 폐지해야 한다. 기소권만 갖는 것도 과하다. 기소 법정주의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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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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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로 2019.10.14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퇴로 끝이 아니죠.. 아직 감방가는게 남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