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경남도민일보
우리 고장 청소년 역사문화탐방 (5) 통영
놀고 쉬며 옛 발자취 곱씹다
박경리기념관서 작가 삶 반추
사방 시원한 서포루 전망 만끽
동피랑골목 거닐고 그림 그려봐
통영은 청소년 역사문화탐방에서 이른바 '핫 플레이스'다. 올해는 서른 학교 가운데 무려 일곱 군데가 통영을 선택했다. 5월 3일 김해 수남중, 6월 3일과 15일 통영 충렬여고와 마산 경남미용고, 7월 13일 김해중, 8월 18일 고성고가 이미 찾았고 함양여중과 통영 충무고는 11월 8일과 10일 탐방할 예정이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고 역사와 문화가 풍성한 고장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다.
둘 다 나쁘지 않다. 소풍 나온 기분을 더 내어도 좋고 열심히 찾는 공부 기분을 더 내어도 좋다. 어떤 경우라도 사정에 맞추어 보람이 있도록 하면 그만이다. 둘러보는 탐방 루트도 달라지지 않는다. 박경리기념관~삼덕항~서포루~통제영~동피랑으로, 날씨와 시간이 받쳐주는 한 언제나 같다. 다만 강약과 완급 조절이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박경리기념관과 묘소
소설가 박경리를 대부분 학생들은 잘 모른다. 알아도 이름 석 자에 그친다. 박경리기념관을 이들이 그냥 둘러보면 10분만 해도 충분하다. 미션을 주면 달라진다. 구석구석 차근차근 살펴보아야 찾을 수 있는 문제를 10개 정도 낸다. 이러면 40분도 시간이 모자란다. 대중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는 친구도 있고 처음부터 꼼꼼하게 찾는 친구도 있다.
그러고는 나무 아래에서 풀이를 한다. 정답과 함께 박경리와 소설 <토지>의 구체적인 국면도 일러준다. 박경리 소설에 통영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이 창작의 모티브가 되었고 이렇게 해서 통영도 새로운 모습을 얻게 되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고난을 겪게 된다. 박경리는 고난을 견뎌내어 보석처럼 빛나는 문학작품으로 만들었다. 시대와 사회가 주는 어려움과 아픔,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멸시와 천대 그리고 시기와 질투에 굽히지 않았던 삶이었다. 그래서 박경리는 생명 존중, 인간 존엄, 삶에 대한 연민을 작품 속에 구체적·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박경리 묘소에서는 무덤만 향하지 말고 돌아서서 선생이 누워서 어떤 풍경을 누리는지 느껴보라고 한다. 왼쪽 척포 앞바다는 언제나 햇살을 되쏘고 있어서 눈이 부실 정도다. 오른쪽 가까운 산비탈은 화사한 꽃과 부드러운 신록과 무성한 녹음과 아름다운 단풍과 모두 내려놓은 욕심없음으로 계절 따라 모습을 바꾼다. 햇볕을 따사롭게 받으면서 멋진 풍경을 사철 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다.
이어서 가는 삼덕항은 언제나 활기차다. 큰 트럭도 실을 수 있는 여객선이 통영의 여러 섬을 이어주는 기점이기 때문이다. 도로 옆 한편 돌벅수 한 쌍은 바닷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기에 고기와 술을 진설하고 기도를 올린다. 일이 힘들고 위험하니 빌고 또 비는 것이다. 1604년 어느 날 포르투갈 사람 주앙 멘데스 일행이 풍랑을 만나 표착한 자리를 알리는 빗돌도 있다. 먹고 살기 위하여 머나먼 나라까지 배를 타고 온 이국 사람들도 안됐고 임진왜란 끝난 직후 갑자기 들이닥친 커다란 배에 놀랐을 조선 사람들도 안쓰럽다.
◇탁 트인 서포루 우람한 세병관
점심을 먹고는 서포루를 거쳐 통제영으로 간다. 서포루는 통제영을 지키는 서쪽 포루다. 사방 360도 모두 트여 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옛날에는 외적 침입을 경계하는 군사용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시원함을 한껏 누리는 관광용이 되었다. 사진도 한 장 찍으면서 통제영 중심 건물 세병관과 왼쪽 산꼭대기 북포루와 맞은편 동포루를 가늠해 본 다음 걸음을 옮긴다.
통제영에서는 다시 미션을 준다. 소풍 기분이 강한 학교에는 약하게 조금만 내고 공부 기분이 우세한 학교에는 강하게 많이 낸다. 통제영에는 수항루·세병관·십이공방·운주당·주전소 터 같은 공부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놀기 좋은 우람한 나무와 정자도 곳곳에 있고 다른 놀거리도 이것저것 널려 있다. 게다가 세병관만 해도 둘을 겸하고 있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무궁무진한 공부거리이지만 작정하고 놀려고 들면 더없이 편안한 쉼터다. 마지막에는 세병관에 모여 길게 또는 짧게 미션 풀이를 한 다음 잘한 친구들한테 상품권을 선물했다.
◇새로운 공동체 벽화 마을 동피랑
동피랑으로 가는 학생들에게는 스케치북이 하나씩 들려 있다. 자유롭게 놀고 즐기면서 가장 인상깊은 풍경 또는 동피랑에 남기고 싶은 벽화를 그려보게 하는 것이다. 동피랑 꼭대기에는 동쪽을 지키는 동포루가 있다. 동피랑은 그러니까 통제영의 동쪽 벼랑(피랑)이 된다. 지금은 통제영과 더불어 군사 기능은 사라지고 사람들 모여 사는 주거 기능이 남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건물이 오래되어 낡았다는 이유로 통째 뜯어내고 재개발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 세들어 살거나 집만 한 채 가진 없는 사람들은 살던 데를 떠나야 한다. 지역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함께 같이 사는 방안을 찾은 끝에 벽화 그리기가 나왔다.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가까이에 큰 시장이 있으니까 색다른 벽화를 입혀 사람들을 끌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해서 동피랑 벽화마을이 태어났다. 동피랑 사람들은 공동체를 꾸려 가게 등을 열고 거기서 나는 수입을 공유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1시간가량 편하게 노닌 뒤에 꼭대기 동포루에 모였다. 저마다 그린 그림을 죽 펼쳐놓으니 다른 관광객들도 눈길을 던진다. 더불어 세병관·서포루·북포루의 위치와 남쪽 바다까지 가늠해 보게 한다. 통영의 전체 짜임새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통제영'에서 가운데 한 글자가 빠져서 '통영'이 되었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세하게 그렸거나 특징 있게 그린 그림을 몇몇 뽑아 상품권을 나누었다. 동포루에서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바람이 시원하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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