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대한민국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여성들

제4화. 동네 속으로 파고 든 박신연숙 씨의 경우

기록하는 사람 2019. 2. 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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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여성들 제4화. 박신연숙, 나는 무지 사랑스러워


이 글 제2화의 주인공이었던 성공회대 교수 박인혜 씨는 동네에서 변화를 몰고 오는 여성이 지닌 자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저 사람이 나와 똑같은 듯한데 내가 배울 게 조금은 있어요. 내가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뿌듯하고 기분 좋아요. 질투가 날 정도로 잘하면 안 돼요. 뭔가 배울 만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야지요. 사람들은 다 그런 것을 바라거든요. 사회에서 내가 의미 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지요.” 

이런 자질을 바탕으로 지역 여성 조직화에 탁월한 이가 있다. 쌩글이, 물귀신 등으로 불리는 박신연숙 씨다.


그는 1986년 대전에서 대학을 다녔다. 당시 대전에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진보적인 지역 여성이 모여 지역 여성단체인 대전여민회를 창립했다. 학생운동을 하던 박신연숙 씨는 대전여민회를 만나면서 여성주의에 매료됐다.

여민회 활동가 중 한 명은 여성주의 강의에서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르다. 똑같은 것은 공장제품뿐이다. 그러니 다르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동지란 ‘뜻을 같이해야 하며’ 생각이 다르다는 게 헤어지는 이유가 됐던 1980년대 학생운동 친구들이 스쳐 지나갔다.

박신연숙 씨는 1991년부터 서울 여성의전화에서 활동했다. 이 세상에 많은 여성이 이 단체를 통해 여성주의 의식도 키우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중앙 차원에서 벌이는 이슈 파이팅이 제대로 된 운동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박신연숙 씨는 2006년부터 단체 소속으로 서울 동작구 등에서 지역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 여성운동 조직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펼쳐 보였다.

필자는 그 재능이 궁금해서 박신연숙 씨를 따라 동네 모임에 참석했다. 아파트 화단에서 조그만 잔치를 준비하는 모임이다. 대다수 지각에 결석생도 있었다. '하늘 소년'이라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초대할 계획이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소개했다.

“하늘 소년은 언더웨어 가수야.”

“언더우드 가수?”

“그래.”

이들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까르르 웃어대는 여중생들 같았다. 다른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지각을 했고 모이면 3명 남짓이었다. 툭하면 지각하고 나오면 수다에 빠지는 여성들과 무슨 운동을 조직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신연숙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여성들이 여기에 일상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면 운동하지 말아야 해요. 이 여성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자기 일처럼 여기기 시작하면 그때는 시간을 정확히 지켜요.”

지역 여성을 조직화하려면 여성주의 가치나 지역사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와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야 활동이 가능한 법이다. 그렇다면 차차 그런 의식을 키우는 것보다 처음부터 의식이 투철한 사람을 선택하면 더 낫지 않을까.

박신연숙


박신연숙 씨도 처음에는 여성의식이 투철하고 회의 진행에 능숙한 분을 선택했다. 서울여성의전화 동작구 소속 회원들을 물색했는데 아주 소수였다.

강좌를 여는 것도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좋은 방법이다. 강좌 주제가 페미니즘이면, 강좌 신청자는 그 주제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강좌가 끝나고 희망자만 후속 모임을 진행했지만, 기대만큼 조직을 확장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박신연숙 씨 결론은 동네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 뜨개질 모임에 합류했다. 뜨개질하면서 회원들과 수다를 떨었다. 옷장에는 조끼. 목도리 등이 쌓였다.

동네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삶에 어떤 불만이 있는지 알게 된다. 한 여성 통장은 지역사회 리더로 더는 성장하지 못하는 공허함을 드러냈다. 학교와 소통할 때 위계를 느껴 불만인 학부모도 있다. 하다못해 평생교육원을 가더라도 끝난 뒤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한다. 박신연숙 씨는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리더십 교육을 열고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이렇게 모인 여성들과 지렁이를 키웠다. 지렁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퇴비를 만들어낸다. 2010년에 아름다운 재단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마을에 지렁이를 분양했다. 어린이집에 지렁이 상자를 분양할 때는 어린이집 처지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동네 빌라에 있는 화단에 배치할 때는 주민을 만나서 설득했다. 이후 주민을 만나면 지렁이라는 대화 소재가 하나 더 늘었다.

2006년부터 지역 여성들과 마을 축제를 준비했다. 마을 축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함께 했던 녹색 어머니 회장은 마을 축제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마을 축제 하면 동네에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잖아요. 나는 녹색어머니회장을 하면서도 이렇게 다른 단체와 연대해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녹색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경찰서에서도 나오거든요. 방범 대장도 나오고 다른 단체도 다 나오고. 마을이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어요. 봐야 느끼지, 안 보면 못 느껴요”

이처럼 사람들을 결집하여 동기를 부여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하루는 마을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기사를 보고 경찰서가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단체에서 대표와 활동가 몇 명이 경찰서장을 항의 방문한다. 대부분 지역 주민은 자기 지역 경찰서에 가 본 경험이 없다. 공청회가 열리기 전날, 박신연숙 씨는 주민을 한 명 한 명 다 만나며 항의방문 동참을 당부했다.

“거기가 내가 낄 자리인가?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에요. 꼭 오셔야 해요.”

박신연숙 씨는 2009년 서울여성의전화를 퇴사했고 동작구로 이사했다. 그리고 지역 여성들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단체 회원은 그동안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변하고 있었다.

대체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이 단체 회원 K 씨는 자기 경험에서 ‘좋은 세상’이 무엇인지 답했다.

2009년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가 집 앞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여자아이는 칼에 찔려 상처가 깊었다. 언론이 크게 보도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회원 K 씨에게는 자기 집에서 100m도 안 되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은 자신이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 피해 아이 엄마에게 이렇게 전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뭔지 알려 달라. 만나는 거 원치 않으면 안 만나도 좋으니까 도울 수 있는 것만 알려 달라. 조건 없이 해주고 싶다.”

피해 아이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 엄마는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심리상담도 원했다. 심리상담은 병원으로 연계시켰다. K 씨는 마을을 다니면서 모금했다. 이때 K 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여럿이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큰 상처는 씻을 수 없지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피해 아이에게 한 번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회원 중에는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여성이 있었다. 그들 자녀 중에서도 가출 사건은 생기기 마련이다. 평소 뉴스에나 나오는 가출 청소년 문제가 자기 일로 인식된다. 청소년은 장차 마을을 이끌어 갈 중요한 구성원이다. 가정폭력은 가출 청소년을 만들고 이들은 성매매 현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회원들은 가출 청소년 집결지를 파악하고자 사당동 이수역, 노량진, 신림 여러 지역 골목을 다니며 조사했다. 월세가 저렴한 신림역 주변에 청소년이 많아 캠페인 장소로 결정됐다. 매주 목요일 밤 보드게임 등 놀이를 할 수 있는 간이책상을 펴고, 성폭력을 상담하는 부스도 설치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분양한 지렁이를 매개로 주민과 대화하며 관계를 맺은 것처럼 길거리 상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계속 이뤄졌다. 전성기 때는 활동가가 30명까지 달했고 책상을 15개까지 펼쳤다고 했다. 성 감수성을 일깨우는 게임과 퀴즈놀이, 타로게임 등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부스를 운영하면서 상담을 병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주 부스에 오는 10대 친구들이 생겼다. 그중에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이 활동은 어른만 할 수 있나요?” 

부스를 운영하려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줬다. 가출 청소년이 상담가로 나서기도 했다. 동병상련을 겪는 사람은 서로 그 마음을 더 이해하기 마련이다.

캠페인 현장에서 아이들이 쉼터에 가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이들은 쉼터 규율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회원들은 청소년들이 정거장처럼 편히 드나들다가 쉼터도 가고 대안학교도 가고 여건이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원 J 씨가 청소년을 위한 카페를 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가게 자리도 알아봤다. J 씨가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제가 즐거우니까 했지요.”

2013년 나무카페를 열었다. 나무에 ‘나는 무지 사랑스러워’라는 뜻을 담았다. 단체 회원은 교대로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한 회원이 딸에게 느낀 점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친구들이 나왔을 때 이런 공간을 찾듯이 너도 나갔을 때 이런 공간이 있으면 엄마도 안심이 될 것 같아. 엄마는 이런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2층은 카페로 운영이 됐고 3층에서는 청소년들과 함께 시장을 보고 밥상을 같이 차렸다.

회원 P 씨는 유난히 기억나는 아이를 소개했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아이였다. 하루는 그 아이가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동여맨 채 부엌으로 들어왔다. 한참 멸치를 볶는데 냄새가 구수했던 모양이었다. 다가와 멸치를 하나 집어먹고 또 왔다 갔다 하면서 집어먹었다. 밥을 같이 먹는데 아이가 말했다.

“이런 밥 처음이에요.” 

P 씨는 그 말이 오히려 자신을 치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살면서 어느 한순간, 이 밥상에 담긴 온기를 기억하기를 바랐다.

물론 이렇게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 시각에서는 청소년들이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복장이 맘에 안 들기 마련이다. 한 상가 주인이 청소년들에게 한소리를 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아이들은 그 어른을 명예훼손으로 112에 신고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갈등은 나무카페가 주변 상가들과 왕래하면서 수그러졌다. 그 후에 청소년들이 식당에 가면 사장은 밥을 두 그릇씩 퍼줬다.

카페에 마을 손님들이 와서 차도 마신다. 손님 중에는 카페 취지를 이해하고 청소년에게 음료를 제공할 수 있는 쿠폰을 사기도 한다. 마을에 ‘선한 의지’가 순환되는 것이다.

단체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서서히 바뀌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이들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빠져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이사 간 회원들은 휴식기를 누리기도 하고 다른 분야로 관심이 이동하기도 한다. 박신연숙 씨도 나중에 서울 마포구 아현동으로 이사했다. 새로 정착한 동네에서 다시 친구를 만들고 주민들과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며 동네를 함께 걷고 있다.

박신연숙 씨가 만났던 모든 여성이 여성주의 운동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에너지 운동으로 방향을 바꾼 김소영 씨는  2009년 주민센터 직원 소개로 박신연숙 씨 독서모임에 합류했다. 그는 지역으로 들어가서 운동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2010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지렁이 상자를 분양했던 게 첫 경험이었다.

그에게는 당시 초등학교에 들어갈 쌍둥이 아이들이 있었다. 김소영 씨는 선행학습을 시키는 다른 엄마들을 보면서 아이 걱정을 시작했다. 그런 자녀 교육을 위해 마을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지렁이 분양을 하러 주민을 만날 때 지렁이 대화가 끝나면 마을 도서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린이 도서관 설립 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문제로 관심을 돌려 에너지 자립 마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한 마을에는 다양한 주제로 활동하는 여성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좋은 세상 만드는 사람들’에서 활동했던 한 회원은 여러 흐름이 어우러져 살다가 떠나온 동네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나도 그 느낌은 다르지요. 그 마을에다 그린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그림이라서. 어릴 적 친구들과 올라갔던 뒷산이 우리 집 산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내 산이 없고 내 집도 없고 내 땅도 없는데, 그 마을이 우리 것이 되잖아요. 예를 들면 나무카페가 우리 카페인 것. 도시 농부도 할 수 있고, 텃밭이 있다면 우리의 텃밭이 되는 것. 거기서 막 열매가 열리고 꽃이 피면 행복한 것 같아요. 길목에 꽃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걸어가고 그런 그림이 그려지면 완전히 다른 거지요. 한 단체가 있어서 마을에 축복 같은 일이 벌어지고 대개 좋았지요.”

(다음 제5화. 임예빈 - 나는 시간을 잡는 소녀)

글쓴이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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