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대한민국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여성들

제2화. 박인혜, 예쁜 파마머리의 비밀

기록하는 사람 2019. 1.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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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여성들 제2화. 박인혜, 예쁜 파마머리의 비밀

“저 지금 작가님께 예쁘게 보이려고 머리 손질 하고 있어요.”

통화한 다음 날 박인혜 씨가 있는 성공회대 교수실로 찾아갔다. 그를 만나기 전 이력을 살펴봤다. 인천여성의전화 회장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남편은 전직 국회의원이었다.

박인혜 씨도 2014년 인천 남동구청장 출마경험이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서문에 ‘후배 여성운동가의 성장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포부도 담았다.

처음 이 취재를 하면서 만난 대다수는 여성의식이 높았다. 말과 행동은 사고에서 나온다. 내 표현이 못마땅할 때마다 공부 좀 더 해야겠다는 말이 바로 들어왔다. 만남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박인혜 씨 이력을 보고 나니 앞에서 최대한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막상 박인혜 씨를 만난 나는 다시 멍청한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많은 여성은 징검다리 인생을 지향한 박인혜 씨를 만나 성장했을 것이고, 나도 그 징검다리를 밟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박인혜 씨 ‘징검다리’ 인생 경험은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긴급조치를 아홉 번 발동했다. 민중 기본권과 자유를 정지하는 국가긴급권 남용 행위였다. 이 가운데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 행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가 가장 극단적인 남용이었다. 시위에 나선 많은 대학생이 구속됐다. 75학번 박인혜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20대 초반 인혜 씨는 서대문교도소에서 1년을 지낸다. 함께 있던 여성 재소자들은 사소한 일로 자주 싸웠고 거짓말을 일삼았다.

‘이 사람들이 민중이라니, 이런 민중을 사랑하라니’.

여성 재소자들은 인혜 씨가 대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항소이유서 작성을 부탁했다. 항소이유서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부탁한 사람 처지에서 생각하게 됐다.

한 여성은 부산지역 소매치기 두목이었다. 그 여성 애인은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매일 면회 와서 거액으로 영치금을 넣었다. 재소자들은 언니 애인 멋있다며 탄복했다. 실상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애인은 유부남이었고 영치금은 모두 이 여성이 소매치기로 번 돈이었다.

이 소매치기 여성은 고아로 자랐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가정이 있는 남자를 만났다. 여성은 자기가 소매치기를 하여 번 돈으로 그 남자 식구까지 먹여 살렸다. 그런데도 그는 유부남을 놓칠까 봐 두려웠다. 자기 인생을 통틀어 사랑받은 경험이 유일했다.

박인혜 씨는 이 여성을 바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연들을 접하며 인혜 씨는 사회구조 속에 놓인 여성들 처지를 고민하게 됐다.

대학에서 제적된 박인혜 씨는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남편 때문에 1991년 인천에 정착한다.

초창기 도움을 청하는 여성들을 개별적으로 돕던 박인혜 씨는 여성단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여성 문제는 대부분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박인혜 씨는 인천여성의전화 창립에 참여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입법에 온 힘을 쏟았다. ‘성폭력특별법’(1994년), ‘가정폭력특별법’(1997년), 성매매방지법‘(2004년)이 제정된 후 이 법을 근거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체계가 안착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발효한 1998년 하반기, 아들이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들은 서울대 대학원 재학생이었다.

“서울대 대학원 다닐 정도면 가정폭력특별법 정도는 알았을 텐데.”

“전태일이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이 없어서 죽었니?”

박인혜 씨가 중얼거리자 노동운동을 하던 친구가 매섭게 되받아쳤다.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웃사람들이 신고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피신을 시켜주며, 가해자에게 압박을 가해준다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웃이 알까봐 피해자들이 오히려 쉬쉬하는 게 현실이었다. 한 사회가 변하려면 제도와 정책도 담보돼야겠지만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박인혜 씨는 그 지점을 고민했다. 상대 생각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사람 삶에 다가갈 수 있을까? 게다가 박인혜 씨 남편은 인천에서 오랫동안 낙선했다.

“사람이 아닌 정당만 보고 찍는 사람들과 함께 할 생각이 나던가요?”

첫 번째 멍청한 질문에 박인혜 씨는 다음 일화를 들려줬다. 2000년 4.13총선을 맞아 전국 412개 시민사회단체가 총선시민연대를 꾸려 부적격 후보자를 겨냥해 낙천·낙선 운동을 진행했다. 관습과 문화를 바꾸고자 했던 대표적인 사회적 운동이었다.

박인혜 씨는 남편이 지역구 후보여서 이 운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인혜 씨는 남편 선거운동을 도왔다. 만나는 시민에게 낙천·낙선 운동을 소개하며 말하곤 했다.

“이거 보세요. 저런 부적격 후보 뽑지 말고 좋은 후보 뽑읍시다.”

그러자 시민 일부가 이렇게 반응했다.

“취지는 좋네요. 그런데 당신이 나쁘다고 한 저 사람은 내가 아플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줬고, 내가 도움이 필요해서 전화하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 아무리 당신이 나쁘다고 해도 난 저 사람에게 투표할 거예요.”

남편을 찍지 않겠다는 말에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두 번째 멍청한 질문에 박인혜 씨는 생글거리며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아무리 사회 정의니 뭐니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그 사람 삶에 다가가고 구체적 경험 안에서 만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박인혜 씨는 지역운동 관점에서 정당을 주목했다. 사람들은 사회관계망을 맺고자 정당에 가입한다. 공적 안전망이 부족한 필리핀은 친족공동체가 강하다. 믿을 것은 오직 친척뿐이다. 우리나라 가족주의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사회가 인정하는 조직으로 공동체 범위를 넓혀주고 잘하면 권력도 잡을 수 있다. 남편 선거를 도우면서 정당과 선거운동원 활동에 담긴 의미를 되짚었다.

일반인은 선거운동원이라면 돈 받고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박인혜 씨가 만난 대다수 선거운동원에게 찾은 동력은 ‘인정욕구’이다. 인정욕구는 공적인 일로 인정받을 때 가장 잘 채워진다. 선거운동은 국가가 인정하는 공적인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동네에서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없어요. 출마자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인정한다는 뜻이잖아요. 사람들은 구의원, 시의원을 조금 알아도 친분을 과시하며 큰소리를 치잖아요. 그런 행동을 나쁘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이름 팔고 다니면 어떡해요?”

“상관없어요. 뭐가 나빠요? 서로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것인데! 그래야 공동체가 되지요. 내가 구청장 출마한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바라는 게 한 가지 뿐이래요. 아무 때라도 구청장실에서 커피 한 잔만 마시면 된대요. 얼마나 소박해요? 그거 하나 못 들어줘요?”

박인혜 씨는 지역 여성들이 자원봉사에 몰리는 이유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했다. 지역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공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그다지 없다. 동네에서는 일상 대화 속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여성운동도 정치다. 박인혜 씨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페미니스트에게 항상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부는 이런 대중과 함께 할 자신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현실을 보면 그간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많은 것이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대다수는 관변단체 소속이다. 이 여성들은 이슈 파이팅보다 동네 자원봉사에 열중한다. 그 내용도 목욕, 음식, 청소 같은 일이라 가정에서 여성들이 하던 일이 동네에 그대로 펼쳐진 모양새로도 보인다.

한 진보여성단체 소속 활동가는 지역에서 관변단체 소속 여성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려고 했다. 그러자 단체 내에서 보수적인 여성들과 어울린다며 비판이 나왔다고 한다.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확장성이다.

박인혜 씨는 여성단체 활동 경험을 이야기해줬다. ‘여성의 전화’에서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상담하거나 이혼을 도왔다. 피해 여성들은 이 같은 지원을 고마워하며 단체 회원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회원이 되지 않았다.

당사자가 나서지 않는데 무슨 여성운동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마지막 멍청한 질문이었다. 박인혜 씨는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도 불행했던 시간을 다시 떠올리기 싫은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를 했다.

“내가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즐거운 기운이 느껴져야 가까이하고 싶지 않나요?”

박인혜 씨는 만나는 상대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자 했다. 예쁜 파마머리와 생글거리는 표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고 보니, 동네 여성들이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자원봉사다. 취재를 하면서 자원봉사가 그동안 지역 여성에게 변화를 일으킨 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운동사에서 이 여성들 역할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데는 나만큼 어떤 행위를 해석하고자 그럴듯한 이론을 찾아다닐 능력이 부족해서 아닐까?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다양한 사연이 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김희선(가명) 씨는 암 수술을 경험했다. 수술 받을 당시 더는 다른 일을 겪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이웃을 생각하며 살겠다고 기도했다. 

건강을 되찾은 김희선 씨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동작구 자원봉사은행에 등록했다. 그리고 성당에서 치매 할머니 목욕 봉사를 소개받았다. 할머니를 씻기는데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그런데 옆에서 한 여성이 야무지게 할머니들 몸을 씻기고 있었다. 그는 목욕을 마친 할머니들을 새 옷으로 갈아입혔고 일렬로 앉혔다. 그 앞에서 손뼉을 치며 ‘남행열차’를 불렀다.

그 광경을 보고 김희선 씨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여성이 내 주변에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이제 김희선 씨가 반한  여성, 김영례 씨를 만나보자. (다음3화. 김영례-전화 한 통이면 해결 끝)

글쓴이 서형. seohyung2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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