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제는 새것도 빌려주겠다는 선관위

김훤주 2008. 8. 5. 22:39
반응형

5월 31일에 저는 ‘낡은 것만 빌려주겠다는 선관위’(http://2kim.idomin.com/200)라는 글을 써서 공직 담당자의 이기주의 조치를 꼬집은 적이 있습니다.

마산시선거관리위원회에 기표대를 빌리러 갔는데, 새것은 자기네들 쓴다고 안 되고 낡고 무거운 옛날것만 내놓더라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이라고 봤습니다. 공무원 윤리헌장 실천 강령에 나오는 ‘나와 관청의 편의보다는 국민 편의 위주로 처리한다.’를 어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선서를 하게 돼 있는데 거기 나오는 ‘국민의 편에 서서 정직과 성실로 직무에 전념한다.’와도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글에서 이미 “까칠하게 한 번 굴겠다.”고 밝힌 대로, 5월 29일자 공문에서 쇳덩어리 기표대만 빌려주고 알루미늄 기표대는 빌려주지 않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6월 11일자로 회신 공문이 왔습니다. 전형적인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공문이었습니다. 결정에는 간여하지 말고 그리 알기나 하라는 얘기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애인용 신형 기표대의 경우 2007년 2월부터 7월경 정도까지 한시적으로 대여해 왔으나 선거 장비의 파손등으로 관리에 어려움(대여에 따른 유지보수비 절감 등)이 있어 공직선거에만 사용하도록 시위원회 자체적으로 결정하였기 통지하오니 양지하시기 바라며,……”

저는 이 공문을 보고 기가 꽉 막혔습니다. 알루미늄 기표대를 두고 장애인용이라 하는 것부터 “‘양지’하시기 바라며” 따위 말투에 이르기까지가 말입니다.

저는 7월 1일자로 보낸 두 번째 공문에서 “기표대 관리를 위해 애쓰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장애인용’이 무슨 뜻인지 ‘비장애인용’이 따로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울러 ‘대여에 따른 유지보수비’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공직선거에만 쓰기로 정한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따위도 여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동안 연락이 없다가 7월 30일 전화가 왔습니다. 문서 말고 말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냐하면 공무원을 상대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제가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이는 알았다면서 끊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0분도 채 안 돼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죽 설명을 늘어놓더니 다시 말로 하면 안 되겠느냐 물었습니다. 저는 마찬가지 안 된다면서 지금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적어보내시면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왜냐하면요, 저는 알루미늄 기표대 안 빌려주는 선관위가 부당하다고 보거든요.”라 하니까 이 공무원은 대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서둘러서 “그러니까 빌려주도록 바꾸고 말로 하면 안 될까요?” 했습니다.

제가 보낸 공문을 두고, 어떻게 처리할지 거듭 고심하며 두 달 가량 주물럭거렸을 이 공무원께 조금 안 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말씀드렸습니다.

앞서 공무원께서 어떻게 설명했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비장애인용 기표대가 따로 있지는 않답니다. 다만 알루미늄 새 기표대가 휠체어가 들어갈만큼 너비가 넓고 야트막하답니다.

그리고 ‘시위원회 자체적으로 결정’이라는 표현의 실상은, 담당 책임자로서 제게 전화를 주신 그 공무원께서 그리 하기로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대여에 따른 유지보수비를 따로 뽑을 수 있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빌려주게 되면 유지 관리에 어려움이 아주 많다는 사실만큼은 알아달라고 되풀이 말씀을 했습니다.

어쨌거나 저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을 담당 공무원에게는 저도 미안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공문 처리는 않은 셈인데, 제가 좀더 까칠하게 굴었어야 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상세보기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펴냄
선거가 대한민국 현대정치에 미친 영향을 담은『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이 책은 저자가 2007년 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5회에 걸쳐 일반 시민을 상대로 강의했던 '선거로 본 한국현대사'를 엮은 것이다. 《대한민국 선거이야기》는 대한민국 60년 현대사 선거 가운데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낸 선거를 중심으로 나눠 설명한다. 이승만 집권시기와 박정희 집권, 신군부 집권과 민주화시기로 구분해 각 시기 정권교체에 선거가 얼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