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반기문은 대선 본선 완주 가능할까?

김훤주 2017. 1. 1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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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하면 반기문의 정치 밑천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유엔 사무총장=‘세계 대통령’을 10년 동안 지낸 인물이라는 명성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 충청도라는 지역 기반이다. 

그런데 이 둘만으로는 대통령 선거를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정책과 조직이 더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한 발언 가운데 정책 관련한 부분은 거의 없었던 데 비추어 보면 반기문이 정책을 제대로 갖추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정책 부재는 치명상이 아니다. 얼기설기 구성하면 그럭저럭 땜빵할 수 있는 것이 정책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시기 박근혜가 정책을 마련했던 과정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조직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10년 동안 나라밖에서 생활한 때문인지 반기문에게는 조직이 없다. 주변에 이런저런 그룹이 있다고는 하나 다들 사설(私設) 사랑방 수준을 넘기는 어려워보인다. 

마포 실무팀 모습. 연합뉴스 사진.

변변한 말도 없고 제대로 된 마부도 없는 실정이다.(말은 조직이고 마부는 정책이다. 말을 구하면 마부는 절로 마련될 수도 있다.) 허우대 멀쩡한 기수만 한 명 달랑 있는 꼴이다. 

그러나 워낙 이름이 높아서인지 이 기수를 자기 등에 태우고 싶어하는 말은 한두 마리가 아니다. 새누리당·바른정당·국민의당 그리고 제3지대(론)가 대기하고 있다. 가장 안달이 난 말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다. 

요즘 새누리당은 비루먹은 말이다. 살가죽은 헐었고 터럭은 빠져 있다. 서청원·최경환 같은 친박까지 또아리를 틀고 있다. 반기문 아니라 누구든지 타고 싶지 않은 말이다. 반기문은 그래서 새누리당 옛 기수 박근혜를 향해 “국가의 리더십이 국민을 배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새누리당의 일부(정진석 등 충청권 국회의원과 나경원 부류)는 반기문이면 언제 어디서나 뛰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도 새누리당에 올라탈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반기문 오른쪽 나경원의 탁월한 포지션. 연합뉴스.

그렇다면 바른정당이 선택을 받을까?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세력이 그다지 왕성하지 않고 지지기반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다리 근육이 튼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훈련도 실전 경험도 풍부하지 못한 말인 셈이다. 

그러므로 바른정당이 다른 좋은 말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반기문의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다른 좋은 말이라면 바른정당+새누리당 비주류+국민의당+α가 될 텐데, 이는 상상에서나 가능하다.) 

국민의당은 어떨까? 반기문은 국민의당이 호남지역당 노릇을 해줄 수 있다면 올라탈 용의가 있을 것이다. “충청도 더하기 전라도 하면 표가 얼마야? 여기에다 바른정당이나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몇몇이 빠져나와 수도권과 영남권 표가 더해지면 당선되겠네!!” 머리를 굴릴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전라도 민심이 그렇지 않다. 전라도 민심은 거의 전적으로 정권 교체를 바란다. 그런데 반기문은 정권 교체가 아니다. 반기문은 스스로도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내세웠다. 어제 12일 인천공항 귀국 연설에서였다. 

(반기문의 정치 교체는 겉으로 반패권과 반기득권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친박·친문 배격이다. 그러나 친박과 친문은 같이 놓고 다루어도 되는 개념이 아니다. 친박은 실체가 있는 집단이지만 친문은 실체가 없는 규정이다. 

친박은 지난 5년 동안 나라를 거덜나게 만든 살아 있는 집단이다. 하지만 친문은 문재인을 비난하기 위해 야권 비주류가 입에 올리는 관념 덩어리다. 친박과 친문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언사는 이도저도 아닌 속임수 말장난이다.) 

그러므로 국민의당이 반기문을 자기 등에 태우는 그 순간 호남 민심은 아무 아쉬움 없이 국민의당을 통째로 버리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면 반기문은 친박도 비박도 반박도 아닌 쪽박이 되고 만다. 

연합뉴스 사진.

남은 것은 제3지대(론)뿐. 반기문은 제3지대(론)가 가장 좋다. 친박·친문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 커다랗게 세력을 이루자는 얘기니까.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을 아우르게 되며 또한 일선 소총수에서 분대장을 거쳐 사단장까지 촘촘하게 조직을 구성할 수도 있다. 

제3지대(론)는 아쉽게도 현실에 실재하는 말이 아니라 설계도에만 있는 가상이라는 한계가 있다. 가상을 실현되도록 하는 열쇠는 이 그림을 설계한 손학규가 아니라 반기문이 쥐고 있다. 손학규를 위해 제3지대에 모일 세력은 없지만 반기문을 위해서는 제3지대에 모일 세력은 많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반기문의 당선 가능성이다. 당선 가능성이 낮으면 손학규가 깃발을 흔들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이지 않는다. 반면 당선 가능성이 높으면 아무도 깃발을 흔들지 않아도 제3지대는 설계도를 뛰쳐나와 현실에서 금방 완성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전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얼핏 보니 1등 31% 문재인과 2등 20% 반기문의 지지율 격차가 11%로 한 주일 전보다 더 크게 벌어졌다. 이게 민심인 모양이다. 유권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정치 교체'를 통째 실현하는 큰 것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단지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보여준 구태정치를 마감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정권 교체를 이룰 수만 있다면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대다수 유권자들은 반기문이 구태정치를 마감하고 정권 교체를 이룰 적격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론 삼아 말하자면 반기문은 유명한 기수다. 하지만 타고 달릴 말은 마땅찮다. 그렇다고 혈혈단신 혼자서 맨발로 달릴 수는 없다. 물론 설계도에는 크고 튼튼한 말이 한 마리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반기문 스스로 당선 가능성을 끌어올려야만 설계도 바깥으로 뛰쳐나올 수 있다. 

내 예상은 이렇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반기문은 이번 대선 본선에서 완주하지 않는다. 어쩌면 예선에조차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반기문은 차라리 귀국한 직후인 지금이 가장 빛나는 한 때일 개연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차기를 노리고 이번에는 질 각오를 하고 완주를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반기문은 일흔셋에 이른 나이를 고려하면 차기를 위한 완주는 단지 희망사항일 따름이라 하겠다.

연합뉴스 사진.

어쨌거나 반기문은 어제 인천공항 귀국 연설에서 ‘정치권은 광장의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 이해관계만 따지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지도자에게는 책임감, 배려,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것들은 반기문 본인한테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정치권’·‘지도자’라 적힌 자리에 ‘반기문’을 대입해도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광장의 민심을 받드는 자세로 정권 교체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책임감과 배려와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일은 반기문이 자기 몫으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 스스로 노욕(老慾)과 노추(老醜)에서 벗어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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