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수호전을 다시 읽다>는 경남도민일보 구주모 사장이 쓴 책이다. 부제는 '500년 고전(古典)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구주모 사장은 누구를 만나든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리를 활기차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 책을 읽으니 그 원인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같은 직장에서 19년째 삐대면서 한 번씩 느껴왔던 구주모 사장의 진면모를 이번에 제대로 보았다.

지배이데올로기의 민낯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까닭이 바로 이와 같지 않은가 하는 얘기다. 

<수호전>은 이런 지배집단에 맞서는 무리들의 이야기다. 이 무리는 (대다수 구성원을 위한) 국리민복 따위는 생각도 않는다. 대신 (지배집단의) 사리사욕만 없어져도 좋다고 여긴다. 뒤집어 말하면 자기 몫 뺏기지만 않아도 먹고 살 만하다.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지금도 그러하다.

구주모 사장이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강연하는 모습.

149쪽. 

송나라 진종眞宗이 지은 권학가勸學歌·학문을 권장하는 노래는 이 시기 유자들이 치국위민治國爲民을 외면하고 '악마'가 된 이유를 설명하는 한 가지 단서다.

애써 무엇을 할 필요가 없나니, 책만 부지런히 읽어 과거에 급제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말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좋은 토지를 살 필요가 없나니 

책 속에 그냥 천석 쌀이 있도다 

편안히 살려 함에 좋은 집을 지을 필요 없나니 

책 속에 그냥 황금 가옥이 있도다 

길 나설 때 시종 없음을 한탄하지 말지니 

책 속에 수레와 말이 있도다 

아내를 얻을 때 좋은 중매가 없음을 한탄하지 말지니 

책 속에 얼굴이 옥과 같은 여인이 있도다.

재산과 미인을 미끼로 공부를 권장하는 노래다. 젊은이들을 책상머리로 유인해 보겠다는 발상은 가상하지만, 오랜 세월 뜻있는 사람들은 이 노래가 지향하는 '끝 모를 천박함'에 치를 떨었다. 본시 유교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수신제가'를 통해 '치국평천하'란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학가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사리사욕만 조장한다. 도대체 이런 격려(?)를 듣고 면학한 이들 중 '위민爲民'과 '공평무사公平無私'를 실천한 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수호전 주인공 송강이 반시反詩를 쓰는 장면이지 싶다. 권범철 기자 그림.

충효 이데올로기의 뿌리

구주모 사장은 이 책에서 "원래 윤리관념은 생활방식에 따라 다르고, 생활방식은 계급에 따라 다르다"고 적었다. 맞는 말이다. 

충이나 효는 지금에 이르러 추상적이고 고상한 가치 관념이 되어 있지만 그것이 형성된 구체 정황을 찾아들어가면 그 뿌리가 나온다. 부모나 국가로 말미암아 누릴 것이 있는 사람한테나 필요한 것이 바로 효이고 충이다.

그리고 지배집단은 여기서 더 나아가 효나 충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강요한다. 일반 대중의 머리와 생각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래야지 본인들이 좀더 손쉽게 별 저항 없이 누릴 것을 누릴 수 있으니까.

81쪽 

대지주나 부자 상인 집에 태어난 아이는 노비나 보모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또 따로 교사를 두고 가르침을 받는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부모나 조상 재산을 물려받아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들에게는 부모나 조상을 위하는 효가 매우 중요한 윤리의식이 된다. '효도는 온갖 행실의 기본孝爲百行之本'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부모나 조상이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권력이 그들을 보호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효와 함께 충忠이 강조되고 교육된다. 충효는 고관이나 대지주 계급에게 유용하면서도 절대적인 윤리였다.

지도자라는 것들은 예나 이제나

사실 지도자라 하면 맞지 않다. 지배집단이나 상류층이라 해야 한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표리부동이고 양두구육이다. 남한테 보여주는 얼굴과 자기 행실과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완전 딴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만 봐도 된다. 황교안은 국민개병제에 따른 병역 의무를 하지 않았다. 대신에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를 했다. 그러니까 안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뻑 하면 군복 뒤집어쓰고 안보 코스프레를 한다. 

박근혜는 더하다. 자기 얼굴을 가꾸기 위해서는 온갖 짓을 다했지만 이른바 국리민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문화융성·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엉터리 재단을 만들고 그 곳간을 채웠다. 

그런 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사회를 밑바탕에 지탱하고 있는 국민들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현장에서,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나가야 했다.

154쪽

이탁오는 <분서焚書>에서 유학자들을 일러 "밖으로는 도학을 주창하면서 안으로는 부귀를 좇고, 유학자라는 우아한 옷을 입고서 행실은 개돼지 같다"고 호통친다.

<수호전>에서 만개한 반유 정서는 후대에서도 확인된다. 연암 박지원이 쓴 그 유명한 '호질虎叱'을 보자. 

"고기가 저 숲속儒林에 잇는데, 인仁의 간肝에 의義의 쓸개를 지녔고, 충忠과 결潔을 품었으며 악樂과 禮를 쓴 채 입으로는 백가百家의 말을 읊조리고 마음으론 만물의 이치에 통하니 이름하길 '석덕지유碩德之儒'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자儒者는 간장 쓸개까지 인의충결로 가득하고 밖은 예악으로 잔뜩 치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먹지 못할 물건으로 일축한다. 허울과 명분뿐인 유가 가치가 폐기처분되는 순간이다.

노신 또한 <광인일기狂人日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역사를 뒤지며 조사해 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페이지에나 인의도덕 따위의 글자만이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나는 이왕 잠을 잘 수가 없었으므로 밤중까지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그러자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겨우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책에는 가득 '식인食人'이란 두 자가 쓰여 있었다."

유가가 자나 깨나 내세우는 인의도덕이 오랜 세월 사람들을 잡아먹은 식인귀라는 소리다. 

유가는 지배이데올로기였다. 지배이데올로기의 얼굴은 항상 그럴 듯하다. 사람들을 그 허울로 속아넘기기 위해서다. 대중의 저항을 무장해제하는 효율적인 방편이다. 지배이데올로기가 작동하면 그 결과는 대중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다. 지배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사기와 공갈이다. 

국제신문 그림.

식인귀에 맞서는 아랫것들의 가치

이 책에서 말하는 '의리' 또는 '약속'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아마 연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효와 충은 아래위로 이어주는 수직적인 개념이다. 일반 대중들은 위에서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종적인 윤리는 아무 필요가 없다. 

'의리'나 '약속'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서로를 옆에서 옆으로 이어주는 수평적인 개념이다. 위에서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존재들은 먹고 살기 위해 서로 기대고 서로 챙겨주고 서로 위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옛날에는 의리였다면 지금은 연대다. 이런 연대에 동의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다. 지금 대통령만 아니면 된다. 심지어 반기문조차도. 하지만 반기문은 이런 연대에 동의하고 민심의 바다에 배를 띄울 용의가 없다. 

81쪽

반면 하층 계급 아이는 어미 젖을 얻어먹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부모는 어린 자식에게 경제적 보호는커녕 애정을 베풀 여유도 없었다. 이 계층에서는 '제 먹을 건 제가 갖고 태어나는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10살쯤 되면 부모 일을 돕거나 스스로 먹을 것은 찾아 나서야 한다. 또래끼리 놀면서 초근목피를 구하러 다닌다. 따라서 이 계층에서는 또래, 즉 붕우朋友가 생활수단이자, 위안이자, 동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당연히 효도보다 동료 간 약속이나 의리가 우선이었다. 이들에게는 의를 지키고, 그런 의리 있는 행동을 확산시키는 것이 곧 '인仁'이었다. 다들 억울리면서 살았기에 약자를 부축해주는 사람을 고대했다. 

그런 협행俠行을 실천하는 사람은 만인에게 칭송받았다. 따라서 누가 '의리의 수호자'로 이름이 높으며 혹은 누가 얼마나 많은 협행을 실천했느냐가 곧 자산이었다.  

협행俠行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의롭고 씩씩한 행동'이다. 의로움의 기준은 일반 대중에게 이로우냐 아니냐가 될 것 같다. 씩씩함의 기준은 잔대가리를 굴리느냐 아니냐로 보면 되겠지. 

일반 대중에게 이로운 일을 하더라도 잔대가리 굴리며 이리 재고 저리 재면 협행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이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사소한 유불리에 매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324쪽. 2016년 11월 21일 초판 발행. 도서출판 피플파워. 1만6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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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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