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맘대로 편하게 어머니 말씀을 해석했다

김훤주 2008. 7. 2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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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에 들은 어머니 ‘꼴딱’ 소리

“나는 우리 엄마가 진짜 식은밥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라든지 “어릴 때는 엄마가 달걀 반찬을 싫어한다고 알았다니까?”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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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때는 어머니’ 흙인형. 경남도민일보 사진.

겉으로는 웃으면서 동의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자기 마음 편하려고 꾸며대는 말이야.’ 저는 여깁니다.

어머니 목구멍에서 나는 ‘꼴딱’ 소리를 아주 일찍 귀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당시는 귀한 편이던 반찬인 김을 두고 일어난 일입니다.

어머니는 김에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잘 구워진 김에다가 열심히 젓가락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제 밥은 그래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꼴딱’ 소리가 났습니다. 어머니랑 저밖에 없는 밥상머리였기 때문에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났는지 알아내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주 짧은 순간, 김에다 젓가락을 댄 채로, 어머니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어머니가 눈치챌까봐 민망한 마음이 앞섰는지 그대로 김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맛있는 반찬을 탐하는 제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식들 먹어라고 반찬을 미루는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머니도 좋아하는 반찬이 우리 자식들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챈 편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 좋은 반찬 해드릴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잘못했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어머니가 제가 알아챈 그 빠르기보다 더한 빠르기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24살 되던 해 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머니한테 좋은 반찬 한 번 못해 드린 아쉬움은 안고 살면서도 여태 어머니한테 잘못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20대부터 지금까지 스무 해 넘게 어머니 뜻을 어기는 인생을 살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러지는 않고 있으며 오히려 어머니 뜻에 걸맞게 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막내인 저는 어머니 굄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어머니랑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풀 뽑고 김 메는 밭일을 할 때도 즐거웠습니다.

스무 살 시절 진골이나 짐태골 넘어가는 산등성 밭두렁에 앉아 우리 모자는 주절주절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버릇처럼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지.”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이런 말씀이 제게 버틸 힘을 불어넣었고, 그 바람에 제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지금껏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운동을 줄곧 벌이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옛날 어머니 말씀들이 되씹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내가, 어머니 여러 말씀 가운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싶은 방식으로 골라 들은 것은 아닐까…….

내 편한대로 들은 어머니 말씀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 말씀을 제대로 새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서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고 아들 딸 낳고 잘 살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구네 집 자식은 이런저런 데 취직해서 무얼 사 들고 왔더라는 얘기도 들려주셨고, 니가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하면 좋겠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일러주신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말씀을 어머니 방식대로 들었다면, 나서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하고 살아라……, 나서지 않으면서도 나쁜 짓은 하면 안 되느니라…….

합당한 길을 골라 가고 올바른 말을 제대로 하면서도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지 않느냐……, 다른 집 자식처럼 평범하게 취직을 해도 똑바로 살면 되지 않으냐…….

어머니가 말씀하신 ‘말이 아니면…… 길이 아니면……’은, 이를테면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것일 텐데도, 저는 제 편한대로 살아가는 특정 양식(樣式=이를테면 직업적 운동가)으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어머니 생전에도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넋이 나가서 운동하고 구속되고 하느라 속을 썩여드렸습니다. 어머니 사후에도 저는 어머니 뜻을 똑바로 헤아리지 못한 채 혼자 잘난 맛에 살았습니다.

혼자 잘난 맛에 사느라, 같이 사는 사람들 많이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었음을 이제야 조금 눈치를 챘습니다. 앞으로는 어머니 여러 말씀들 종합적으로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식구들도 많이 위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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