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겨레 보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말벗' 최순실 씨가 케이스포츠 재단에 깊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최 씨의 아버지이자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최태민(1912~1994)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는 최태민 씨의 행적과 경력을 기록하면서 '양산 개운중학교 교장'을 거친 걸로 보도했다.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에 취임한 최태민은 2년 만에 교장을 그만두고"라고 한 것이다.

알다시피 양산 개운중학교는 현재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 2015)의 주인공 채현국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다. 그 학교를 최태민이 설립하고 2년 동안 교장을 지냈다는 건 어디까지 사실일까?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오른쪽)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이에 대해 나는 <풍운아 채현국>을 쓰기 위해 채현국 이사장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레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채현국 이사장은 "이걸 쓰는 건 조심하라"고 말했고, 나 또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책 <풍운아 채현국>에서는 이 부분을 뺐다.

하지만 이미 경력에서 개운중 교장이 언급된 이상 채현국 선생의 증언을 밝히고 기록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공개한다.

양산 효암학원(개운중, 효암고) 채현국 이사장 증언

-연표를 보니까 양산 개운중학교가 1953년에 개교했던데요. 그 때는 아버지와 상관없는 학교였던 거죠?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종률 선생 땜에 이걸 한 겁니다.”

-초대 교장이 임상수라는 분이던데.

“임상수 선생이 많지도 않던 자기 재산 다 내놓고…. 그런데 이협우라는 놈이 있었는데, 특히 경상도 사람은 이협우라는 사람을 그냥 용서하면 안 됩니다.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인데, 임상수 선생 젊은 나이 때 재산 좀 있는 걸로 취급되어서 (그 놈에게) 잡혀갑니다. 이협우가 돈 빼앗으려고. 이협우는 해방 공간에서도 (죄 없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남 재산 빼앗는 게 으레 하던 일입니다. 그래서 4·19 나니까 그 놈 죽여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중략>---

-그 일과 개운중학교 설립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그래서 6·25 전쟁이 나니까 또 재산 때문에 또 자칫하면 잡혀가서 두들겨 맞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가지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유림, 유도회 땅 가지고 학교를 시작한 겁니다. 돈도 많지도 않은 양반이.”

-아 그렇게 돼서 1953년 개운중학교가 개교되었군요.

“그 돈을 다 넣고 나니, 이건 쓰는 것 조심하소. 바로 거기 최태민이가 나옵니다. 그 때 웬 중이 왔다 갔다 하는데 임상수 선생과 알게 됐지. (최태민이가) 교사들 월급을 댈 수 있다고 하니까 임상수 선생이 그에게 교장을 하라고 했지. 그 땐 교장이 이사장일 때니까. 자기 친구들이 전부 임시 피난정부에 와 있을 때였는데 학교 신청을 해서 허가가 나왔는데 그 공문서에 (최태민이) 교장으로 돼 있는 거야. 그런데 실제로는 교장을 단 하루도 한 적이 없어. 먹을 게 좀 있는 줄 알고 교장 하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먹을 게 하나도 없거든. 최태민이 이름으로 학교 허가가 나왔어. 그런데 한 번도 (교사들) 월급 안 가져오고, 하루도 교장 안 하고 그냥 가버렸어. (웃음) 그래서 임상수 혼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월급도 못주고 그렇게 끌고 왔어.”

-지금도 최태민 이름이 인가서류에 남아 있습니까?

“당연히 학교 기록에 남아있죠.”

-임상수 선생이 최태민에게 왜 교장을 하라고 했을까요?

“월급 가져온다고 하니까.”

-임상수 선생이 최태민을 어떻게 알았고요?

“수단꾼이니까 여기 학교에 먹을 게 좀 있나 하고 왔겠지. 좀 유식한 놈 아닙니까. 일제 때도 학교 깨나 다니고 했으니까. 나도 처음엔 몰랐지. 그냥 웬 놈이 월급 갖고 온다고 했다가 안 갔고 왔고, 문서에만 있고 그랬는데, 그게 지금 이렇게 유명해진 최태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

여기까지가 최태민 관련 인터뷰 내용이다. 채현국 이사장에 따르면 최태민은 개운중학교 설립자가 아니다. 설립자는 임상수 선생인데, 6.25 발발 이후 경주의 살인마 이협우에게 온갖 고초를 당한 후 남은 재산을 모두 털어 학교를 세웠고, 학교 운영이 어려울 때 최태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때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라 중이었다.

그러나 최태민은 약속과 달리 교사들 월급을 한 푼도 가져오지 않았고, 실제로 하루도 교장 노릇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그런데 그 이전에 임상수 설립자가 최태민 이름으로 학교 설립허가 신청을 하여 허가서에는 최태민이 교장으로 되어 있었던 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기록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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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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