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문경 학살]살려줄테니 일어서라 해놓고 다시 사살

기록하는 사람 2016. 6. 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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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2월 23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문경민간인학살 피해자 증언이 있었다. 앞의 글에서 이어지는 채홍연 씨의 증언이다. ☞앞의 글 : [문경 학살]창자 쏟아진 형이 살려달라 했지만...

문경 민간인학살 생존자 채홍연씨의 피맺힌 증언

1949년 12월 24일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석달마을 사람들이 국군들에 집단학살을 당한 그 때 저는 11세의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가족은 69세의 아버지와 77세의 종조모와 25세의 오빠와 저 넷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 점심 때 쯤 되었을 때 갑자기 많은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들이 닥쳤습니다. 갑자기 우리 마을에 들이 닥친 군인들은 마을 앞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서 떠들면서 머물러 있더니 갑자기 호각을 불면서 큰 소리로 "질러 질러 질러" 세 번을 이러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 인고 하니 불 지르라는 소린가 봐요. 그러더니 군인들이 집들이 즐비한 마을로 들어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집집마다 불을 질렀습니다.

채홍연 씨. @김주완

산골의 촌집들이라서 모두가 초가집이었고 마당에는 나뭇가래, 짚가래도 있고 울타리도 모두 나무여서 순식간에 온 동네가 불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방안에 앉아 있다가는 불에 타 죽겠기에 사람들은 모두가 집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우리집은 동네 꼭대기에서 세 번째 집이었는데 지붕에서 막 덩어리 불이 떨어지는데 마굿간에 있던 소가 안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어린 내가 마굿간으로 가서 아무리 잡아당겨도 안나오더라구요. 덩어리 불이 떨어지는데 왜 안나가느냐 하면서 울면서 소를 집 뒤 대나무 밭으로 끌어냈습니다.

이날 오빠는 멀리있는 친척집에 갔었고 아버지와 종조모는 고령으로 몸이 불편했었기에 어린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태어난 후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간난아기들까지 무참히 학살됐다. 이런 아이들은 '朴아기' '蔡아기' 등의 이름으로 적혔다. @김주완

그리고 바로 앞집에서 가까운 친척인 아저씨와 할아버지 두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출타하여 집에 없었고 중풍으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일흔이 다 되신 할아버지 혼자 집에 남아있었는데 군인이 방안에서 끌어내어 업으라는거에요. 군인들이 저보고 빨리 업고 나가라고 소리치는거에요.

그런데 이런 내가 업을 수 있습니까. 군인들이 또 막 소리를 지르니까 누가 업었는지는 모르지만 앉은뱅이 할아버지를 마을 앞 논바닥으로 업고 갔었죠. 집안에 있다가는 불에 타 죽을까봐 겁이 나서 집을 뛰쳐나온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이 총대로 몰아서 마을 앞 논바닥으로 끌고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논바닥으로 다 모이자 군인들이 총을 마구 쏘기 시작했습니다. 땅 땅 땅 땅---- 총소리는 끝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쓰러졌습니다.

이때 군인이 소리쳤습니다. "산사람들은 살려 줄 테니 일어서라." 이 말을 듣고 일어선 사람들을 옆으로 옮겨서 1열로 세우더니 또 총을 쐈습니다. 그 사람들도 모두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 떄 왼쪽 손등과 오른쪽 팔에 총알을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우리 집 식구 중 오빠는 집에 없어서 살았었고 아버지, 종조모는 그 때 총살당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살아갈 집도 먹을 양식도 없어 오빠와 나는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 큰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살았으나 큰집도 살기가 어려워서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2년 후 13살의 어린 나이에 밥이라도 얻어먹고 살 요령으로 시부모 두 분 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인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증언자 채홍연(2006년 당시 6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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