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 갔더니 한켠에 만해기념관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시인의 진면목을 보았습니다. 만해 한용운을 우리가 시인이라고 일컫는다면, 시인은 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해기념관에 적혀 있기로는 만해 한용운이 1944년 6월 숨을 거두었는데 그 원인이 영양실조라 하였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굶어 죽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굶어 죽었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만해 같은 인물 한 분을 우리 겨레가 부지시키지 못해 굶어 죽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제가 주는 배급을 일절 거부했다고 하는군요. 만해 한용운은 그렇게 갔습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의 시는 가지 않고 우리한테 남아 있습니다. 만해기념관 곳곳에는 적절하게 그이의 시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는 꾸밈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줄글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수준에서 기교를 부린 다른 사람의 그 어떤 시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고 온 몸을 떨리게 하는 전율이 있었습니다. 같은 글이라도 그이가 썼다고 하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두오 있었습니다. 


심우장(尋牛莊)이 그랬습니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시 분명하다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이 손수 지은 택호라 합니다. 소(牛)를 찾는다는 뜻이고 소는 마음을 가리키는 상징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심우장은 마음자리를 바로 찾아 더없이 커다란 이치를 깨치기 위하여 공부하는 장소가 됩니다. 


만약 한용운이 아니라 당대 스님 가운데 친일파가 이렇게 적었다면 ‘말장난 하고 있네’, 놀림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해가 이렇게 써 놓으니 깃털처럼 가볍고 솜털처럼 따뜻한 그 마음이 바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로 다가왔습니다. 시집 <님의 침묵> 들머리 ‘독자에게’조차 그랬습니다.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이는 것과 같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이는’ 같은 비유가 빛납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는 한밤중에 무거운 그림자가 엷어가는 설악산에서 새벽종을 기다리는 심정이 그지없이 단호합니다. 자기 시의 효용이 당대에서 그치면 좋겠다는 심정 또한 그지없이 단호합니다.


‘군말’은 또 어떻습니까?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아마 ‘기룬’과 ‘기루어서’는 요즘 말로 하면 ‘그리운’과 ‘그리워서’가 되지 싶은데요, 읽어 보면 어쩐지 형용사보다는 동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건저렇건 이렇게 한 번 읽음에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그립다는 표현이 절절합니다. 만약 만해와 동시대에 사랑 타령 예쁘게 했던 어느 시인이 쓴 작품이라면 이런 느낌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해기념관에서는 그동안 범상하게 여겼던 ‘나룻배와 행인’조차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시에다가 만해 한용운의 삶을 겹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을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 한용운은 이렇게 살다가 끝내는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시보다 삶이 더 대단합니다. 그래서 시가 마음을 울리고 빛이 납니다. 만약 만해 한용운이 자기 앞으로 재산이나 권력을 남기려고 애쓰는 삶을 살았다면 이런 울림도 빛남도 있지 않았겠지요. 


‘사랑하는 까닭’도 가슴을 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조건이 없는 사랑, 기대도 없는 사랑, 자기 보고 싶은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만약 한용운의 삶이 누군가 무엇인가를 이렇게 행동으로 사랑하는 삶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런 시 앞에서도 기껏해야 그냥 범상하게 여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1929년 새해 첫 날에 발표한 ‘조선 청년에게’라는 글도 있었습니다. “만지풍설 차고 거친 들판에서 바야흐로 맑은 향기를 토해내는 매화의 정절을 닮는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청년들에게 그런 정절과 기상을 주문했습니다. 


이 글로 미루어 짐작건대, 만해 한용운은 참으로 일제와 일제의 강점조차도 원망하지 않는 그런 경지에까지 이르렀음이 틀림없을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그러하니까 청년들에게 그런 주문을 할 수 있었겠지 싶은 것입니다.


만해 한용운을 이렇게 갈무리해 담아 놓은 만해기념관을 둘러보았더니, 오늘날 이 땅에 그 많고 많은 김 작가 이 시인 박 소설가들한테 한 마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저는 시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나고 다만 입맛대로 골라 읽는 독자입니다.) 


작품 시 소설을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삶을 잘 살려고 애써야 훌륭한 작가 시인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상하게 문학한다고 거들먹거리지 말고, 남보다 많이 안다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남보다 잘났다고 으스대지 말고, 남보다 잘 쓴다고 도토리 키 재기 하듯 뽐내지 말고, 남보다 돈 많다고 남보다 권력과 가깝다고 자랑하지 말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표절이 들통날까봐 속으로 떨거나 남들 입에 오르내릴까봐 마음 졸이는 작가 시인 소설가들이겠지요.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것들을 온몸으로 사랑해내는 삶을 자기 몫으로 삼는 작가 시인 소설가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만해기념관이었습니다. 들어갈 때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둘러보는 내내 커다란 감동을 누릴 수 있었던 만해기념관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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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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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ng4686 2016.06.27 0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