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내가 노란리본 배지와 고리를 나누는 이유

기록하는 사람 2016. 5. 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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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지승호의 책 <인터뷰 특강>에는 '공감'이란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글쓰기라는 건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일이다. (…) 글쓰기 재능이 있다면 그건 문장력이 아니라 공감하는 능력이 아닐까. 공감을 해야 관찰이 시작되고 관찰을 하려면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책에서 인용한 소설가 김중혁의 말입니다.


그러나 공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본래 100만 명을 희생시킨 중국의 기근보다 자신이 치통이 더 중요한 법"이라는 작가 데일 카네기의 말도 공감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작가 윌리엄 마운트포드 또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상대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적선보다 더 힘들다. 돈은 인간의 자아 바깥에 있지만, 공감은 자기 영혼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 앞에 몇 번이나 가봤지만, 차마 그들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진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7~8일 전북 정읍 황토현에서 우연히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때도 뭔지 모를 부채의식과 미안함 탓인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이 오히려 밝게 웃는 모습으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하룻밤을 보내고 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 토론대회 참석차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 20여 명이 우리 일행이 있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을 대신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유가족도 울었고 아이들도 울었고 저도 울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말했습니다.


"이거 한 가지만 꼭 해주십시오. 노란 리본을 달아주십시오. 그걸 달고 있으면 '아직도 세월호냐, 그만하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란 리본은 세월호뿐 아니라 생명존중입니다. 생명존중에는 비정규직 문제나 인권 문제 등 대한민국의 모든 아픔이 다 포함됩니다."


노란 리본 배지와 고리.


그렇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은 물론 삼성 백혈병, 쌍용차, 밀양 송전탑, 백남기 농민, 진주의료원 폐업에 이르기까지 인권 경시, 생명 경시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당장 우리 지역에서 진행 중인 한국산연 정리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고. 잊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저는 최근 노란 리본 배지 160개와 고리 300개를 구입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노란 리본 나눠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댓글이나 메시지로 받아볼 주소를 남긴 분들께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달고 싶었는데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26일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100개 이상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다 나가면 추가로 또 구입할 예정입니다.


기자가 기사로 쓰면 되지 왜 그런 일을 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감이 우선입니다. 최규석의 <송곳>, 윤태호의 <미생>, 공지영의 <도가니>와 <의자놀이>가 수백 건의 기사보다 더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노란 리본 뱆지, 고리 나눔 2차

+노란 리본 배지, 고리 나눔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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