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 레드 툼

기록하는 사람 2015. 7. 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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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란 사람이 원래 없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커서 보니 다른 아이들 집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우리 아버지만 없다는 걸 알았지요."


엄마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의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이승만 정권의 불법적인 민간인학살로 살해됐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보통 우리는 부모를 잃고 1년 만 지나도 슬픔을 잊는다. 아버지 제사가 돌아와도 우는 경우는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영화 <레드 툼>(감독 구자환)에서는 나이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65년 전 헤어진 사람을 그리며 서럽게 운다. 빗속에서 진흙탕에 막걸리를 뿌리며 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원통하게 했을까?



영화 <레드 툼>은 어설프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무심한 듯 들어준다. 기억조차 끔찍한 학살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 아직 숨이 남아 있던 사람까지 생매장했던 기억들, 학살된 아버지, 남편의 시신을 어떻게 찾아왔는지, 왜 아직 시신도 못찾고 있는지…. 의령에서 마산으로, 마산에서 진주로, 밀양으로, 거제도로, 통영으로 카메라는 옮겨다닌다.


한홍구 교수가 그랬듯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학살 암매장된 민간인 희생자의 무덤'이다. 그런 암매장 터도 영화는 보여준다. 거기서 발굴된 유골들의 모습도 참으로 무덤덤하게 보여줄 뿐이다.



재미를 더하기 위한 어떤 기교나 기법도 없다. 그냥 정직한 영화다.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다. 액션이나 드라마에 익숙한 이들은 '재미없는 영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팩트의 힘은 강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가 아닌 실제인물의 실제 행동과 실제 육성이서일까. 가슴이 아린다. 울컥하게 한다. 그리고 나중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치민다.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낯과 속살을 접하고 싶다면 9000원을 내고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특히 영화 제작과 개봉을 위해 후원금을 한 푼이라도 낸 사람은 엔딩 크레딧에서 꼭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기 바란다.


참고로, 여기 중간 즈음에 못났지만 내 얼굴도 나온다.



아! 그리고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을 더 보고 싶은 사람은 오늘 출간된 증언자료집 <그질로 가가 안 온다 아이요>(도서출판 피플파워, 1만 7000원)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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