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인구 3만뿐인 의령이 인물을 내세우는 까닭

김훤주 2015. 6.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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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역사탐방

의령 곽재우 생가~백산 안희제 생가~정암진·정암철교

 

5월 역사탐방은 의령입니다. 의령은 경남 중심 도시인 창원과 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사람들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랍니다. 거제나 통영·남해처럼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인구가 3만 가량인 의령은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의령에서 가장 내세우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회원큰별·안영·정·이동·샘바위·자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더불어 의령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곽재우 생가 장독대.

 

아이들에게는 홍의장군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임진왜란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면서 그이들의 삶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들른 곽재우 생가에서는 사랑채에 모여앉아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어놓았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아무 벼슬도 하지 않았으나 임진왜란이 터지자 자기 가진 재산 전부를 털어서 의병을 모으고 누구보다 먼저 전투에 나섰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곽재우 생가 안채 마루에서.

 

그이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까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었던 배경부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람입니다. 곽재우 장군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이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은 남명 조식(1501~72) 선생입니다. 곽재우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앎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남명 조식의 제자였습니다.

 

남명은 제자 곽재우를 어여삐 여겨 자기 외손녀를 곽재우의 아내가 되도록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는 아무래도 아이들은 물론 함께 온 선생님들까지도 재미있어 합니다.

 

곽재우 생가만큼 유명한 것이 집 앞에 있는 500살 넘은 은행나무입니다. 가을이면 둘레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는 짙어진 녹음으로 한결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습니다.

 

600살 넘는 느티나무 현고수에서.

 

또 마을 한가운데 느티나무는 곽재우 장군이 거기다 북을 매달아놓고 쳐서 의병으로 나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데 은행나무보다 100살은 더 연세가 높으십니다.

 

우리 사람은 책을 통해서나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지만 여기 서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는 곽재우 장군의 실제 모습과 당시 벌어진 일들을 생생하게 봤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과연 새삼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들 나무를 올려다보고 만져보았습니다. 당시 느티나무에 매달아 놓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마냥 즐겁게 칩니다.

 

북치는 아이들.

 

다음으로 찾아간 데는 가까이에 있는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아이들은 생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미션 수행을 했습니다.

 

백산 생가에서 미션 수행 중인 아이들과 두산중 선생님들.

 

백산 생가는 왜 문화재로 지정이 됐을까요? 정답을 맞힌 팀이 없었습니다. 다들 안희제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으니까 문화재로 지정을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백산 선생 생가가 문화재로 지정된 까닭은 백산의 삶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특한 가옥 구조 때문입니다.

 

 

안채는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조그만 방이 다섯, 다락도 따로 있습니다. 안채라 하면 보통은 안방과 건넌방이 모두인데 여기는 이렇게 방이 많습니다. 당시 가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 감시를 피해 숨기 좋으라고 이렇게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안채는 기와를 이었지만 사랑채는 초가집으로 검소합니다.

 

백산 생가 사랑채 앞에서.

 

 

거듭 말하지만, 의령이 인구는 적어도 가장 내세우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 으뜸으로 꼽히는 한 사람이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입니다. 요즈음은 곽재우 생가나 안희제 생가보다 이병철 생가를 찾는 발길이 훨씬 많습니다. 물질이 중심인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노릇이라 할 수도 있겠습지요.

 

삼성을 만든 이병철에 견주면 같은 자산가였지만 안희제 선생이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해서 번 돈은 아주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병철보다 안희제가 더 역사에 빛나는 인물일 것입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돈을 어떻게 가치롭게 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친구들도 어른이 되면 번 돈을 가치있게 쓸 줄 알아야 한다는 조금은 교과서적인 얘기도 살짝 곁들였습니다.

 

점심을 먹고는 정암진을 찾았습니다. 오전에 곽재우 생가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곽재우 장군이 전투를 벌이고 크게 승리를 거둔 장소인 정암진을 한결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정암루에서 느낌글을 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정암루에서 내려다보는 남강은 옛날 그 치열했던 역사를 껴안은 채 평화롭게 흐르고 있습니다. 왜적을 속이기 위해 홍의장군 모습 허수아비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을, 지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늑한 옛날의 뻘밭을 마음으로 상상해봅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전! 골든벨'로 문제 풀이도 하고 느낌글도 쓰는 정암루에 5월의 화사한 봄바람이 날아들었습니다.

 

500살이나 먹은 은행나무가 인상 깊었다는 얘기, 북을 치는데 왠지 가슴이 뚫리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 다음에 부산에 가면 안희제 선생을 기리는 백산기념관에 꼭 들르고 싶다는 얘기, 상으로 주는 쥐꼬리 장학금은 못 받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즐거웠다는 얘기 등등이 아이들 손끝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어서 바로 옆 정암철교를 걸었습니다. 일제강점기 1935년 세워졌다가 6·25전쟁을 맞아 망가졌으나 1958년 되살려낸 다리입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오가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감탄들, "아 너무 멋진 풍경이다~!!" 봄은 그렇게 아이들 가슴에 안기며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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