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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일본 야생 황새 복원 6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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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요오카시와 효고현의 황새 복원 관련한 역사입니다. <황새, 자연에 날다>(박시룡·박현숙·윤종민·김수경 지음, 지성사, 2만원)를 바탕으로 삼아 나름으로는 길어지지 않게 정리해 봤습니다.

 

들여다보시면 바로 아시겠지만 일본은 길게 보고 천천히, 조금씩조금씩 진행했습니다. 자치단체장도 당장 실적 도출을 위해 정치·행정적으로 서두르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도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도요오카와 효고현이 황새 보전을 위해 가장 먼저 벌인 사업이 학생을 비롯한 지역사회 구성원에 대한 교육·홍보였다는 사실 또한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에 내려앉은 황새를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는 나카가이 무네하루 도요오카시장.

 

1.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는 황새와 관련이 깊습니다. 도요오카시는 일본 혼슈(本州)의 효고현 북부에 있고 효고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기초자치단체입니다. 북쪽으로 동해(일본해)와 이어지고, 동쪽으로 교토부(京都府)와 붙어 있습니다. 마루야마가와(圓山川) 강이 도요오카를 가로질러 동해로 빠져나가는데 시내 중심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2. 도요오카시는 우리나라 충북 음성군처럼 일본에서 황새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이랍니다. 1930년대만 해도 100마리 넘는 황새가 도요오카에서 살았는데 30년도 채 안돼 절반 아래로 줄어들었습니다. 도요오카시의 황새보호운동은 1955년에 시작이 됐습니다.

 

3. 1965년에는 야생 황새를 인공 둥지로 끌어들여 인공으로 번식시키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 야생 황새는 1971년 절멸했고 이후 러시아에서 황새 여섯 마리를 들여와 1989년 인공 번식에 성공했습니다.

 

2005년 우리(cage)에서 기르던 황새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해 2014년 현재는 72마리가 야생에서 살고 있습니다.

 

4. 도요오카에 가면 야생 황새도 있고 황새 조각과 그림, 황새 관련 상품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도요오카역과 시청(市役所) 건물 벽, 상점가와 간판, 버스와 기차, 보도블록에 황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술과 쌀과 빵과 물과 식초에 이르기까지 황새 관련 상품이 있습니다. 도요오카 시민들에게 황새는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삶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 기노사키온천.

 

5. 효고현 그리고 도요오카시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온천이 바로 기노사키(城岐)입니다. 기노사키온천에는 황새 관련 전설이 있습니다. 조메이(舒明) 천황 시절(629~641) 지금 기노사키 온천 자리가 당시는 논이었답니다.

 

논을 지나던 농부 눈에 황새 한 마리가 소나무에서 논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기를 되풀이하는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눈여겨봤더니 황새는 다리가 다쳐 있었고 내려와서 하는 일은 논에서 솟아나는 따뜻한 물에 다리를 담그는 것이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황새 다리는 며칠 뒤에 원래처럼 말끔해졌습니다.

 

농부는 이 따뜻한 물이 영험한 줄을 알아채고 그 옆에 작은 집을 짓고는 일을 마치는대로 틈틈이 들어가 건강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기노사키 온천의 유래입니다.

 

헤이안(平安)시대(794~1185년)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오랜 온천탕 일곱 군데를 순례하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온천입니다. ‘고노유(鴻の湯)’, 황새의 온천이라는 뜻으로 전설 속 황새가 다친 다리를 치료했던 바로 그 장소라 합니다.

 

돌아온 봉순이. 일본 도요오카에서 경남 김해 봉하마을까지 날아온 녀석입니다.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6. 에도(江戶)시대(1603~1868년) 일본 도후쿠(東北)~규슈(九州) 지역에 황새가 살았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도요오카시 관련으로는 다지마이즈시번(但馬出石藩)의 3대 번주 센고쿠 마사토키(仙石政辰)가 1744년에 매를 풀어 사냥한 학의 고기로 국을 끓여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학으로 끓인 국은 진미였으며, 길조인 학을 사냥할 수 있었던 집단은 번주급 귀족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타지마에는 학(두루미)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기서 학이라고 한 것은 사실 황새라는 점도 함께 밝혀놓았습니다.

 

그 뒤 7대 번주 센고쿠 히사토시(久利)는 자기 소유 사쿠라오야마(櫻尾山)에 둥지를 튼 황새를 길조라 여겨 산 이름을 쓰루야마(鶴山)로 바꾸고 황새 사냥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7. 메이지(明治 1868~1912년)시대 초기에는 황새·따오기 같은 큰 새에 대한 수렵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렵규정이 공포된 메이지 25년(1892)까지 25년 동안 무분별한 황새 사냥이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황새는 급작스레 사라지게 됐고 다지마(다지마는 지금 도요오카시의 한 부분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892년 마련된 수렵규정에서도 학이나 제비 등은 보호 대상이 됐지만 황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황새가 논에서 미꾸라지·개구리 따위를 먹을 때 어린모를 짓밟는 해로운 새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지마 지역 쓰루야마가 황새 번식지로 지정돼 여기서만큼은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8. 메이지·다이쇼시대를 지나면서 황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황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레 늘어났습니다. 쇼와(昭和 1926~1989년) 초기에는 전성기라 해도 될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1930년 효고현 조사에서 도요오카시에 살고 있으리라 예상되는 황새는 100마리 정도였습니다.

 

당시 도요오카시에 사는 황새가 50~60마리로 확인됐는데 둥지 번식 상황과 견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였습니다. 서식 환경 악화와 먹이 부족으로 말미암아, 그해 태어난 어린 황새들이 도요오카를 떠났기 때문으로 짐작됐습니다.(새끼보다 힘이 센 어른 황새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논에서 아이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을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얘기를 하는 나카가이 시장.

 

9.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성기는 끝났습니다. 1943년 전쟁 물자로 송진과 목재를 공급하려고 쓰루야마의 소나무를 벌채한 데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벌채는 천연기념물 담당인 문부성 허락없이 진행됐습니다.

 

정식 벌채 신고서는 이듬해 제출됐고 그나마 남아 있던 큰 소나무들도 모두 자빠졌으며 서식처를 잃은 황새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게다가 농부들은 황새가 어린모를 밟는다며 논에서 쫓아냈고 가난한 사람들은 황새를 잡아 먹었습니다.

 

전쟁은 이동 경로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러시아 아무르강 중·하류, 중국 동북·남부지역, 조선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중간중간에 있는 서식 환경까지 죄다 파괴돼 버렸던 것습니다.

 

10. 1955년 일본조류보호연맹 이사장 야마시나 요시마로(야마시나 조류연구소 소장)는 효고현 사카모토 마사루 지사에게 절멸 위기 황새 보호를 위해 현(縣) 차원에서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앞서 1951년 조사에서는 다지마의 천연기념물인 황새 번식지 쓰루야마에 황새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11. 사카모토 지사는 황새보호협찬회를 만들어 자기는 명예회장을 맡고 도요오카시장은 회장을 맡도록 했습니다. 두 단체장의 적극 지지를 바탕으로 협찬회는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교사와 행정 관계자들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진행했는데 어린아이들에게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즈시중학교 황새연구부는 1957~59년 이즈시(이즈시 또한 지금은 도요오카시의 한 부분임)에서, 도요오카고교 생물부는 1956~63년 황새를 관찰·기록했습니다. 특히 1958~63년은 도요오카시 후쿠다(福田) 황새 관찰·기록은 날마다, 그리고 1분 단위로까지 둥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이는 도요오카시 마지막 황새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기록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중고생들은 도요오카의 60~80대 노년층이 됐는데 지금도 황새 보전 운동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니다.

 

다이습지를 만들고 가꿔가는 다이마을 주민들.

12. 협찬회는 황새 가만히 두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 황새는 번식기에 예민해지므로 놀라지 않도록 조용하게 지켜주자.’ 미꾸라지 한 마리 운동도 벌였습니다. ‘논을 빌려서 미꾸라지와 붕어 등을 황새가 먹도록 풀어주자.’ 아울러 황새가 먹이를 먹는 장소를 만들고 그 관리인까지 배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모금운동 : 황새 먹이 값 모으기’도 펼쳤습니다.

 

13. 황새보호협찬회는 1958년 다지마황새보존회로 이름을 바꾸고 실태를 조사해 어른 황새 14마리와 어린 황새 1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이듬해에는 어른 황새가 2마리 늘어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보존회는 1959년 도요오카 유루지(百合地)에 인공둥지 2개를 처음 설치했습니다. 황새는 곧바로 여기에 둥지를 틀었고 그 가운데는 도요오카 최후의 야생 황새(1971년 죽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요오카시 황새 야생 번식은 1959년 후쿠다에서 이후로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4. 도요오카 분지에는 논이 있는데 지형이 물이 좀처럼 빠지기 어려운 진창이었습니다. 사람 허리까지 빠지다 보니 농사짓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논에 사는 여러 물 속 생물들한테는 가장 좋은 환경이었고 당연히 황새한테도 아주 소중한 먹이터였습니다.

 

황새농법을 실천하는 논이라는 표지.

 

그런데 경지 정리와 하천 공사로 도요오카 분지 일대 지루논이 사라졌고, 강(마루야마가와) 주변 자연 습지도 덩달아 줄었습니다. 미꾸라지·붕어·개구리들이 먼저 줄어들자 먹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황새도 먹을거리에서 크게 곤란해지게 됐습니다.

 

15. 도요오카에서는 또 1958년부터 국가 보조로 헬리콥터로 농약을 살포해 왔습니다. 정부는 농약과 비료 사용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덕분에 농민들은 힘든 농사일은 줄이고 생산량은 늘릴 수 있었지만, 그 탓에 여러 생물이 죽었고 황새의 생활과 그 자손의 탄생도 어려워졌습니다.

 

16. 이런 가운데 황새보존회는 ‘황새 총합 보호대책 다지마 지구 연구 간담회’를 1962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인공사육과 인공부화 필요성이 처음 거론됐습니다. 1963년 문부성 문화재보호위원회와 효고현 교육위원회는 황새 인공부화·사육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17. 1964년 인공사육용 케이지 설치를 위한 협력회가 꾸려지고 도요오카 노조(野上) 골짜기를 황새사육장(지금 황새고향공원 부속사육시설 보호증식센터) 터로 정했습니다. 노조는 농약 위험에서 비껴나 있으면서도 먹이 공급을 손쉽게 하는 조건인 도로 정비가 잘 돼 있었습니다.

 

황새고향공원 비공개지역.

 

이듬해 1월 사육장에 황새가 날 수 있는 플라잉 케이지(flying cage)가 만들어졌고 2월 11일에는 후쿠다에서 황새 한 쌍을 사로잡는 데 성공해 인공 번식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다지마 지역 8마리, 후쿠이현 오바마시 2마리, 구마모토동물원 1마리 등 일본에 있던 황새 11마리까지 모두 사로잡아 인공 번식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18. 이처럼 황새를 사로잡는 과정에서 적극 활동한 사람이 바로 마쓰시마 고지로(松島興治郞)씨입니다. 그이는 일생을 황새와 함께한 인물입니다. 도요오카시 전설의 사육사인 셈입니다.

 

도요오카고 생물부 부원으로서 후쿠다 둥지에서 황새 번식을 직접 관찰했고, 졸업 이후에도 가방공장에 다니면서 황새 보호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1965년 28살 때 황새사육장 2대 전속 사육사로 들어가 지금껏 황새 보호와 증식에 힘쓰고 있습니다.

 

도요오카 아이들이 황새쌀로 학교급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카가이 시장.

 

19. 1966년 4월 도쿄교육대학 농학부 일본응용동물곤충학회가 ‘특별천연기념물 황새의 죽음’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황새 몸에 수은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농약에 심각하게 중독돼 병까지 들어버린 황새가 새끼를 제대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황새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농약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20. 이런 조건에서도 황새 보호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1970년 후쿠이현 다케후시에서 부리가 부러진 채 나타난 야생 황새를 붙잡았습니다. 나중에 이름이 ‘다케후’로 붙여진 이 황새는 1963년 사라졌다가 7년만에 나타났었는데, 34년 동안 케이지에서 보살핌을 받다 2005년 죽었습니다.

 

1971년에는 야생 황새가 개한테 쫓겨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사람에게 넘겨지는 일도 있었는데, 곧바로 장폐색과 만성감염으로 숨졌습니다. 그 뒤로 일본에서는 야생 황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21. 이래서 야생 황새를 수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985년 7월 27일 러시아(당시 소련) 하바롭스크에서 야생 황새 수컷 4마리와 암컷 2마리를 들여왔습니다. 당시 나이가 한 살로 짐작했었는데 그래서 4년 뒤부터는 알도 낳고 새끼도 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습니다.

 

봉순이가 태어난 인공둥지. 도요오카시 이즈시초(町) 들판에 있습니다.

 

88년 도쿄 다마동물공원에서 알 4개 가운데 3개가 부화하는 첫 성공이 있었습니다. 도요오카 황새사육장(1991년 황새보호증식센터로 이름 바꿈)은 두 번째로 성공합니다. 세워진지 24년만인 89년 5월에 태어난 두 마리가 7월 중순 어미 품을 벗어나 독립을 한 것입니다.

 

22. 이런 진척이 있는 가운데 1994년에는 효고현이 황새 장래 구상위원회를 열어 황새 야생복귀를 위한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설 설치 계획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목적은 이랬습니다. ①황새의 보호와 유전적 관리 ②황새 야생복귀를 위한 과학적 연구 ③지속가능한 황새 보전을 위한 지역 시민·농민의 이해 증진 ④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지역 환경 창조를 위한 교육·문화·학술 발전.

 

23. 이를 바탕으로 99년 황새고향공원(165만㎢, 도요오카 상운지祥雲寺)이 효고현립으로 들어섰습니다. 2000년에는 황새고향공원 공개 방사장 옆에 황새문화관이 도요오카시립으로 세워졌습니다.

 

황새문화관 내부

 

황새 보전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고 한쪽 면은 공개 방사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간단한 설명을 들으르면서 황새가 먹이를 먹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비공개지역은 황새를 기르고 새끼 치게 하는 한편으로 야생화 훈련을 하는 장소로 개체사육장·번식사육장·야생화사육장·오픈사육장 등이 있습니다. 둘레 지역은 황새가 풀려났을 때 야생에서 둥지 틀고 살아가기 맞은 환경을 갖추고 황새들이 드나들 때 저어하지 않아도 되도록 사람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24. 이런 가운데 2002년 8월 5일 야생 황새 수컷 한 마리가 대륙에서부터 황새고향공원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날아온 날짜를 따서 ‘하치고로(八五郞)’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치고로는 도요오카 자연 환경이 야생 황새도 터잡고 살아갈 만한 매력적인 장소라는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치고로 도시마습지 사무실.

 

하치고로는 지금껏 황새 보전을 위해 노력해온 도요오카 사람들에게 작으나 보람 있는 보상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하치고로에게 관심을 쏟아 그 모습을 관찰하는 시민들의 황새팬클럽 결성(2004년)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치고로는 마루야마가와강 오른쪽 기슭에 있는 3만8000㎡ 도시마습지에 자주 나타났습니다. 원래는 묵정논으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바람에 농사짓기 어려워 버려진 지루논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민물과 바다에서 들어오는 짠물이 뒤섞이는 지역으로 그래서 여러 가지 생물들에게는 살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도요오카시는 하치고로가 날아들자 일대를 사들여 황새 먹이 공급 장소로 활용하는 인공습지로 만들었습니다(2009년 완공, 도시마습지는 마루야마가와강과 일대 논들과 더불어 2012년 7월 람사르협약당사국총회(루마니아)에서 람사르습지로 등록됐음).

 

‘하치고로 도시마습지’라 일컬어지는데요, NPO환경단체인 황새습지네트워크가 주로 생물 조사와 체험·교육 등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마습지 물 속 생물 숫자 조사.

 

25. 그런데 이 하치고로는 도시마습지를 비롯한 야생에서도 먹이를 얻었지만 황새고향공원 보호증식센터에서 주는 먹이도 자주 먹었습니다. 도요오카 일대가 아직은 황새의 먹이가 되는 생물들이 충분히 많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증표였습니다.

 

이에 황새 야생복귀 추진협의회는 2003년 ‘황새 야생복귀 추진계획’을 세웠습니다. ①황새가 살 수 있도록 먹이가 풍부한 환경 조성, ②황새가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많은 자연환경 조성, ③황새와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목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창조형 농업 추진, △하천과 마을 산림 친환경적 정비, △황새 브랜드 쌀과 관광 상품 개발 등이 진행됐으며 2003년에는 황새 야생복귀 추진연락협회도 발족이 됐습니다.

 

눈 내린 도시마습지.

 

26. 2005년 9월 24일 오후 2시 황새고향공원에서 35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쇠우리에 갇혀 있던 황새 다섯 마리가 풀려나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황새고향공원 등에서 인공 번식으로 태어나 사육하고 있던 황새가 100마리를 넘은 시점이었습니다.

 

풀려난 황새들이 두 달 동안은 황새고향공원 근처 논에서 먹이를 먹거나 인공둥지에 올라 쉬거나 잠자는 등 멀리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석 달째인 12월에는 3마리가 남쪽으로 7.5km 떨어진 지역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사는 2009년까지 행해졌습니다.

 

27. 2007년은 이렇게 야생으로 풀려난 황새(한 쌍)가 야생에서 번식 성공한 첫 해였습니다. 야생 번식은 1959년 이후 48년만이었습니다.

 

이어서 2012년에는 야생에서 태어난 2세대 황새들이 다시 야생 번식을 통해 3세대 황새를 출생시켰습니다. 이 3세대 황새는 야생에서 태어난 부모가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짝을 지어 새끼를 친 진정한 야생 황새였습니다. 2014년 2월 현재 도요오카 야외 황새는 72마리이고, 번식하는 황새쌍은 모두 아홉입니다.

 

도요오카 황새.

 

28. 도요오카에는 황새만을 위한 인공습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다이(田結)습지입니다. 도요오카시 북부 바닷가 옛적부터 반농반어 생활을 해온 다이마을 뒤편에 있습니다.

 

이 또한 지루논으로 농촌에 경지정리 바람이 불 때도 원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좁은 골짜기에 끼여 있어서 경지정리를 하는 기계가 거기까지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농사짓기 어려워지자 논들이 버려지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농사를 짓던 두 집이 마침내 2006년 손을 뗐습니다.

 

이 버려진 논에 황새가 찾아왔습니다. 2008년이었습니다. 다랑논은 논두렁이 무너지면서 부드럽게 비탈이 졌고 산에서 흘러드는 물은 논바닥을 거쳐서 절반쯤 흘러나가는 상태가 됐습니다.

 

다이습지. 물길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사슴과 멧돼지가 풀을 뜯고 파헤쳐 키가 큰 식물들은 자라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구덩이가 만들어졌 있었습니다. 버림받은 묵정논이 황새 먹이가 되는 여러 동물들에게는 살기 좋은 터전으로 바뀐 셈입니다.

 

그 뒤로 이런 자연 상태를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황새한테 좀더 좋도록 하는 작업을 황새습지네트워크 연구자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마을 주민이 한 뜻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다이마을과 다이습지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는 1300명 안팎이 찾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다이습지 이모저모를 일러줍니다. 찾아온 이들은 습지를 만들고 가꾸는 자원봉사활동으로 환경보전 체험을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황새 덕분에 마을이 활기를 되찾고 주민들은 다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주민들은 자부심을 갖고 금전적 이득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황새를 비롯해 생태계의 다양한 생물 보전을 위해 활동합니다. 다이습지는 오늘날 도요오카시 사람들한테 자랑이고 또 희망입니다.

 

29. 황새를 야생으로 처음 풀어준 2005년 이후 그렇게 풀려난 황새와 그 새끼들이 서식지를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교탄고시(교토부)는 2세대 황새 부부가 다지마 지역 밖에서 처음 야생 번식에 성공한 지역입니다. 이 황새 부부는 2011년 교탄고시에 스스로 정착해 2012년 새끼를 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도시마습지 인공둥지에 황새가 한 마리 올라서 있습니다.

 

도요오카 출신 황새가 교탄고시에서 번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치단체 사이에 황새마을 조성사업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효고현 야부·아사고시는 물론이고 후쿠이현 에치젠(越前)시, 지바현 노다(野田)시 등 30개 자치단체에서 황새 보전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2012년 가을 도요오카시는 같은 효고현 소속인 아사고시와 야부시에 방사 시설을 만들고 황새 부부를 보내 사육을 시작했습니다. 그해부터 어린 황새를 단계적으로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2013년 12월 12일에는 아사고시에서 풀려났던 어린 황새 네 마리가 대마도까지 건너간 적도 있었습니다.

 

교탄고시는 황새가 자연스럽게 날아간 지역인 반면 아사고·야부시는 황새 서식지 확대를 위해 인간이 일부러 야생으로 풀어주는 근거지로 삼은 지역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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