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사람·자연의 순환·상생 터전인 도요오카 논

김훤주 2015. 6. 17. 08:30
반응형

1. 황새

 

황새는 사람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어울려 살아갑니다.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적인 구조와 황새 보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황새는 사람이 좋아서 또는 사람을 잘 따라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농사짓는 데 좋은 자연 환경이 황새한테도 먹이를 구하며 살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황새는 미꾸라지·미꾸리·동사리·붕어 같은 물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잠자리·메뚜기·딱정벌레·벌 같은 곤충, 개구리, 뱀·무자치·들쥐, 복족류, 지렁이, 작은 새, 논우렁이·새우·말똥게 같은 동물은 물론 대나무·나문재·줄말·이삭물수세미·붕어마름 같은 식물까지 하루에 400~500g을 먹습니다.

 

나카가이 무네하루 도요오카 시장. 경남도민일보 사진.

 

황새는 우리나라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제199호,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1971년까지 우리나라 야생에서 살아 있었다고들 합니다.

 

2. 논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0%, 경작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논은 황새 보전에서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최근에는 논습지 생태계에서 생물이 5668가지 산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생물 2만9800가지의 25%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논은 고립돼 있지 않고 산림과 하천과 연결돼 있는 생태계입니다. 이를테면 숲 속 바위틈에서 겨울을 보낸 개구리는 논으로 내려와 알을 낳고, 하천에서 자란 물고기들은 논으로 올라와 알을 낳습니다.

 

요즘은 보통 논에다 봄에서 가을까지만 물을 채우기 때문에 생애주기가 1년 이상인 물고기는 겨울에는 논을 떠나야 하며 시기에 따라 논, 하천, 봇도랑, 둠벙을 오가며 지냅니다.

 

황새를 키우는 농법을 쓰는 논이라는 표지판. 겨울인데도 물이 채워져 있습니다.

 

옛날 논은 봇도랑이 크게 기울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있고 윗논과 아랫논도 이어져 있어 물이 천천히 흘러내려갔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들이 봇도랑에 있다가도 논으로 쉽게 올라올 수 있었고 또 다른 논으로 옮겨가는 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62년 농촌진흥법이 제정(우리나라)되면서 경지정리를 통해 기계화 등으로 유지관리가 편리한 형태로 논이 정비됐습니다. 이로써 쌀 생산이 1967년 360만톤에서 1976년 520만톤으로 34% 늘어났습니다. 다수확 신품종 개발, 농지 확장, 용수 확보, 경지 정리, 비료·농약·농기구 개발·보급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물빠짐이 잘 되도록 논과 봇도랑(배수로)의 낙차를 크게 경지 정리를 하는 바람에 봇도랑과 잘 연결되지 않고 끊어지는 바람에 생물들이 여기저기 옮겨다니기 어려워졌고 그 탓에 논과 봇도랑에 사는 생물들 가짓수가 줄어들었습니다.

 

70년대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생산성을 높이는 관행농법이 시작됐습니다. 모와 모 사이 간격을 좁혀 어린모를 여러 포기 심었습니다. 이처럼 모를 빽빽하게 심은 탓에 병해충 발생이 많아지자 살충제·살균제 같은 농약을 많이 뿌려댔고 화학비료로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했습니다.

 

논에 들어가 있는 황새를 보여주는 나카가이 시장.

 

이 때문에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이른바 생물다양성은 줄었습니다. 요즘 들어 오리농법·종이멀칭법·왕우렁이농법 같은 친환경농법을 쓰고 있는데 이는 환경오염은 막을 수 있지만 생물다양성이나 생태계 보전에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3. 일본 도요오카

 

도요오카시는 ‘황새를 키우는 쌀’이라는 생물 브랜드 농산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2002년 효고현은 (단순히 환경오염을 억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생물다양성까지 중시하는 황새농법(황새를 키우는 농법) 개발을 황새프로젝트팀을 꾸렸습니다.

 

일본 도요오카 황새.

환경창조형 농업기술 개발이라 할 수 있겠는데, 도요오카농업개선보급센터·도요오카농림진흥사무소(농정과·임업경영과)·도요오카토지개량사무소의 중견 직원으로 구성됐습니다.

 

역할 분담은 이랬습니다. 농정과 : 지원사업 전반 검토, 임업경영과 : 황새가 둥지를 틀 소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기, 토지개량사무소 : 봇도랑이나 어도(魚道) 설치 등 논 환경 정비, 보급센터 : 황새농법 기술 확립.

 

2006년에는 지역농협 JA다지마가 ‘황새를 키우는 쌀 생산부회’(우리로 치면 작목반)를 만들어 황새농법을 도요오카 전역에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새농법은 생물이 한 해 내내 논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소출까지 높이는 농법이랍니다.

 

물 관리가 가장 큰 특징인데 모심기 한 달 전부터 논에 물을 채우고 심은 뒤에도 깊은 물 관리를 해서 물 속 생물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잠자리 유충이 잠자리가 되는 7월 상순까지 물을 채워놓고 거둔 뒤에도 미생물 먹이가 되는 쌀겨와 거름을 뿌리고 물을 채웁니다.

 

겨울철에 물을 대면 물새가 살 수 있게 되며 실지렁이도 계속 살 수 있어서 잡초를 억제하는 효과도 납니다. 방귀벌레·멸구·벼바구미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개구리·나비·사마귀도 알맞게 살도록 해서 해충의 번식·피해를 줄입니다.

 

한편 피는 깊이 8cm 이상 되도록 물을 관리해 발생을 억제하며 대신 물이 깊을 때 생겨나는 물옥잠은 유기산을 뿌려 없애준다는 것입니다.

 

4. 황새농법

 

도요오카시 인정 '황새의 춤' 농산물이라는 딱지. 아래에는 '효고(현) 안심 브랜드'라 적혀 있습니다.

 

논에 일찍 물을 대면 물벼룩과 실지렁이가 늘어나고 미꾸리 같은 물고기와 개구리가 많이 살게 됩니다. 미꾸리 같은 물고기는 해충인 곤충 유충을 잡아먹고 개구리는 벼멸구와 노린재들을 잡아먹습니다.(앞 내용과 좀 겹치기는 합니다^^)

 

이런 생물들이 많이 들어 있는 논은 제비·백로·황새·기러기 같은 새들의 먹이터가 됩니다. 황새는 논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양서류, 파충류, 어류, 설치류 등 다양한 생물들을 두루 잡아먹습니다.

 

모내기 전에 물을 가둬뒀다가 잡초가 싹을 틔우면 진흙을 갈아엎어 잡초를 묻어버립니다. 그 뒤 25cm 이상 키운 큰 모(어린모가 아니라!!)를 심고 물을 깊이 댑니다. 그러면 잡초는 깊은 물 속에서 광합성을 제대로 못해 자라지 못합니다.

 

반면 물을 깊이 대면 붕어·메기·송사리들이 살아가는 데는 알맞은 논이 됩니다. 이에 더해 논과 봇도랑 사이에 어도까지 설치하면 봇도랑에 사는 붕어· 미꾸리·메기·버들치 같은 물고기들이 논으로 올라오고 둠벙을 만들어 두면 논물 빼는 시기에 생물들이 옮겨와 둠벙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나카가이 시장이 보여주는 컴퓨터 모니터에 아이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논의 생태계 다양성을 높이는 황새농법은 야생 황새한테 안정적인 서식 환경을 마련해 주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5. 대접받는 황새쌀

 

도요오카에서 황새농법으로 생산한 ‘황새를 키우는 쌀’의 2007년 생산량은 이랬습니다. 무농약 고시히카리 45톤, 저농약 199.5톤. 금액으로는 대략 1억3923만엔이며 이로써 황새 브랜드 이전보다 36% 수익이 더 발생했습니다.

 

황새농법으로 짓는 황새쌀의 생산량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동참하는 농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늘어날까요? 수고는 덜어지고 소득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농민은 농약을 덜 씀으로써 논의 생태계를 지키는 한편으로 안전한 쌀을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어서 좋습니다. 소비자는 환경을 생각하면서 생산한 쌀을 믿고 안심하며 소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일본에서는 무농약 ‘유기농쌀’보다 저농약 ‘에코쌀’이 인기가 더 좋습니다. 에코쌀이 유기농쌀보다 값이 싸고 관행농법 생산 쌀과 견줘서는 더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농민들도 생산은 줄고 노동은 느는 무농약 유기농쌀보다 그렇지 않은 저농약 에코쌀 재배가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