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치트완국립공원 근처에는 타루족이 사는 마을이 둘 있습니다. 우리는 소우라하라는 마을에 묵었는데 거기서 서남쪽으로 한 군데 있고 동북쪽으로 한 군데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돌아와서 지도를 찾아보니 동북쪽 타루족 마을이 타로울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는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져 있는 북쪽 산악지대와는 달리 지평선이 아스라한 평원지대입니다. 네팔에서는 이 평원을 ‘터라이’라 하는데 얼마 전만 해도 말라리아모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답니다.

 

타루족은 1000년도 더 전부터 터라이평원 북서에서 남동으로 길게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 몽골리안인데요, 이들은 히말라야도 넘고 산악지대도 벗어나 여기 인도 국경 가까운 평원까지 내려온 데는 어떤 사연이 있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짐작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습니다.

 

벼락을 자세히 보면 분홍색 무늬가 있습니다. 주먹 쥔 손으로 옆을 찍으면 나오는 무늬로 타루족임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어쨌거나 평원지대다 보니 집도 산골과 달랐습니다. 히말라야 산악지대는 집들이 모두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여기 집은 재료가 진흙이 기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흙집도 옛날 볏짚 같은 띠나 대나무를 잘게 쪼갠 살을 바른 위에 황토를 버무리기 일쑤였는데 여기 흙집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지붕은 우리처럼 기와를 올린 경우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콘크리트 제품도 섞여 있었고 많은 경우는 구하기 쉬운 띠(이를테면 여기서 ‘카라이’라 하는 코끼리풀)로 이었더랬습니다. 이런 흙집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타로울리 마을에 들어가면 한가운데 타루족 문화전시관 비슷한 건물이 있었습니다.

 

네팔 평원지대 기와집. 암키와 수키와 구분이 없습니다.

 

영주형은 그 옆 흙집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랑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아마도 그 집 주인은 우리로 치자면 마을 이장쯤 되는 동네 유지 같았는데요, 문화전시관 비슷한 건물을 그 집에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시관을 먼저 들러 구경했습니다. 크지 않은 편이고 여러 물건이 나와 있지는 않았습니다. 따로 입장료나 관람료는 받지 않았지만 그 집 젊은 여자가 문을 따주고 옆에서 동행하면서 이래저래 설명해준 데 대한 고마움으로 기부(Donation)라 적힌 상자에 100루피 지폐를 한 장 넣었습니다.

 

문화전시관에서 무언가에 대해 제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영주형은 집 들머리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더니 몇 해 전에 총기사고로 한꺼번에 숨진 네팔 임금 일가라면서 이 집 주인은 그러면 왕당파일지도 모른다 했습니다.

 

영주형은 이런 사진과 그 옆 힌두신 시바 그림을 갖고 말을 섞었고요, 덕분에 우리도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되도 않는 손짓 몸짓 말짓까지 곁들여 얘기를 나눴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집안에 한 번 들어가 보자. 허락을 받았어.”

 

우리는 우와! 함성을 내지르며 생각지도 않은 소중한 기회를 반겼습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런 우리가 우리가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지는 모양인지 조금은 낯설어 하면서도 웃음 띤 얼굴로 맞아줬습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좋아했고요.

 

타로울리 마을의 일상 풍경.

 

우리는 이처럼 옛날부터 있어온 흙집을 보면 그런 집안에 현대 문명의 상징인 전자제품 따위는 없으리라 거의 본능적으로 지레짐작합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안방으로 보이는 한가운데에, 비록 뒤가 불룩한 구형(우리로 치면)이기는 하지만 그럴 듯한 텔레비전이 한 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리한테 스며 있는 선입견 또는 편견이란 이렇게도 대책없이 무차별적인 것이었습니다.

 

스스럼없이 둘러봐도 된다고는 했지만, ‘나름’ ‘문명인’인 우리는 그래도 속속들이 들춰볼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더운 바깥과 달리 시원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갓 캔 듯한 고구마가 있었는데 알이 굵지 않아 토종 같고 씹는 맛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왼쪽으로도 집이 이어져 있었는데요, 이것이 바깥에서 볼 때는 아예 다른 집처럼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그 쪽 집에서 한 할머니가 보이기에 “Who?” 누구냐 물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습니다. “My father's first wife.” 우리 아버지의 첫 번째 아내.

 

잠깐이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대답을 했다면 두 사람은 아주 쌀쌀하고 냉랭한 사이라 여기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네팔입니다. 네팔 힌두교는 한 남편에 여러 아내가 공존 가능합니다.

 

네팔 평원지대 구멍가게 모습.

 

그러고 보니 아까 바깥 평상에 늙수그레한 남자가 한 명 앉아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 젊은 여자는, 자기가 그 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자기 아버지가 처음 결혼한 여자라는 뜻으로 말한 셈입니다. 잠깐 헤매던 저는 우리 식으로는 뭐라 해야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큰엄마?’ 비슷하지만 맞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이 20대 초반 젊은 여자들은요, 가까이서 보니 그 까무잡잡한 살결이 어찌나 곱고 그 커다란 눈동자가 어찌나 맑던지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이러고 있는데 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젊은 여자들과 또 한 세대는 아래임직한 꼬마 아이들이 우리랑 함께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요 그 할머니 같은 father's first wife가 뭐라 한 마디 했는데 분위기가 갑자기 움츠러들면서 조용해졌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젊은 계집애들이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그렇게 떠들어!” 이런 정도로 짐작하며 살짝 웃었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어린 꼬마들이 바로 이 젊은 여자들의 자식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다들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밖에 안 되는 나이인데도 벌써 혼인을 해서(married) 아들딸을 낳은 것입니다. 그이들 가운데는 다시 아랫배가 살짝 볼록해져 있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간호사가 될 것(I will be nurse.)이라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공부도 했고 시험도 쳤다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이를 위해 진심으로 손뼉을 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며칠 있지 않았지만 네팔에서 여자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가 무척 어려운 일임이 넉넉하게 짐작됐기 때문이지요.

 

이어서 둘러본 뒤뜰은 다른 여느 네팔 집안처럼 너른 논밭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농사를 지어 나는 소출은 앞쪽 대문이 아니라 이렇게 뒤뜰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는 셈입니다.

 

뒤뜰은 또 현대와 고대의 공존 무대였습니다. 인류가 구석기시대부터 써온 갈돌도 있고, 철기시대 만들어진 가스생산설비도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도 갈돌은 본 적이 없고 고작 박물관 등지에서 봤을 뿐인데요, 여기 갈돌은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곡식을 갈고 껍질을 벗기는 모양입니다.

 

갈돌로 갈아보고 있습니다. 왼편 우물처럼 보이는 것이 가스생산설비입니다. 여기에 짐승 똥을 넣고 돌리면 나오는 가스는 제 머리 뒤쪽 튀어나온 콘크리트 기둥을 통해 파이프를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아주 제 원형질이라도 만난 듯이 이 갈돌을 보고 좋아라 했습니다만, 역시나 아는 것이 많고 관찰력이 남다른 영주형은 그 옆에 있는 쇠파이프에 먼저 눈이 간 모양이었습니다. 영주형은 좋은 볼거리를 일러줄 수 있게 됐다는 듯이 눈부터 먼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짐승 똥에서 가스를 뽑아내 연료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여기서부터 이 파이프를 따라서 저기 저 쪽 부엌으로 연결되지.” 그러면서 쳐다보던 젊은 여자들한테 뭐라 얘기하더니 곧바로 “예스”라는 답을 얻어내는 영주형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바퀴 두르고 돌아나왔는데 그냥 가기는 아쉬웠습니다. 특히 영주형은 어린아이를 좋아해 안고 어르고도 했는데요, 가방을 뒤져보니 아이들한테 줄만한 과자가 집혔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넷이고 과자는 셋이었습니다.

 

타로울리 들렀다가 소우라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하는 수 없어서 셋은 그대로 주고 하나는 더 사서 주겠다며 따라오라(follow me) 했습니다. 우리는 마을 들머리 구멍가게까지 가서 20루피(200원)인가 40루피인가에 과자 하나를 사서 손에 쥐여 줬습니다. 젊은 엄마는 웃으며 ‘나마스테’라 하더니 돌아서 가는데, 줄곧 한 손을 들고 우리를 향해 흔들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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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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