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

2화. 채현국이 강연장에서 고함을 지른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5. 3. 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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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열린 채현국 강연·대담


채현국 어른은 돈, 권력, 명예를 인간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중독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유명해지는 것도 경계한다. 내가 지역신문 기자의 의무감 또는 부채의식으로 그의 삶을 기록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나를 훌륭하다든지 근사하다든지 그런 식으로 쓰지 마시오. 괜찮은 어른이란 말도 쓰지 마시오. 만일 그런 식으로 미화하거나 하면 (책을) ‘불 싸지르라’고 할 거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겨우 비틀거리면서, 어떤 술 취한 놈보다 더 딱한 짓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명리에 눈멀어 꺼떡거리고 다니는 저런 꼬라지를…. 그런 대열에 나를 세우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 나 또한 이 어른을 실제 모습 이상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가 얼마나 그런 걸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진주 강연에 앞서 진주문고에서 책을 보고 있는 채현국 어른. @김주완


지난 1월 28일 오후 6시 30분 경남 진주시 ‘진주문고’(대표 여태훈)가 채현국 어른을 불러 진주청소년수련관 다목적강당에서 강연과 대담 행사를 열었다. 질문 순서에서 한 청중이 그를 추켜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장폴 사르트르라는 소설가가 체 게바라를 일컬어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격과 양심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저는 감히 채현국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하고….”


이 대목에서 채현국 어른이 갑자기 말을 자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저러니 내가 사기꾼 안 될 도리가 있습니까?”


청중은 큰 웃음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그를 추켜세우던 한 청중은 머쓱해졌다.


강의 시작 땐 이랬지만 잠시 후 자리가 모자랐다. @김주완


돈·명예·권력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그에게 ‘왜 유명해지는 걸 경계하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유명해지는 순간에 거짓말 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시시한 삶만이 확실하게 행복한 삶이라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특별하거나 조금이라도 별나면 행복이 쭈그러지고 이상해집니다.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내가 사업 정리하고 나눠준 걸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내가 한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한 겁니다. 내가 했다고 하는 순간 거짓말이야. 함께 할 때 제가 거기에 있었던 것뿐입니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권력, 명예, 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중독이지. 권력과 명예와 돈은 확실히 중독이야. 사랑도 중독이고 노동도 중독이 있지만, 돈 권력 명예는 거기에 비할 수 없이 심한 중독입니다. 도박 따위의 중독은 저리가라입니다. 아편 따위의 중독도 저리가랍니다. 식구가 다 죽든, 민족이 다 죽든 권력은 놓고 싶지 않고, 인류가 다 죽어도 제 혼자서라도 부자 되려는 게 인간입니다. 이 중독이라는 것은 끝도 없고 한도 없고 정말 정체가 없습니다. 완전히 정신병입니다. 나도 거기(돈 버는 중독)에 딱 걸려들더라고.”


그래서 1973년 잘 나가던 사업을 딱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돈 버는 일에 중독되어가지고 사람노릇 하긴 힘들기에 그냥 그만두고 싶었던 차에 우는 아이 볼 꼬집어주는 것처럼 박정희가 유신헌법 만들고 난리를 치기에 더 이상 돈 가지고 할 일이 없어 관두게 된 겁니다.”


대담은 간디학교 이임호 교사, 남해 상주중 여태전 교장과 진행됐다. @김주완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신나게 하라


그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날 <진주문고> 강연과 대담에서 여태전 남해 상주중학교 교장이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 세대는 치사하고 더럽고 야비한 짓 많이 하고 추잡하게 살아왔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도록 기를 써라 기를 써. 그래야 저렇게 안 되지 까딱하면 저렇게 됩니다. 아버지도 원래는 아들이었습니다. 제발 아들들아. 아버지가 처음부터 아버지인 것처럼 까불지 마라. 이놈의 새끼들, 봐주는 체 하고 그 뒤에 숨지 마라. 이 쓰레기들아! 하는 소리가 들어있는 겁니다. 쓰레기는 절대로 거름이 못됩니다. 썩는 것도 여러 가지입니다. 발효와 썩는 것의 차이. 쓰레기와 거름이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태전 교장이 또 물었다. “제가 자주 들었던 말씀 중 하나가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마. 그냥 열심히만 해.’ 이랬거든요? 그런데 이임호 선생(간디학교 교사)한테는 ‘열심히 살았다고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데, 그 말도 하지 마라면 어떡하죠?”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사람이 잘 하려는 마음이 자꾸 들지 않습니까? 공부 잘 할란다. 아버지한테 잘 할란다. 엄마한테 잘 할란다. 친구한테 잘 할란다.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지.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잘 하려고 그러면 꼭 거꾸로 됩니다. 낙담하게 되고, 부끄러워지고 창피해집니다. 그리고 열심히도 그렇습니다. 신나게 하면 하는 거지 열심히는 뭐 어떻게 하는 게 열심입니까? 아무리해도 끝도 없는 게 열심인데. 신나면 됩니다. 정말 우리 여태전 교장 좀 열심히 합디다.(청중 웃음) 자꾸 열심히만 하는 거야.(청중 크게 웃음) 신나게 안 하고…. 좋습니다 물론. 그러나 신나게, 재미있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청중의 질문을 듣고 있는 채현국 어른. @김주완


교육의 독을 빼고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워져라


이번엔 김해에서 왔다는 한 청중이 물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참여하라>는 책에 보면 ‘반죽을 부풀릴 누룩이 되라’는 구절이 있는데, 사실 누룩이 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에 대해 그는 ‘소박한 마음을 회복하면 된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을 교육 받습니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잠도 안 자고 오만 짓을 다하면서 교육 받습니다. 제발 그 독을 어떻게 하면 빼느냐를 생각하십시오. 효모 되는 길은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까, 이것부터 시작하시면 발효되고 누룩이 됩니다. 발효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고 안 하고 있는 겁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소박한 마음만 회복하시면 됩니다. 조금만 자기를 예쁘게 봐주면 됩니다. 잘난 척 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를 좀 예쁘게 봐주는 겁니다.”


이날 행사는 평소 채현국 어른과 친분이 있는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가 ‘인문 특강’의 한 순서로 개최했다. 230석 행사장에 260여 명이 참석했다. 최근들어 진주에서 열린 행사 치고는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렸다. 행사장 출입구에서 책 <풍운아 채현국>을 판매했지만, 이 또한 수익이 목적은 아니었다. 무료강연이었고, 뒤풀이 장소에 모인 50여 명의 밥값과 술값도 모두 진주문고가 계산했다.


진주 특강 후 뒤풀이 자리. @김주완


채현국 어른은 일정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누가 어디서 부르든 달려가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한다. 자신의 표현대로 ‘백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세가 연세인지라 가끔 이야기가 주제를 벗어나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방적 강연보다는 패널과 함께 하는 대담형식의 토크쇼가 낫다. 혹 그를 초청하고픈 분이나 단체는 참고하시길….


다음주 3화는 우리시대의 또 다른 어른, 또 다른 채현국을 만나보려 한다. 대전에 살고 있는 장형숙(1927년생, 89세) 어른 이야기다.


※포털 다음 뉴스펀딩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다음에서 보기☞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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