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

1화. "노인 봐주지 마라" 팔순 채현국의 일침

기록하는 사람 2015. 3. 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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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지난해 <한겨레> 인터뷰와 최근 출간된 <풍운아 채현국>을 통해 ‘시대의 어른’으로 떠오른 채현국(1935~) 효암학원 이사장의 일갈은 앞뒤 막힌 노인 세대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을 욕하는 젊은 세대 역시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똑같은 꼴이 된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그는 말한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고,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 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하면 저렇게 된다는 거지.”


이처럼 백발의 채현국은 젊은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그의 80년 인생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렇다.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괜찮은 어른들이 있다. 그런 어른을 찾아 나서보자. 어른들이 바로 서야 가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선다. 그런 어른들에게 배우자.


채현국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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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은 누구인가


그는 정말 몰랐다. 일본이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오히려 해방이 충격이었다.


“세상이 옳다고 가르쳐준 게 전부 거짓말인거야. 영국놈, 미국놈은 다 죽여야 할 짐승 같은 놈이라고 얘길 했는데, 학교 칠판 옆에 루즈벨트, 처칠 얼굴 붙여놓고 거기에 사무라이가 칼로 이마빡을 쑤셔놓은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어요. 그런데 해방이 딱 되고 보니 이건 뭐, 듣는 소리 아는 소리 전부 믿을 건 하나도 없어.”


1935년 일본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채현국 경남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 우리 나이로 81세의 노인이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잘못된 생각만 고정관념이 아니라 옳다고 확실히 믿는 것, 확실히 아는 것 전부가 고정관념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그를 ‘거리의 철학자’(남재희·언론인) 또는 ‘발은 시려도 가슴은 뜨거웠던 맨발의 철학도’(구중서·문학평론가)라 부른다. 실제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왔다. 그러나 철학과 무관한 수식어도 많다.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준 파격의 인간’(임재경·언론인), ‘인사동 낭인들의 활빈당주’(조문호·사진작가), ‘현대판 임꺽정’(이규섭·시인) 등이다.


양산효암고, 개운중학교 운동장에서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60~70년대 탄광사업으로 성공한 거부


그런 수식어가 붙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금을 많이 내도 당시(1970년대) 순이익이 월 100만 달러(약 10억 원)씩 남았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그런 큰 부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많던 돈은 다 어떻게 했을까.


1960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중앙방송(현 KBS)에 연출직(현 PD)으로 입사한 채현국은 방송이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 후 아버지가 강원도 삼척군 도계에서 운영하고 있던 부도 직전의 탄광 사업에 합류, 간신히 부도를 막아내고 굴지의 광산업자가 되었다. 모기업인 흥국탄광 외에도 충남 천안의 흥국금광, 충남 장항의 흥국흥산(조선), 흥국해운, 흥국화학을 비롯, 무역, 목축, 묘목 사업에 이르기까지 24개 기업을 거느린 흥국재단을 총괄 경영하며 10여년 만에 큰돈을 벌었다.


1995~1966년에는 양산 개운중학교를 인수해 당시 <민족일보> 창간을 주도하고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결성한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종률 선생을 교장으로 일할 수 있게 했고, 마산대학(현 경남대학교)을 인수해 운영하다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흥국재단의 마산대학 인수를 알리는 1966년 9월12일 경남대학보



이렇게 사업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표면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면서 군사정권의 지명수배를 받거나 도망 다니는 사람들을 그 탄광에 받아서 그들에게 호신처를 제공하고, 또 음으로 양으로 반독재의 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리영희·언론인) 사람이 바로 그였다.


독재정권과 결탁하기 싫어 모든 사업을 정리하다


그러나 1972년 12월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선포하여 종신독재의 기반을 구축하면서 그의 사업도 독재정권과 협력·결탁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물론 정권과 결탁하기만 한다면 지금의 삼성을 능가하는 재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73년 그는 모든 사업을 접기로 하고 전 재산을 처분해 종업원들에게 나눠주고 기업은 해체시켜버렸다. 자기 몫의 재산은 아버지에게 모두 드렸다. 하루아침에 자신은 무일푼이 된 것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효암학원은 현재 양산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그의 아버지 효암(曉巖) 채기엽 선생의 호를 딴 이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988년부터 이 학교법인의 이사장을 맡았지만 월급은 없다. 게다가 그는 지금 신용불량자 신세다. 은행 통장도 없다. 1970년대 말 친구들이 하던 사업에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그렇게 된 후 35년 넘게 그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1973년 그의 나이 서른여덟에 사업을 정리한 후 40년 넘게 사실상 백수로 살아온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고? 지인들을 상대로 ‘삥땅’을 쳐서 산다. 사람을 좋아하고 술 또한 좋아해서 많이 다녀야 하고 술값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르노니 이 어른을 강연이든 세미나든 초청할 때 공짜로 부를 생각은 하지 말기를….


지난 1월 28일 진주에서 이병철 전 전국귀농운동본부장과 함께 한 채현국 어른 @김주완


그를 일컫는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돈과 명예,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는 인생을 살아온 ‘풍운아’였으며, ‘꼰대’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 시대의 어른’이었다. 얼마 전 대안교육 전문가인 여태전 남해 상주중학교 교장은 <경남도민일보>에 쓴 칼럼에서 ‘꼰대’와 ‘어른’을 이렇게 정의했다.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다.”


그랬다. 내가 본 채현국 어른은 고정관념과 통념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그런 어른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며 이야기하기를 즐기지만, 돈과 명예, 권력을 가장 경계하는 분이었다. 이 시대의 어른 채현국과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어른들을 찾아나서 보자.


※포털 다음 뉴스펀딩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다음에서 보기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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