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스님들 촛불 법회와 사제단 미사

김훤주 2008. 7. 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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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법회에서 같은 점 여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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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미사와 조계종 중심 스님들 법회의 공통점은 많습니다. 둘 다 촛불을 들고 진행했다거나, 성가(聖家)나 불가(佛歌) 말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같은 속가(俗歌)가 울려퍼졌다거나 하는 점입니다.

둘 다 대통령 이명박과 정부를 나무랐으며 국민 말을 받아들여 고시를 철회하고 전면 재협상을 추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검역주권과 국민건강권이 핵심임을 밝히면서 비폭력 평화 행진으로 마무리한 점도 같습니다.

촛불 미사와 촛불 법회가 다른 점 하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저는 6월 30일 미사에는 제가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가지 않았고, 7월 4일 법회에는 제가 불자가 아니면서도 어쩌다 보니 끼이게 됐습니다.

사제단은 제가 듣기로 미사 강연 도중인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성명을 통해 이명박을 비판하는 한편 사랑을 강론하면서 맞서 싸우는 이까지 포괄하자고 주문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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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는 제가 다 지켜보지 못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명박을 비판하는 얘기뿐이었습니다. 천주교 못지않게, 아니 제 느낌으로는 천주교의 사랑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자비’를 내세우는 불교로서는 좀 낯설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조금 지나니 ‘낯섦’의 원인이 나타났습니다. 이명박의 ‘종교 편향’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명박의 ‘개신교’ 집착에 대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고 되묻는 발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나라는 국교가 없는 나라인데도 마치 개신교를 국교처럼 받들고 있다는 취지 발언도 나온 것 같습니다.

스님들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나 자비를 이명박에게 적용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이명박의 또다른 업보인 셈입니다.

미사와 법회에서 또 하나 다른 점

앞에 캐치프레이즈처럼 내세운 말씀이 달랐습니다. 제게는 두 종교의 세계관-우주관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6월 30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 앞에 내세운 말씀입니다.-“어둠은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촛불이 이긴다.”

4일 저녁 시국 법회를 연 스님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으로 살고 / 우리 서 있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합시다.”를 무대 정면에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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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 불교에서 빛과 어둠은 서로 맞서는 관계가 아닙니다. 이 둘은 서로 전환하는 관계입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입니다.

어둠이 빛이 되고 빛은 어둠이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르지만 어떤 조건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천주교에서 진리는 빛의 나라입니다. 반면 어둠의 나라는 악(惡)의 세계이고 거짓 그 자체이며 따라서 물리쳐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선(善)의 세계는 영원히 굳세게 지켜야 할 성역이며 빛과 어둠 사이에는 다툼만 있을 뿐이고 승리와 패배 둘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진리는 빛에도 없고 어둠에도 없습니다. 불교에서 진리는 빛도 아니며 빛이 아님도 아닙니다. 마찬가지 어둠도 아니며 어둠이 아님도 아닙니다.

제가 공부가 깊지 않아 진리가 무엇이다고, 여여(如如=굉장히 수준 높은 불교 용어인줄 압니다만)하게는 알지 못하고 어름하게 ‘있는 바 본성이 본성대로 되게끔 하는 이치’ 정도로 압니다만.

둘 다 멋지고 좋았지만

저는 사제단이 “어둠은 빛을 이긴 적이 없다.”도 정말 멋지고 좋았지만(왜냐하면 촛불에 대한 믿음과 찬성이었거든요), 많은 이들에게는 늘어진 소불알처럼 멋대가리 없어보였을 것이 틀림없는, 어제 저녁 법회에 내걸린 말씀도 좋았습니다.

“어디에서나 주인으로 살고”는 그러니까 이렇게 제게 읽혔습니다. “사람에게든 돈에게든 아니면 다른 어떤 존재에게든 전혀 휘둘리지 맙시다!”

“우리 서 있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합시다!”는 당연히, “세상 만물 모든 존재들이 제 뜻에 겨워 원래 본성대로 다 갖추게 해 줍시다!” 이겠지요.

스님들은 먹지도 않는 광우병 쇠고기 국면에 맞춰 말하자면, 사람도 사람처럼 살고, 소 또한 소답게 사는 세상이 진리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네가티브(Negative=영어를 써서 미안합니다.) 말법으로는, 소가 풀이 아닌 동물 사료나 먹어야 하는 세상, 사람이 자유롭지 못하고 자본이나 권세에 짓눌리는 세상은 진리의 땅이 아닌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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