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집회에서 '지역'이 사라진 까닭은?

기록하는 사람 2008. 7. 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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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바꾼 큰 항쟁들은 모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시작되었거나, 지역의 항쟁이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된 곳도 충남 천안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 친미정권이었던 이승만을 무너뜨린 1960년 4.19혁명은 2.28대구학생데모와 3.15마산의거에서 시작돼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참혹한 시신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또 박정희 독재의 종말을 고한 79년 부마민주항쟁과 80년대 반독재투쟁의 불씨가 된 광주민중항쟁 역시 '지역'이 중심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도 서울이 중심이긴 했으나 6월 14일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해산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든 항쟁에 다시 기름을 끼얹었던 것은 진주와 마산, 부산 등 영남권의 격렬한 시위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이상할 정도로 서울 중심성이 확고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시군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리고는 있지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뿐 아니라 정국 상황에 거의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1년 전인 87년 6월 18일자 조선일보. 지역시위를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지난 6월 7일과 17일 포스트를 통해 서울과 서울 외 지역 촛불집회의 차이를 비교해본 바 있습니다.

촛불집회, 서울과 마산·창원의 차이는?
http://2kim.idomin.com/232
지역 촛불시위가 평화로운 이유 http://2kim.idomin.com/213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번 촛불집회는 '지역'이 별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첫째, 과거의 다른 항쟁과 달리 이번 촛불집회의 발원지가 '인터넷'이었다는 것입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참사사건 때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도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번 촛불집회만큼 시작에서부터 진행과정까지 줄곧 인터넷이 중심이 되고 있는 항쟁은 드뭅니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서울이든 마산이든 춘천이든 광주든 인터넷에서는 동일한 공간일 뿐입니다. 따라서 거리와 공간의 차이가 없어져 버린 항쟁이 이번 촛불집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터넷에서 '가치와 관심사에 따른 공동체'는 있을지언정 '지역별 공동체'는 존재하기 어렵거나, 있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특히 인터넷 공간은 조회수와 추천수, 댓글수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됩니다. 즉 하루에 올라가는 수 천~수 만 건의 글 가운데 베스트 10위 또는 20위권에 들어가지 못한 글은 사장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베스트에 올라간 글은 수십 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지만, 나머지는 거의 읽히지 않은 채 묻혀버리고 맙니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은 선택받을 수 있는 여지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발원지가 인터넷이었던 데 이어 오프라인 집회의 시발지가 서울의 중심부인 광화문 청계광장이었다는 점입니다.

앞에는 청와대가, 뒤에는 서울시청 광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부중앙청사와 미대사관은 물론 대표적인 친정부 언론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버티고 있는 곳이어서 집회 초기부터 강력한 장소의 상징성을 획득했습니다. 이런 상징성이 촛불집회의 서울 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6월 28일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 도로를 가득 메운 군중들. /김주완


세번째로는 앞서 말했던 인터넷 등 통신과 매체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교통수단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점을 들 수 있습니다. 21년 전 6월항쟁 때까지만 해도 남해 하동 거창 산청 함양 합천 등 이른바 서부경남 사람들이 마산 집회에 참여하려면 약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제로 87년 6.10대회 때 경남의 전 시군에서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마산으로 집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까지 가는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마산에선 세 시간 반, 진주나 거창 함양 등 서부경남에서는 그보다 짧은 두 시간 반이면 됩니다.)

그러나 지금도 서부경남에서 마산까지의 시간거리는 21년 전과 같습니다. 마산이나 창원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투자했던 세 시간이면 서울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데, 굳이 마창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10일과 28일 서울 집회 현장에는 전국의 각 지역별 깃발이 수십 개에 달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87년 6월항쟁 당시 6.10 마산대회 모습. 이날 대회에는 서부경남의 대학생과 농민 등이 서너시간씩 걸려 마산집회에 참여했다.


네째, 경찰 역시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시위진압에 투입되는 전의경 상설부대 인력도 거의 서울에 집중해 있습니다. 지역 집회는 굳이 막을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섯째, 방송과 신문 등 기존 언론은 물론 인터넷언론과 1인미디어라 불리는 블로거들까지도 지역의 집회에 대해서는 거의 취재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의 '커서'(
http://geodaran.com/)와 광주의 'Dream'(http://blog.daum.net/ideabanker/), 진해의 '실비단안개'(http://blog.daum.net/mylovemay) 등 몇 몇 블로거는 열심히 지역 촛불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도 지역 촛불 소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지역일간지들조차 자기지역의 촛불집회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신문은 지역의 촛불집회를 사진없이 사회면 구석에 1단으로 배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의 9시 뉴스에도 지역 상황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여섯째, 지역의 촛불집회에서 서울을 앞서는, 또는 서울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라든지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의 관심에서도 계속 소외되고 있습니다. 특히 21년 전 6월항쟁 때는 진주지역 대학생들이 고속도로나 철로를 점거하고 LPG운송트럭을 탈취하는 등 과격한 시위로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비폭력'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는 바람에 지역의 돌출적인 과격시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낮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6월 28일 서울시청 광장에는 부산과 경남 등 지역에서 온 깃발이 많았다. /김주완


이런 것들이 2008년 촛불집회와 과거 3.15와 4.19, 10.18, 5.18, 6월항쟁과 확실히 다른 서울 중심성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렇잖아도 모든 분야에서 서울집중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시위마저도 지역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 대항하여 '지역을 지키자'고 하는 건 기계적인 지역주의이며 변화한 시대의 흐름과 조건을 인정하지 않는 완고함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엔 자기 지역집회에 충실하고, 중요한 고비가 되는 특별한 날(예를 들면 지난 6월 10일과 28일, 그리고 7월 5일)에는 지역 사람들도 서울로 집중'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날도 사정상 서울로 가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을 위해 지역에서도 간이집회는 하는 게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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