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함안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가을 단풍

김훤주 2014. 10. 30. 16:00
반응형

10월 17일 창원교통방송 원고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단풍 구경 하면 멀리 떠나야 제 맛인줄 압니다. 하지만 멀리 떠나봐야 길만 막히고 오고가는 데 시간만 많이 걸릴 뿐 실제 누리는 바가 대단하지는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가까운 지역에서 잘 찾아보면 들이는 노력은 크게 주는 반면 내용은 알찬 그런 데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창원과 가까운 함안에서 그런 데를 한 번 찾아나서 보겠습니다.

 

첫머리는 칠원면 무릉산 기슭 장춘사가 되겠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서 장춘사까지 가는 산길은 대략 3km입니다. 이 자드락 산길은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 넘지 않고 발길을 재게 놀리면 40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갈 무기연당. 왼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하환정(何換亭). 이 좋은 풍경을 어찌(何) 벼슬 따위와 바꾸겠는가(換)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별로 가파르지도 않으며 양쪽으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잔뜩 키를 키운 채 늘어서 있어서 시원한 기운이 언제나 뿜어져 나옵니다. 이처럼 올라가는 길은 고즈넉하고도 호젓합니다.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숲은 소나무도 있지만 활엽수가 그보다 더 많아 나름 단풍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리저러 보기 좋을만치 휘어져 있어서 가물가물해진 30년 전 어릴 적 추억처럼 아련함을 흩뿌리기도 합니다. 장춘사는 이런 오솔길이랑 잘 어울리는 절간입니다.

 

신라 흥덕왕 때 무염국사가 지었다지만 자취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앞마당에 5층석탑이 하나 있는데 어떤 시대 양식과도 관련이 없이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후대 사람들은 이 석탑에서 대한민국 시대 석탑 조성의 한 특징을 찾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릿대로 만든 장춘사 삽작문.

 

그래도 멋과 맛이 있는데요, 바로 조그맣기 때문입니다. 장춘사는 있는 그대로 나앉은 천연덕스런 공간입니다. 다른 여느 절간에는 다 있는 일주문이라든지 사천왕문이라든지는 아예 있지도 않습니다.

 

조릿대로 만든 삽작문이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을 뿐입니다. '무릉산 장춘사(武陵山 長春寺)' 현판이 붙은 조그만 정문은 오히려 오른쪽에 숨어 있습니다.

 

대웅전도 크지 않아 설법을 펼치는 무설전보다 작습니다. 무염국사를 섬기는 조사전은 여염집 사랑채처럼 들어앉았고 약사불을 모신 약사전도 가로세로 한 칸짜리입니다. 산신각 안에서는 산신령 한 분이 귀여운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산신각 옆에는 발갛게 익어가는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감나무가 한 그루 자태를 뽐냅니다. 대웅전 뒤쪽 언덕배기는 볕바라기 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더 이상 소박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한 장춘사이기에 사람들은 여기서 긴장할 까닭이 없습니다.

 

긴장은 속세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무장해제를 합니다. 대웅전이 어떻고 부처가 어떻고 따져볼 필요가 없습니다. 대청마루나 축대에 삼삼오오 걸터앉아 정담을 나눠도 어느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습니다.

 

 

장춘사 스님들은 오히려 그렇게 하라 부추기기까지 하십니다. 그래서 절간이 주는 힐링 효과가 아주 큰 장춘사입니다. 사람 마음에 주는 위안이 꼭 절간 크기랑 비례하지는 않음을 잘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어서 고려동 유적지로 갑니다. 고려 왕조에서 성균관 진사 벼슬을 살았던 이오라는 인물이 600년 전 고려를 거꾸러뜨리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노라며 자리를 잡은 데가 바로 산인면 모곡리 고려동입니다.

 

이오는 마을 전체에 담장을 둘러 바깥쪽 조선 땅과 구분지은 뒤 '고려동학' 비석을 세워 고려 유민이 사는 땅임을 밝혔습니다. 스스로 논밭을 일궈 자급자족함으로써 바깥세상과 연결·접촉도 최소로 줄였습니다. 아들에게는 조선 왕조에 벼슬을 하지 말라 유언했고요, 후손들은 선조 유산을 돌보는 한편으로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 힘쓰면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가르침이나 깨우침은 줄 수 있겠지만, 대대손손 왕조를 바꿔가면서 벼슬을 하든, 아니면 이렇게 이오 선생과 그 후손처럼 그렇게 하지 않든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인생은 다들 늙어서 죽어갑니다.

 

무기연당.

 

이번에 가시거들랑 그런 교훈 따위는 조금만 생각하시고요, 거기 비어 있는 고택 아무 집에나 들어가 그 대청마루에 앉거나 서서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가없이 바라보는 편이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함안에는 멋진 옛날 정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원 가운데 전라도 담양에 있는 소쇄원과 함께 으뜸으로 꼽히는 무기연당입니다. 국담 주재성이 1728년에 지었는데요, 소쇄원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경관은 소쇄원 못지 않게 빼어납니다.

 

국담 주재성은 풍류도 알았고, 또 왕조 입장에서 보면 의로운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백성을 모아 이를 막았으며 재산까지 털어 군량미를 대기도 했답니다. 그러면서도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무기연당은 주재성이 꿈꾼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연못과 마당을 잇는 돌계단 앞 작은 돌 탁영석은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고 깨끗하면 갓끈을 씻겠다'는 뜻이고 그 옆 정자 하환정은 이 멋진 풍경울 어찌 벼슬 따위와 바꾸겠느냐는 말입니다. 풍욕루는 불어오는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겠다는 얘기고, 양심대는 곧고 바른 마음을 양성하겠다는 얘기가 됩니다.

 

풍욕루.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여기 가서 옛날 선조들이 자기 집안 마당으로 끌어들인 자연과 연못을 둘러보며 세상살이를 잠깐이나마 잊고 푹 쉬다 나오면 그만이겠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