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보림사와 통합의학박람회를 다녀왔습니다. 경남 마산에 사는 저로서는 드문 발걸음이었습니다. 장흥뿐만 아니라 전라도는 경상도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거리가 적지 않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 감정이 생기고 또 상하고 하면 따로 득 보는 세력이 있다고 여기는 저로서는 이번 장흥처럼 전라도 한 번 다녀오면 되도록 알리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서울 또는 수도권에 비춰보면 대접 못받는 ‘지방민’이기는 마찬가지이기도 하니까 말씀입니다.
장흥은 지역을 살리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자치단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전국 명물을 장흥은 하나 갖게 됐습니다. 바로 정남진장흥토요시장입니다. 이 토요일마다 엄청나게 큰 규모로 서는 이 장터에는 장흥 산과 강과 바다에서 나는 갖은 특산물이 푸짐하게 펼쳐집니다.
이밖에도 장흥에는 지역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여름에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봄에는 장흥물잔치가 있고 가을에는 백세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실정에 걸맞은 대한민국 통합의학박람회가 있습니다. 또 자연풍광도 빼어나서 봄 철쭉 제암산, 가을 억새 천관산을 비롯해 멋진 산들도 많습니다.
올해 전라도 마지막 나들이는 10월 23일(목) 아침 8시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지역민 40명 남짓과 함께 장흥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지역 차별을 줄이고 서로에게 쌓여 있는 마음의 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해당 지역 문화·역사·관광 자원을 널리 알리자는 목적이지요.
크지 않지만 알찬 보림사
보림사는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파 으뜸 절간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도 가지산 보림사, 중국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삼보림으로도 꼽힌답니다. 조선시대는 물론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선풍(仙風)을 떨쳐왔지만 6.25전쟁을 맞아 대부분이 불타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놓인 자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네모반듯한 보림사는 산 속에 있으면서도 평지 절간처럼 반듯하고요, 그 안에 들어앉은 석탑·불상·건물 같은 문화재도 별로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11시 즈음 버스에서 보림사 앞 마당으로 내려서니 절간을 감싼 산세가 퍽 넉넉해서, 깊지는 않으나 부드럽고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산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면서 보림사가 마치 어린아이라도 되는 양 감싸고 있습니다.
금방 보수를 마친 듯한 외호문(外護門)을 넘어서면 사천문, 사천문에 들어서면 사천왕상입니다. 외호문은 다른 절간서는 보기 드문데, 담장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느 일주문과 개념이 아예 다른 것 같습니다.
사천문도 별나답니다. 아마도 규칙에 매이지 않는 선종 기풍에서 받은 영향이 크지 싶은데요, 다른 데서는 대개 ‘천왕문’ 또는 ‘사천왕문’이라 이르지 이렇게 ‘왕’자를 빠뜨리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이 사천문 안에 있는 사천왕상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우락부락함’이라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0년 남짓 이전인 1539년 처음 만들어졌으니까요. 여러 특징이 있는 사천왕이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다른 둘러볼 데도 많기 때문이지요.
먼저 삼층석탑, 통일신라 말기 세워졌다는데 크기나 맵시가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단·탑신은 물론 위쪽 꼭대기까지 망가지지 않고 온전하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저도 전체가 온전한 석탑 모습을 눈에 담은 것은 이번에 여기서가 처음이었습니다. 경주 석가탑·다보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등등 아름답고 세련된 돌탑들은 적지 않습니다만, 그것들은 한결같이 원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대적광전 본존불 자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웅장하고 묵중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선불교를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도의선사와 이를 위해 가지산문을 연 보조국사 등은 조사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전'은 부처님을 모시는 건물이고 ‘당’은 그보다 한 등급 이상 낮은 건물을 이른다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는 않는데요, 가지산문에서 이런 스님들을 어느 정도 높이 받드는지 이것만으로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대웅보전은 6.25 때 불탔다가 새로 복원이 됐는데요, 겉에서 보면 2층이고 안에서는 그런 구분이 없습니다.
조사전에서 나오는 일행들.
대웅보전 뒤편 오른쪽 보조국사창성탑과 탑비는 매우 우람해서, 보림사를 창건한 그이를 크게 모셨음을 잘 짐작하게 합니다. 탑비 거북받침돌(귀부) 물갈퀴는 매우 힘차게 조각돼 있어서 당장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듯하고요 조금 위 (부도)탑 자리에서는 유연하게 흐르는 보림사 뒤꼭지를 제대로 눈에 넣을 수 있었답니다.
명부전에서는 웃음과 감탄이 함께 터져나왔습니다. 바람벽에 그려진 그림 덕분이었는데,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서 업경대(業鏡臺)로 지난 잘못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얼음지옥 불꽃지옥 독사지옥 등등 가지가지 열 가지 지옥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대조적으로는 극락행 KTX라 할 반야용선(般若龍船) 그림까지 설명이 곁들여져 놓여 있었습니다.
명부전 바람벽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
보통 절간에서는 전각 바람벽을 이렇게 이른바 속되게 처리하지는 않는 줄 저는 압니다. 어지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파격(破格)인데요, 이런 서민스러움과 자유분방함이 어쩌면 선불교 선종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민 참여 무대 돋보이는 통합의학박람회
통합의학은 특징이 현대의학+한의학+보완·대체의학으로 두루 함께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통합의학박람회는 2010년 시작돼 이제 나름 틀을 잡은 셈인데 천관사 자락 박람회장에는 통합의학관·자연치유관·건강체험관이 있어서 따로 돈 들이지 않고 진료도 받고 체험도 해 볼 수 있었답니다.
물론 약품이나 식품을 제것으로 삼으려면 당연히 돈을 들여야 하지만요 하하. 이밖에 시음·시식을 할 수 있는 약선요리관, 건강음식관과 의료산업관도 마련돼 있어서 한편 눈요기 하고 다른 한편 필요한 물품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앞뜰 너른 데서는 나름 소담하게 국화축제(물론 마산국화축제와는 규모나 무게 면에서 견줄 바 아니고요)가 열려 잠깐이나마 즐겁게 눈맛을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장흥은 남해바다와 가깝고 또 탐진강을 끼고 있으면서도 천관산·제암산·수인산·가지산·부용산·억불산·사자산·삼비산 등등 500m를 넘는 산들이 꽤 있어 약초가 제법 많이 난답니다. 이런 특징을 살려 장흥을 좀더 살기 좋게 만들려는 데에 통합의학박람회를 여는 까닭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통합의학박람회는 적어도 목적의식이 뚜렷한 이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부위에 아픔이 있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이들 또는 그 가족, 피로나 불면 등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증상이 있는 이들은 체험관·치유관·의학관·산업관 따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울러 안팎에서 먹을거리나 승마 체험(유료)을 할 수도 있어 전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람회라 해도 신나는 볼거리가 빠지면 아무래도 밋밋하고 재미가 덜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23일 장흥읍내 콩샛골에서 청국장비빔밥을 점심으로 먹고는 박람회장을 들러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그러고나서 다시 눈길을 돌리니 한 켠에 '건강한마당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음악과 노래소리가 거기서 울려퍼지기에 들여다봤더니 전라도 고을고을 어르신들이 갖은 분장을 하고 나와 춤과 체조에 곁들여 노래까지 부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대 뒤에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 이처럼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습니다. |
이렇게 노래와 음악과 춤·체조를 건강과 연결지어낸 눈맵시가 산뜻하게 여겨졌습니다. 그것도 팔팔한 청춘들이 아니라 지역 어르신을 매개로 삼아 연결지어낸 것입니다. 어르신들 흥도 돋우는 한편 박람회 분위기도 띄우는 감초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8학년 학생들이랍니다.
아마 텔레비전을 통해 얼굴이 잘 알려진 탤런트나 가수들 초청해 무대를 펼쳤다 해도 이보다 더 신나고 흥겹고 풍성하지는 못하리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여기지는 않는 모양인지 거기 놓여 있던 의자들은 많은 구경꾼들로 빈 데가 없었고 뒤쪽과 옆쪽에서 서서 보는 이들도 수두룩했답니다.
이렇게 즐겁고 보람있게 한 때를 보낸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장흥 토요시장 상설 코너에 잠깐 들렀습니다. 살림 솜씨가 매운 이들은 토요시장에서 장흥 특산물을 장만했고요,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저와 비슷한 몇몇은 '3대곰탕' 같은 맛집을 찾아 수육도 집고 막걸리도 기울였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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