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5월에 찾은 장흥 제암산과 토요시장

김훤주 2014. 5.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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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의 ‘이웃 고을 마실가자’는 영남과 호남의 자치단체들과 경남 지역 주민 모두를 위해 마련한 기획 연재입니다. 자치단체는 자기 지역 관광 명소와 먹을거리를 비롯해 특산물을 알리고 경남 주민들은 여행을 통해 삶을 좀더 풍요롭고 빛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자치단체와 협의가 되면 요청에 따라 지역민 등과 더불어 해당 지역 역사·문화·생태·인물을 탐방하고 거기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 누릴거리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고 서로에게 도움과 보탬이 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창녕·합천·통영에 이어 네 번째 ‘마실’은 전남 장흥을 다녀왔습니다.

 

사람 키보다 훌쩍 더 자란 철쭉들

 

장흥 제암산은 전국 최대 규모인 철쭉군락에서 꽃은 이미 지고 있었지만 대단했습니다. 나무 크기가 그에 맞설 상대가 쉽사리 찾아지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랍니다. 철쭉 나무야 크든 작든 분홍꽃 머금기는 매한가지지만 그 웃음이 사람 키높이에 있을 때와 무릎 또는 허리께에 찰랑거릴 때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습지요.

 

 

철쭉은 사람 가슴 위로 올라오기가 어려운 법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이 핀다는 여기서는 2m 훌쩍 넘게 웃자란 녀석들이 많았습니다. 눈높이가 사람과 맞아서인지 얼굴 가까이서 또는 그 위에서 하늘거리는 꽃잎들은 널찍하고 커서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줄기도 예사롭지 않게 굵었답니다. 보통은 사람 엄지손가락보다 굵기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사람 손목 정도 되는 줄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경남의 거제도 어디 동백나무 어린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저런 정도 굵어지기까지 견뎌냈던 세월은 얼마였을까요…… 산마루 쌩쌩 불어대는 칼바람은 또 얼마나 맞았을까요…… 그러면서도 가을에 잎 떨구고 새 봄에 물기 빨아올려 꽃과 잎 피워 밀어내는 일은 또 어떻게 해냈을까요…….

 

 

 

땀 뻘뻘 흘리며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는 반갑기만 했던 산바람이, 이렇게 철쭉들 괴롭혔으리라 생각이 드니까 사뭇 원망스웠던 것이랍니다. 눈 앞에서 지는 꽃을 보면서도 활짝 피었을 때 장관을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철쭉들 크게 웃자란 높이와 숱한 세월을 견디며 더디게 불려 냈을 굵기 덕분이었습니다.

 

간재 고개마루에 올라섰을 때 전후좌우 사방으로 너르게 펼쳐지는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거기서 곰재 지나 제암산 정상으로까지 이어지는 철쭉 나무들이 말입니다. 멀리 정상 왼쪽 언저리는 아직 지지 않은 꽃들로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소나무 묵은 초록과 활엽수 새로운 초록과 뒤섞이며 피어나는 분홍빛이었습니다.

 

 

오르는 탐방로는 내내 그늘

 

남동쪽 간재에서 북서쪽 곰재까지 이어지는 등날에서는 내내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철쭉 무리 속에 드문드문 솟아 있는 소나무들은 앉을 자리로 맞춤이었고 잊힐만하면 다시 나타나는 바위 언덕들은 탁 트인 전망을 안겨줬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꽃이 지고 있어도 아쉬워하지 않으며 잘도 돌아다녔고, 그럴 듯하게 자세를 잡고는 사진도 곧잘 찍어 댔었습니다. 철쭉에 파묻힌 속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으며 자리를 깔고 무리를 이룬 이들은 먹을거리와 더불어 이야기보따리도 함께 풀었습니다.

 

제암산이 좋은 것은 등날을 뒤덮은 철쭉 군락만이 아니었습니다. 들머리 오른쪽으로 임도를 끼고 오르는 탐방로도 훌륭했습니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지나치게 가파르거나 아니면 멋없이 길게 이어져 밋밋하고 지리한 느낌을 주기가 십상인데 제암산은 아니었습니다.

 

그늘이 풍성하게 내려앉은 탐방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기울기가 적당한데다 나무들 초록 잎사귀로 줄곧 그늘이 이어져 햇살에 살갗 따가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5월 10일 일행 45명이 경남 경계를 벗어 나들이한 제암산은 이렇듯 대단했습니다. 앞서 콩샛골식당(061-864-1192) 우리 콩으로 만든 청국장 점심도 만족스러웠고요.

 

산·들·바다·강을 죄다 갖춘 장흥

 

오후 3시 남짓에 제암산 탐방을 마친 일행은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으로 향했습니다. 2005년 7월 문을 열어 올해가 10년째인 토요시장은 풍성하고 청정한 로컬푸드 먹을거리로 전국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장흥은 여러 모로 물산이 풍부하답니다. 토요시장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지요. 장흥은 서울을 기준해서 볼 때 정남향으로 가장 멀리 있습니다. 그만큼 기후가 따듯합니다.

 

바다도 있지만 탐진강이라고, 전남에서 영산강·섬진강 다음 세 번째 긴 강도 유역을 적신답니다. 덕분에 논과 밭이 너르게 자리잡았고 산들도 호남정맥이 여기저기 누비며 봉오리들을 곳곳에 맺어놓았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키조개·매생이·바지락·낙지·쭈꾸미·갯장어, 탐진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들판에서 자라는 한우(사람보다 소가 많은 고장이 장흥입니다. 사람은 4만2000명이지만 소는 5만마리랍니다), 논에서 나는 찹쌀·맵쌀·올벼쌀, 산에서 나는 표고버섯·약초·전통차 등이 토요일마다 쏟아져 나옵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바다 양식을 할 때 염산 처리를 하는 김의 경우, 장흥은 이런 잘못을 깨끗이 걷어낸 무산(無酸)김으로 청정함을 더했습니다. 좀더 믿음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를테면 ‘고향 할머니 장터’에서는 장흥군에서 자격을 따져 발급해 주는 이름표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도록까지 만들었습니다.

 

 

장흥삼합과 낙지삼합, 그리고 키조개전

 

일행은 3시 20분 장터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60도 넘는 소주를 빚는 ‘장흥 선비 주조장’도 찾았고요 70년대식 2층 건물에 골동품이랑 옛날 물건과 오래 된 사진을 모아둔 ‘추억의 사진관’도 찾았답니다.

 

 

대통령도 와서 먹었다는 ‘3대곰탕집’에서 소고기수육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이도 있었고요, 장흥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들이 판을 벌이는 ‘다우리 음식거리’를 기웃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으뜸 관심은 장흥삼합과 낙지삼합이었답니다. ‘삼합’이라 하면 ‘홍어삼합’을 뜻하는 고유명사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아니었습니다. 무엇이든 셋을 합하면 삼합(三合)이랍니다. 장흥삼합은 장흥 명물 셋(소고기 키조개 표고버섯)을 합했고요, 낙지삼합은 낙지+삼겹살+키조개였답니다.

 

 

키조개전. 뒤쪽 검은 빛이 비치는 녀석은 소고기전.

키조개전을 먹은 이도 있었습니다. 얇게 저민 조갯살에 달걀 반죽을 입힌 다음 약한 불로 그윽하게 구워낸다는데, 조개즙이 그대로 머금어져 있는데다 또 부드럽기는 씹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라 합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침이 꼴딱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오후 4시 50분 시간이 모자라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는데요, 하얀 스티로폼 상자나 까만 비닐 봉지들이 저마다 손에 들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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