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교육청과 해당 지역 교육지원청 후원으로 경남도민일보와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한 2013년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은 11월 12일 창원에서 시작해 12월 21일 창녕에서 끝났습니다. 모두 10개 시·군에서 13차례 진행됐습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자기 고장에 대해 많이 무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지역 이야기라면 빤하지 않나?"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자기 고장에 대해 잘 몰랐던 친구들에게는 새롭게 눈이 뜨이는 기회였기도 했고, 잘 안다고 자부했던 학생들에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식이 얼마나 얄팍했는지를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고장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기회
진해 웅천왜성 마루에 올라선 모습.
학생들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자원했고 다른 하나는 선생님 권유로 왔습니다. 비율로 보자면 선생님 권유 쪽이 월등히 많았습니다. 선생님이 가라 해서 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왔다는 친구도 있고요, 심지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온 학생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시작은 이렇게 달랐어도 끝은 비슷해져 있었습니다. "아, 우리 지역에 이런 게 있었구나", "정말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재미도 있었어요", "이런 기회를 만들어줘 고맙습니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을 보면 지역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학생들 탓으로 돌릴 수는 전혀 없는 노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 걷는 방법인 취족을 하며 창원향교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학생들.
지역에 대해 학교도 학원도 가르치지 않고 대학 수능 시험도 다루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아이들에게는 자기 고장을 알고 이해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그 책임이 어른에게 있다면 지역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어른 몫이지 않을까요?
공부든 놀이든 먼저 재미가 있어야
창원향토자료전시관에서 옛날 교모를 쓰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수능을 끝낸 고3 학생들과 함께 탐방하면서 공부를 시키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닫혀 있었던 아이들 몸과 마음을 고장을 돌아보며 활짝 열어주는 데에다 초점을 맞췄습니다.
필요한 기본 지식은 옮겨가는 버스 안에서 재미나는 이야기로 풀어냈고요, 현장에서는 되도록 마음껏 느끼고 즐기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김해 분성산성에 올랐는데, 시원한 바람과 풍경에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통영 박경리 선생 산소에서는 살아온 이력이나 소설 <토지>가 아니라 산소에서 보는 산과 바다와 들판 풍경의 아름다움을 먼저 얘기했습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에서도 거기 놓인 석조석가여래좌상의 조성 연대나 기법을 읊어주는 대신, 내려다보이는 병풍바위의 아름다움과 아래 산기슭 넉넉한 들판의 풍성함을 한껏 품어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를 일러 용선대라 하는 까닭이나 불상이 동짓날 해뜨는 데를 바라보는 연유를 들려주는 식이었습니다.
아울러 공부도 노는 것처럼 준비했답니다. 지루하고 딱딱하게 여기기 십상인 박물관을 탐방할 때는 문화상품권을 걸어놓고 꼭 알아야 할 내용을 팀별로 답을 찾아오게 하는 '미션 수행' 방식을 주로 썼습니다.
통영 당포성에 올랐다가 자드락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모습.
지역 역사에 대한 학습은 '도전 골든벨!' 형식으로 진행했는데요, 효과가 퍽 좋았습니다. 제출된 문제는 자기 고장 출신 유명인, 특산물, 시장 이름, 지역 특성과 역사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제 학생들이었습니다. 유명 인물 가운데 거제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는 문제였는데, 문재인 국회의원이 거제 출신인데도 거제 학생들은 대부분 전라도 출신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음식에 특히 신경을 썼고
아이들은 탐방을 하면서 웃고 즐기고 떠들면서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습니다. 하루 동안 돌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지루하지 않게 짧고 간결하게 지역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그 날 일정을 마무리했는데요 이런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는 자기 고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들 했습니다.
거제조선해양문화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잠자리로 잡은 마을회관에서 둘러앉아 '사랑과 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는 양산 아이들.
그리고 어느 하나 신경쓰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특히 음식에는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한 끼를 때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고장 명물로 기억해도 될 만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밥집 답사도 많이 다녔습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다 보니 질과 더불어 양에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양산 학생들이 통도사에서 점심 공양을 했을 때, 채소 반찬으로만 밥을 먹고 나중에 허기가 져서 저녁 밥상에서는 차려져 나온 돼지두루치기를 몇 그릇씩 먹어대던 모습이 기억에 뚜렷합니다.
한편 이번 탐방에서 어른들이 가장 많이 걱정했던 대목은 바로 장성한 남녀 학생들이 바깥에서 1박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담당 선생님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더욱 신경쓰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썰물에 맞춰 들어간 상족암에서 예쁜 척을 하고 있는 고성 아이들.
생각보다 훨씬 의젓했던 학생들
그래서 학생들은 조금 불편하고 어색하게 여겼을 수 있겠지만, 담당 선생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랑 같은 방에서 잠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겪어봤더니 아이들은 어른들 짐작보다 훨씬 의젓하게 잘 놀았습니다.
한 개인이 아니라 탐방에 참가한 모두를 먼저 생각할 줄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선생님을 배려했고 예의바르게 행동했습니다. 밤이 깊도록 한데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하고, 준비한 간식을 나눠먹거나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순천만 갈대밭에 파묻힌 사천 아이들과 선생님.
이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고성 학생들이었습니다. 남녀 학생들이 모여앉아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며 즐겼는데요, 어느 시점에 이르자 이제 그만하자며 '다함께 손뼉'을 치고는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로 돌아가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술은 엄금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 잔 정도 마시고 싶어했습지요. 하하. 그래서 다음에 한다면 주도(酒道) 체험 프로그램을 곁들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러내 놓지 않고 숨기면 오히려 없는 문제도 생기고 작은 문제도 커지는 법이거든요.
눈내리는 해인사 뜨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합천 학생들.
또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나가면 술 마시는 자리가 많아질 텐데 제대로 마시는 문화나 방법을 미리 익혀도 좋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다음에는 체험거리를 좀더 다양하게
학생들에게 주어진 체험은 떡메치기, 가마솥 밥짓기, 두부 만들기, 사진틀 만들기, 복조리 만들기 등 해당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름 준비했지만 겨울이라 좀더 다채롭지 못해 아쉬웠답니다.
장춘사 빨간 감이 그대로 달려 있는 감나무 아래 함안 학생들.
합천 뽈똥마을에서 했던 가마솥 밥짓기 체험이 가장 뚜렷하게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합천'에 이런 데가 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며, 다음에 친구들과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한 학생이 여럿이었습니다.
관룡사 들머리 석장승을 쳐다보고 있는 창녕 학생들.
이제 마치고 돌아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경남 지역 전체 학생들에게 널리 퍼져 자기 고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작으나마 이바지하게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함께한 모든 친구들에게, 자기 고장을 떠나 세상에 나가서도 나고 자란 자기 고장을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기 바랄 따름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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