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역사·문화·생태 한눈에…이야기꽃 한가득

김훤주 2014. 2. 27. 08:30
반응형

[우리고장 사랑 고3역사문화탐방] (2) 창원시 옛 창원 지역

 

2013년 11월 14일과 15일 60명씩으로 진행된 옛 창원 지역의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 문화 탐방'은 일정이 이랬습니다. 성산패총유물전시관~창원향교~창원읍성~북동시장~창원향토자료전시관~동판저수지~해상 전쟁 유적.

 

창원 지역 역사·문화·생태의 특징과 장점이 담겨 있는 장소랍니다. 12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 공부를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될 학생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곳들이었습니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초등학교 시절 소풍 삼아 한 번쯤 와봤을 장소지만 실제 여기를 다녀간 친구들은 많지 않았답니다. 창원에서는 널리 알려진 곳이기에 학생들이 심드렁해하지나 않을까 여겼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고요.

 

늦가을 단풍 아래 성산패총 유물전시관으로 올라가는 모습.

 

놓인 유물들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면 별로 기억에 남는 바가 없었겠지만, 이날 탐방에서는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이 전시된 유물들 특징을 지루하지 않게 제대로 짚었습니다. 이를테면 낮은 불에 구워 만들어 상대적으로 무른 토기와 높은 불에 구워 비교적 단단한 토기가 출토됐는데, 그 색상과 질감과 시대를 서로 견줘보면 새로운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성산패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도 흥밋거리였습니다. 1970년대 개발된 창원공단에는 성산패총 말고는 유적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금 같으면 개발 지역 전체를 시굴·발굴하기에 곳곳에 이런 유물 전시관이 들어섰겠지만, 당시는 군사독재 치하였기에 죄다 뭉개고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성산패총은 어떻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창원공단 건설 현장을 방문했을 때, 보존 방안을 궁리하던 발굴 책임자가 꾀를 내어 여기 발견된 야철지를 창원공단 상징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다는 것입니다.

 

쇠를 주로 다루는 공단의 특징을, 여기 야철지와 연관지어 내는 바람에 이렇게 작으나마 남길 수 있게 됐다는 얘기랍니다.

 

이어 창원향교로 갑니다. 지금 소답동 일대에 있던 창원읍성의 핵심 건물 가운데 하나랍니다. 지금으로 치면 공립 고등학교쯤인데 1748년 마산 합성동 청룡산 자락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창원향교에서 옛적 학생들 공부하던 교실인 명륜당.

 

공자를 비롯한 선현에 대한 제사와 학생 교육, 지역 주민 교화가 주된 기능인데, 으뜸 건물은 가장 위쪽 높은 대성전으로 여기서 제사를 모십니다. 앞쪽에는 학생들 공부하던 명륜당이 있고 그 아래 양쪽에는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서재가 자리잡았습니다.

 

창원향교 대성전으로 취족을 하면서 올라가는 학생들.

 

문은 모두 셋으로 이뤄진 삼문인데, 가운데는 영혼이 드나들고 나머지는 양쪽 문을 써야 합니다.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반대편 문을 씁니다. 문루도 있어서 학생들이 올라가 놀 수 있었는데 대개는 백성들 풍속을 교화한다는 뜻을 담아 풍화루라 일렀다고 하지요.

 

이어서 창원읍성을 찾았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북쪽 성벽인데요, 여태까지는 일제강점기 철도를 내면서 무너진 줄 알았으나 2011년 발굴에서 묻혀 있던 성벽을 파냈답니다. 하지만 다시 묻어버려 지금은 안내판만 남았습니다. 최헌섭 원장은 도로를 따라 성벽 자취를 일러주며 보존은 물론 교육과 탐방을 위해서도 성벽을 원래대로 드러내는 편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땅에 다시 묻힌 창원읍성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는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발굴로 모습을 드러냈었던 창원읍성. 두류문화연구원이 맡았더랬습니다.

점심은 북동시장 가장 오래된 밥집 가운데 하나인 할머니국밥과 혜경이네국밥에서 국밥을 먹었습니다. 원래 창원읍성의 관청 건물 자리에 들어선 시장인데요, 여기 밥집은 그만큼 역사가 오래지는 않지만 30년 넘게 장꾼들에게 뜨뜻한 국밥을 대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창원향토자료전시관. 주남저수지 바로 옆 월잠리 한 건물 2층에 있습니다. 오래 공직생활을 하면서 갖은 자료를 수집해온 양해광 관장의 세월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창원향토자료전시관에서 양해광 관장의 설명에 눈을 빛내는 학생들.

 

왼쪽에 무슨 약품 선전 포스터, 가운데 선거공보.

 

오래된 음반부터 옛날 교복과 선거 포스터, 그리고 전화기 휴대전화 삐삐까지 가지각색 물건이 전시돼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 학생들이 따분해할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으나 친구들은 여기서 매우 즐겁게 시간을 보내더군요. 옛날 의자에 앉아 옛날 풍금을 두드려 보기도 하고…….

 

옛날 교모를 쓴 친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고 있다.

 

옛날 걸상에 앉아 옛날 풍금을 치는 손길.

 

이어지는 동판저수지는 창원 명물 주남저수지의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걸으며 노닐기는 주남저수지보다 훨씬 나은데도 동판을 찾는 이는 드문 편이랍니다.

 

동판저수지.

 

고니.

 

주남이 툭 트여 시원한 맛이 있다면, 동판은 오목하게 굽어서 오밀조밀한 맛이 세답니다. 또 물버들이 수북하게 자란 데가 많아 그윽한 느낌까지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늦가을 따사로운 햇살을 쬐면서 둑길을 걸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은 단감을 한 광주리 담아 내놓고 먹으라며 인심을 자랑했고요, 저수지 한가운데에는 학생들 눈을 호강시켜 주려는 듯 희귀 철새 고니가 여럿 모여 앉았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가 내어놓은 단감을 한두 알씩 집었습니다.

 

동판저수지 둑길을 거닐고 있습니다.

 

창원 탐방의 마지막은 해상 전쟁 유적. 합포만 마산만 진해만 바다는 여기 사람들 삶터인 동시에 아시아 여러 세력이 다툼을 벌인 현장이기도 하답니다. 용호동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가 바라보이는 데까지 나가 두 시간 남짓 둘러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마산박물관 이상목씨가 마산만 합포만 진해만 일대 해상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일에 대해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얘기는 포상팔국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바닷가 여덟 나라라는 뜻인데 이 가운데 창원은 골포에 해당되지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이 포상팔국이 가라 등을 침입했다고 나온답니다.

 

이어서 고려시대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지금 몽고정이 있는 마산 일대에서 일본을 향해 출정했습니다. 당시 주둔 병력이 4만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민간인까지 포함해서 20만 규모 도시가 여기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고 합니다.

 

또 임진왜란 때는 여기서 안골포해전과 합포해전이 있었고 1905년 러일전쟁 때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격침한 일본 함정이 진해만에서 길을 나섰습니다. 이것으로 끝이면 좋았을 텐데요, 해방 이후 보도연맹과 관련해 민간인을 무더기로 수장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데도 여기 바다였습니다.

 

뱃머리에 나앉은 학생들.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학생들은 바닷바람이 시원해서 좋고 뱃전에 부서지는 물결이 새삼스러워서 좋고 공부에서 풀려나 배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자체가 좋습니다. 어떤 학생 몇몇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노래방 시설을 작동해 멋들어지게 노래까지 불렀답니다.

 

오후 5시 30분 즈음 돌아온 일행은 가까운 밥집에서 따끈한 곰탕으로 배를 채운 다음 창원대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지요.

 

제가 앞에 나서서 당시 신라를 뒤흔들었던 창원 백월산의 일대 사건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성도(成道)'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했습니다.

 

이종호 여가문화연구원 원장이 진행하는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창원 백월산과 관련해 <삼국유사>에 나오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을 풀어보는 재미있는 지역 이야기, 그리고 상품권 등 푸짐한 상품이 걸린 지역 역사·문화 도전 골든벨.

 

이종호 여가문화연구원 원장의 지도를 따라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모습.

 

탐방을 마친 학생들은 창원에 이렇게 재미있고 볼만한 데가 많은 줄 처음 알았다고들 했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