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솔까말이 우리말 해친다? 개드립 그만하지

김훤주 2013. 10.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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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MBC경남 라디오광장 세상읽기에서 한 얘기입니다. 한글날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고 해서, 우리말글에 대해 한 번 살펴봤습니다. 저는 ‘솔까말’이나 ‘개드립’ 같은 말을 좋게 봅니다만, 저와 달리 좋지 않게 여기시는 이들도 많으시겠지요? 


김훤주 기자 : 우리말과 한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지난 9일 567 번째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되고 해서 한글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방송에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서수진 기자 : 1990년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졌으니까 한글날이 공휴일로 된 것이 그러니까 올해로 23년만이죠?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한글날을 푸대접하는 동안 한글과 우리말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습니다. 


1. 한글과 우리말 현실을 걱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훈민정음 도자기. 뉴시스 사진.


주 : 한글과 우리말에 대해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두 가지로 구분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한글 또는 우리말 변형 또는 파괴이고 하나는 우리 사회 지배층의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무시 정책입니다. 


진 : 그러면 일반 국민들의 언어 사용에 대해 먼저 얘기해 볼까요?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문제점이 바로 정체 불명 국적 불명 신조어들이 되겠죠? 


주 : 욕설 속어 비어 같은 것들도 같이 거론해야 되겠지요. 우리나라 고등학생 이하 정소년 가운데 95%가 일상어에서 욕설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결과입니다. 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선생님 285명에게 물었더니 83%가 학생들 대화에서 대부분이 욕설이나 비속어 아니면 자기네끼리만 알아듣는 은어라고 답했습니다. 


2. 그렇다고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물을쏘냐?


진 : 방송에서는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그런 말들이 청소년들 일상 용어로 쓰이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이 아닐 정도로 심각하지요. 게다가 어른들은 알아듣기도 힘든 그런 말들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주 : 게다가 그런 말들을 가장 많이 쓰는 시기가 중학교 1~2학년과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언어 파괴 또는 변형을 하는 나이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서 아이들 가치관 형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반면 학교 생활지도는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체 교사의 76%가 충분한 지도가 없다고 답했고요, 실제 교육부가 추진하는 학교문화개선 연구·선도학교는 전국 150곳뿐이고 그나마 경남은 단 두 군데라고 합니다. 


욕설이나 비속어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도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줄인 말이라든지 영어 같은 외국어가 많이 들어간 신조어도 적게 쓸수록 좋겠지요. 

이번 한글날 펼쳐진 마산 대우백화점의 틴탑 팬사인회. 아이러니합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 : 그런데 그런 언어를 지금 쓰고 있다고 해서 아직 어린 청소년들에게 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 : 그런 말을 아이들이 누구한테서 배웠겠습니까? 어른들이 하는 말을 보고 듣고 따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그런 말을 쓴다고 해도 나중에 자라거나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1·2학년이 가장 많이 쓴다고 나왔는데, 이것을 뒤집어 보면 중3이 되고 고등학교 올라가고 하면 그런 좋지 않은 말을 쓰는 비중이 줄어든다는 얘기가 되거든요. 


3. 개드립이나 솔까말이 어때서?


게다가, 저는 청소년들의 우리말 파괴 또는 변형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하게 까놓고 말하면’을 줄인 ‘솔까말’이라든지, 터무니없는 발언=얘기를 뜻하는 ‘개드립’, 이건 개에다가 영어 애드리브(adrib)를 붙인 것인데요, 이런 게 어쩌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 : 그래요? 상당히 색다른 생각이신데요. 그래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들이 의사 소통을 방해하고 우리말 원형을 깨뜨린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보잖아요? 


주 :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대박’이라는 말이 대표적인데요, 이 대박처럼 다른 낱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죽이는 유행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을 당해도 “와, 대박이다!” 하고, 참 즐거운 일이 생겨도 “와, 대박이다!” 합니다. 돈을 엄청 많이 벌어도 “와, 대박이다!” 하고, 복권에 당첨이 돼도 “와, 대박이다!” 합니다. 

국어순화 경시대회 같은 것은 죄다 학생 대상, 어른들 너거들이나 좋은 말 골라 써라. 경남도민일보 사진.

매우 즐겁다거나 아주 좋다거나 크게 부자가 됐다거나 무척 운이 좋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사라지고 ‘대박’만 남았습니다. 


4. 개드립은 나쁘고 케이티엑스는 괜찮다?


진 : 그런데 그런 유행어나 줄임말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라면 그게 무엇일까요? 


주 : 이렇게 견줘보면 어떨까요? 즐겨 쓰는 우리말글 가운데 케이티엑스(KTX)가 있습니다. Korea Train eXpress라는 영어 낱말 앞부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지었는데요, 이것을 일상적으로 쓰면서도 그게 코리아 한국, 철도 트레인, 고속 익스프레스, 이렇게 뜻을 제대로 새길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진 : 그렇지요. 우리가 영어를 빌려 쓰면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는 합니다. 주 : 그런데 이런 고속철도를 프랑스에서는 ‘떼제베’(TGV)라고 합니다. 프랑스어 ‘트레 그랑 비트’(Tres Grand Vite)의 첫 글자, 영어로 하면 ‘베리 그랜드 퀵’(Very Grand Quick), 그러니까 ‘매우 엄청나게 빠른’, 정도인데요.


이런 식으로 우리 케이티엑스를 바꿔 본다면 ‘매빠차’, 매우 빠른 기차가 되지 않겠습니까? 영어 같은 외래어를 수입해 쓰지 않고 그것을 우리말로 대체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진 : ‘솔까말’,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같은 것이 해당이 되겠군요. 


주 : 맞습니다. ‘솔까말’도 그렇고 알려주지 않는다는 뜻인 ‘안알랴줌’도 그렇습니다. 영어가 섞이기는 했지만 ‘개드립’도 저는 훌륭한 조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지난해 양산에서 있었던 행사. 경남도민일보 사진.


5. 영어 많이 쓰는 현상은 지배집단의 영어 편중 정책 탓


진 : 영어랑 비속어가 마구 뒤섞였는데도 그렇게 볼 수 있을까요? 


주 : 영어가 섞인 것은 시대 흐름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한문 한자가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옛날에는 한문에 기대는 경향이 세었는데, 지금은 영어가 그것을 대신하는 셈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진 : 그렇게 되면 우리말글이 영어에 너무 많이 다치고 멍들지 않을까요? 


주 :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리 사회 지배층이 결정하는 언어 정책에서 다뤄야 할 부분이고요,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언어 생활에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말과 글은 원래 그렇게 뒤섞이는 것이고, 어쩌면 그런 데서 생명력이 더 커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토종말인 줄 알고 쉽게 쓰는 일일이, 층층이, 점점이, 서서히, 헐하다 같은 것들도 한자 몸통말에다 우리말 도움씨가 붙어서 생겼거든요. 


진 : 그러면 언어 정책은 어때야 할까요? 우리 사회 상류층의 우리말과 한글 무시가 심각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요.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사 청문회에서 오렌지가 아니라 어릔쥐로 발음해야 맞다는 얘기가 나와서 온 국민이 혀를 찬 적이 있습니다만. 


주 : 저는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하든 않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 국민 대중한테 영어 사용을 강요하지 말고 영어 편중 정책을 고치기만 하면 된다고 봅니다. 


옛날 조선 시대 지배층이 우리 한글이 있음에도 종이에 적을 때는 한글 말고 한문을 쓴 것과 똑같은 행동을 지금 우리 사회 지배집단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하지 않으면, 우리말과 한글은 앞으로도 꿋꿋하게 잘 살아나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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