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 노동자에게 경남은행은 무엇일까?

김훤주 2013. 10. 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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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가량 이전인 7월 15일, 경남은행 지역 환원을 두고 MBC경남의 라디오광장 세상읽기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경남은행 인수를 위한 지역 상공계의 노력을 지역 노동자나 일반 서민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문제의식이 나름 담겨 있었습니다. 


여태 묵혀 오다가 이제야 풀어놓습니다. 다 제가 게으른 탓입니다. 9월 24일 정부의 경남은행 지분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 네 군데가 덤벼들었습니다. 줄여 말하자면 경남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기업은행입니다.


자세하게 말하면 지역 상공인과 사모펀드(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경남은행우리사주조합 등으로 구성된 '경은사랑 컨소시엄', 부산은행을 주축으로 한 BS금융지주, 대구은행을 주축으로 한 DGB금융지주, IBK기업은행입니다. 이에 대한 검증이 10월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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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남은행 지역 환원 촉구대회의 열기



석전동에 있는 경남은행 본점.

서수진 아나운서 :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역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경남은행 지역 인수 문제에 대해 준비를 하셨다고요? 


김훤주 기자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인데도 1만 명 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보기 드문 일이 있었습니다. 13일 오후 창원 만남의 광장에서는 '경남은행 지역환원 촉구 시·도민 결의대회'가 열렸는데요. 경남도민과 울산시민 1만3000명이 모였습니다. 


진 : 경남은행인수추진위원회와 경남은행 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고요? 앞으로 울산과 진주에서도 결의대회를 이어간다고 하지요. 


주 :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의 경남은행 인수를 막고 경남은행이 경남 지역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면서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시위를 하는 자리였는데요, 핵심은 지역 컨소시엄에 우선협상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진 : 아무래도 상공계가 주축이 되는 자리였겠어요. 결의대회에서 나온 얘기들을 좀 간추려서 소개해 주시죠. 


주 : 인수위 공동위원장 최충경 창원상의 회장은 정부는 공적자금 3500억 원의 95%를 회수해가고도 모자라 남은 5% 회수 극대화를 내세워 최고가 경쟁 입찰로 돈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행동 지침으로는 100만명 서명운동과 경남은행 거래중단운동으로 전환, 경남도와 창원·울산·김해시 같은 자치단체 금고를 경남은행에서 빼내기 같은 것이 제시됐습니다. 


진 :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집단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요? 아니면 자본의 논리를 배척해야 할 다른 사정이라도 있는 것인가요? 


2. 지역은행이 지역에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주 : 돈이란 돌고 돌아야 돈 구실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은행이 하는데, 해당 지역 기업과 주민을 중시하는 지역은행이 사라질 경우 지역에 돈이 제대로 돌아 경제 활동에 동맥 경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진 : 그동안 경남은행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요? 


주 : 1970년 4월 15일 창립총회를 갖고 자본금 3억원 규모로 5월 22일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43년 전입니다. 당시 종잣돈은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지역 상공계에서 댔습니다. 


그러다 IMF가 터졌고 지역 기업들이 쓰러지는 여파로 경남은행도 동반 부실화돼 2001년 3월 27일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됐습니다. 사실상 정부 소유로 넘어간 셈입니다. 


2002년 9월 30일 총자산 규모 20조원을 넘어섰고 2008년 12월 31일 당기순이익 2000억원도 돌파했고 지난해 6월 19일에는 총자산 30조원도 넘어섰습니다. 이번에 정부의 민영화 방침을 맞아 전라도 광주은행과 함께 매물로 나왔습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캠페인을 벌이는 경남은행 임원진.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 : 정부 최고가 입찰 주장의 근거와 더불어 경남이 지분을 주장할 건덕지 여부도 한 번 짚어봐 주시죠. 


주 : 6월 26일 경남은행 민영화 계획이 발표됐는데요, 공적자금관리기본법에 따른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빠른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3가지 원칙을 반영해 매각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적자금 회수를 최우선순위에 둔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돈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3. 지역민들의 경남은행에 대한 애정만큼은 확실했다


진 : 그러면 경남 지역의 기업이나 주민들이 경남은행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일까요? 


주 : 1997년 이후 IMF로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에 경남 지역 기업과 주민들은 경남은행 회생을 위해 많이 투자했습니다. 은행 자체적으로 명예퇴직, 점포 감축, 본부 축소 등의 노력을 했지만 유상증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경남은행 지역 환원 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경남도민일보 사진.


지역 기업과 주민이 나서서 두 차례 2500억 원 유상증자를 성공시켰습니다. 1차 때는 시가 1500원보다 3배가 넘는 5000원에 주식을 사야 하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2000년 12월 18일 완전감자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부은행으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 : 지역은행에 대한 지역 기업이나 주민의 애정 하나만큼은 활실했군요. 1000원 짜리 과자 한 봉지를 5000원을 내고도 선뜻 샀고, 게다가 나중에 봉지를 뜯어보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던 꼴이니까요. 


주 : 예전에 이렇게 경남 지역민들이 13년 전에 정부 방침 때문에 2500억원에 이르는 돈을 홀라당 날리기까지 했으니, 공적 자금 환수 극대화라는 말로 포장해 돈 장사를 하려는 속셈을 버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셈입니다. 


4. 다른 지역은행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진 : 여태까지 흐름은 그렇다 치고요, 실제로 경남은행이 다른 지역 부산은행이나 대구은행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주 : 경남은행이 지역 품에 있어야 지역에서 창출된 수익이 다른 지역이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에서 창출된 이익이 지역 은행으로 흡수됐다가 지역에 재투자돼 또다른 이익을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경남 주민의 뜻을 받드는 영업방침을 세우도록 경남 지역 주민과 기업의 소유가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진 : 뒤집어 말한다면, 다른 지역 은행에 인수합병된다면 지역 기업에서 예금한 돈이 엉뚱하게 수도권 등 다른 지역 기업이나 개인에게 나가기 쉽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5. 경남은행이 하는 이런저런 착한 일들

결의대회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대규모 구조조정도 예상되고 대출이자가 낮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줄어들 수도 있고 지분 참여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배당으로 몫을 챙기기 때문에 지역 이윤의 역외 유출을 넘어서는 국외유출까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진 : 경남은행 같은 지역 은행이 지역 주민 소유로 있으면 그런 좋은 점이 있지요. 지역에는 중소기업이 많은데 그에 대한 대출이 문턱이 높아지면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좋을 까닭은 없겠군요. 


주 : 지역 사회 공헌 사업도 거론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경영권이 다른 지역 은행으로 가면 경남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경남은행이 지난 한 해만 해도 지역사회공헌을 위해 지출한 돈이 148억 75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진 : 경남은행은 직원 채용에서도 지역 주민을 우대한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 대학 출신이 절대적으로 적다고 하던데요. 


주 : 경남은행 2322명 정규직 가운데 경남·울산 출신이 2228명입니다. 96%입니다. 2010년 대졸 신입 행원을 선발할 때도 절대다수인 157명이 지역대학 출신이고 수도권대학 출신은 17명뿐이었습니다. 


진 : 그렇다면 경남은행이 지역에 남는 것이 절대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좋은 면만 있다니 말씀입니다. 


1970년 10월 30일 새로 지어 옮긴, 경남은행 창동 본점 모습.


6. 그래도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노동자는 서럽다'


주 : 현재로서는 그렇게 얘기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은행이든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처럼 빈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거나 노동자·농민을 위한 은행이 되지 않는 이상 한계는 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돈장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2000년 겨울 경남은행도 힘들고 지역 기업들도 힘들던 그 시절에 태광특수기계라는 창원공단 한 업체에 다니던 노동자들이 월급도 퇴직금도 제대로 못받고 쫓겨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남은행이 지정한 우량기업이었는데요, 자본금이 25억원뿐인데도 경남은행이 150억원 가량 빌려줘 감독 소홀 지적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1999년 3월 31일 부도 이후 노조는 임금·상여금 반납·복지비 삭감·휴업 확대·자발적 감원 등 노력을 한 반면 경남은행은 채권 회수에만 관심을 보여 법정관리 신청조차 못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경남은행 본점 앞에서 천막농성까지 벌이고 그랬는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달게 받아야 하는 제도권의 한계인 셈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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