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진해구 김달진 문학관에 가면 심화선(44) 학예사가 있습니다. 대부분 문학관에서 학예사는 보통 문학 관련 경력이 있게 마련인데 심화선 학예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문학을 좋아하는 마음이야 없을 리 없지만, 대학 또는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했거나 아니면 시나 소설 또는 수필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에서도 문학이랑 관계가 없는 관광을 전공했고 일찍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평범한 일터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1. ‘믿음직하고 야무지고 착한’ 학예사 


김달진문학관 관장인 이성모 마산대학교 교수(마산대 평생교육원 원장)를 스승으로 모신 인연 때문에 이 일을 맡게 됐습니다. 김달진문학관은 2005년 11월 문을 열었습니다. 문학관이 문을 열 때부터 학예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몇몇이 거쳐간 뒤에 하게 됐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은사이신 이성모 관장님이 찾아오셨더라고요. 그 때는 김달진문학관 관장인 줄도 몰랐어요. 내 좀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 그래요. 김달진문학관이라는 데가 있는데 월급은 이렇고 근무시간은 이렇다면서요. 바로 그 자리에서 가겠습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2007년 8월 1일부터 김달진문학관으로 출근하게 됐습니다. 



한학자이기도 한 시인 김달진(1907~1989)은 1929년 ‘잡영수곡(雜泳數曲)’으로 등단했고 39년 불교전문학교를 마쳤습니다. 1940년 첫 시집 <청시>를 냈고 60년대부터는 불경과 한시 번역에 집중했습니다. 


대표작으로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1974)와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가 있으며 동양고전과 불경 관련해서 책을 여럿 펴냈습니다. 1990년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됐으며 1996년부터는 해마다 10월에 김달진문학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심 학예사는 마산제일여고를 나왔습니다. 그 때 은사가 이성모 관장입니다. 심화선 학예사는 89년 2월 졸업한 뒤에도 가끔씩 전화하고 찾아뵙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이성모 관장이 심 학예사한테서 무엇을 보고 ‘도와달라’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급 총무를 했는데 그 때 지켜보고 믿을만하다고 본 모양’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문학관이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착이 당면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돈에 관해서는 더없이 야무진’ ‘착한’ 심화선씨를 문학관 살림을 도맡을 학예사로 골라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달진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2.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힘으로 운영되는 김달진문학관 


심화선 학예사는 김달진문학관에 상근하면서 김달진 생가와 문학관을 가꾸는 등 일상 살림살이를 하고 갖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재정 회계·정산을 합니다. 그리고 올해로 열여덟 번째가 되는 김달진문학제 기획도 합니다. 


물론 혼자서는 아니고 모든 것이 조직을 통해 이뤄집니다. 말하자면 초안을 잡아 그 뒤 토론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밑자락을 깔아주는 셈이랍니다. 


이성모 관장은 비상근이며, 심 학예사와 함께 일하는 관리원이 한 명 있습니다. “김달진문학관 특징이 있다면 딱 한 분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마산문학관이나 경남문학관은 마산 또는 경남의 모든 문인이 대상이지만 여기는 김달진 시인 한 분만 합니다. 


김달진 문학관 회의하는 모습.


진해시가 만들었고 통합된 지금은 창원시 소유로 돼 있지만 직영을 않고 사단법인 시사랑문화인협의회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장이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인데요, 김달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문학 관련 단체들은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수필가 등 문인들로만 이뤄져 있는데, 시문협은 아닙니다. 시인·소설가 같은 문인들도 있지만 저처럼 순전한 동호인도 있고 사업가도 있습니다. 조직이 원활하면서도 긴밀하게 잘 짜여 있습니다. 


좋은 인맥들입니다. 전국에 회원이 600명 정도 되고 경남 지역에는 50~60명 있습니다. 영남지회가 있는데, 이 분들이 행사를 부문별로 맡아서 진행합니다. 문학제를 한다면 누가 손님 접대를 하고, 식사 안내를 하고 등등 역할을 나눕니다. 


기관지 <시애>를 내면서도 누구에게 얼마나 배포하고 어디에 몇 부를 비치할지 등등을 역할을 나눠 집행합니다.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 같은 프로그램도 그렇게 합니다. 조직 전체가 움직입니다. ‘선양회’라든지 ‘기념사업회’ 같은 단체가 위탁 운영하는 문학관도 많거든요. 그런 데와는 다르지요.” 



3. 행사 많은 문학관에서 점점 다듬어지는 보람 


김달진문학관에서 얻는 보람은 무엇일까요? 심 학예사는 ‘점점 다듬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모난 그릇이었는데 조금씩 성숙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깨끗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찾는 것이기도 하고요, 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달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나 하면,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해 드립니다. 맑고 깨끗하게 살고 간 어른이 여기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 있는 역할이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잔뜩 쌓아갖고 옵니다. 여기 오래 머무릅니다. 그러면 시 한 편 읽으면서 설명을 드립니다. 



‘모래밥’을 권합니다. 옛날 놋그릇 찌든 때 닦을 때 모래를 집어넣어 문지르잖아요? 그것 생각하면 됩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모래를 삶아 밥을 만들라.// 모래밥을 먹고/ 그 마음 씻어버리라.’(‘모래밥’ 전문) 


‘참다운 법’도 좋아요. ‘안 보이는 것이 없다./ 내가 못 보는 것이다.// 안 들리는 것이 없다./ 내가 못 듣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이 없다./ 내가 못하는 것이다.’(전문)” 


김달진문학관은 행사가 많습니다. 달력에는 갖은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올해 문학캠프 열 차례 마흔 시간, 문학동네 세 차례 아흔 시간, 시인과 독자의 만남 다섯 차례 열 시간 등등이 ‘찾아가는 시인, 찾아오는 독자와의 만남 : 시야, 놀자’라는 이름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8월 20일에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주최로 ‘경남 문화예술 교육 대외교류 협력 파트너 구출 워크숍’의 하나로 창원 대암초교 학생을 초청해 ‘상상력의 힘’을 주제로 체험·실습·강의도 진행합니다. 또 10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은 제18회 김달진문학제가 예정돼 있습니다. 


김달진 생가. 붉은 드럼통에 소방용을 물을 담아두고 있습니다. 힘 학예사는 눈에 거슬린디고 짚을 두르고 물풀을 심어서 가꿨습니다.


4. 동네 주민들과 잘 어울리는 보기 드문 문학관 


김달진문학관은 동네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맞은편에는 시인 생가도 있습니다. 다른 문학관들은 마을이랑 떨어져 있기 십상이지만요…. 김달진문학관을 마을 사람들이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집터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답니다. 


김병로 진해시장 시절 문학관과 생가 터를 모두 보상하고 매입하라 했는데, 실제 가격대로 보상해 주지 않으니까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원래 계획대로 다 매입하지 못한 채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김달진문학관과 사이가 좋습니다. 심화선 학예사의 역할이 작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인사만 하는 정도였습니다만…. 점심을 문학관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관리실에 주방 기구가 있습니다. 관리원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면서 지역 주민을 채용했습니다. 관리원이 주민들이랑 잘 지냅니다. 지나가면 커피 한 잔 하라면서 들렀다 가라고 합니다. 


또 지금처럼 날씨가 더우면 문학관은 어차피 에어컨을 틀어야 하니까 들어와 쉬었다 가라고 소맷부리를 끕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주민분들도 자기 생일이라든지 해서 들고 오기도 하고, 어젯밤에 제사 지냈다면서 점심 먹으러 오라고 초청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찜을 주문해 주민들이랑 같이 점심 먹었습니다. 


겨울에는 여기 생가 뒷담에 무청이랑 시래기 따위가 걸립니다.


일부러라도 동네 사람들이랑 잘 지내야 합니다. 해마다 김달진문학제 등 여러 행사를 하는데, 우리 힘만으로는 할 수 없거든요. 동네 이웃이 거들어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제 때 동네 부녀회장님이 와서 거들고 주민분들도 와서 막걸리나 소주 한 잔 달라 하고 그럽니다. 


행사 때는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오셔 갖고 전을 굽습니다. 두부김치 묵이라든지 하는 안주를 가까운 식당에다 주문해 먹기도 하는데 고기 수육이나 과일 따위를 가지런히 챙겨서 내놓는데 마을 주민들이 한결같이 나서서 도와주십니다. 


무조건 오시라, 놀다 가시라, 쉬다 가시라, 같이 먹자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관장님이 금일봉을 줍니다. 그 돈으로 사서 먹고 하지요. 생가 텃밭에서 나는 산물, 비파 열매라든지 감은 물론이고 열무 같은 것들 솎아서 김치 같은 것 해 드시라고 봉지봉지 나눠 먹습니다. 


조그만 인연을 만드는 것이지요. 바로 아래 마천장에 다녀오시는 이들은 자동차로 모시고 가고 오고 합니다. 소소하게 챙기는 것입니다. 관장님이 항상 잘 하시는 것이 또 있습니다.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는 빠짐없이 찬조합니다. 


함께 가꾸는 텃밭.


이번 어버이날 행사 때는 수박을 사서 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을에 보탬이 되는 일들을 열심히 해서 평소에 유대 관계를 잘 해놓아야 합니다. 그냥 다니러 온 사람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야, 고추 좀 봐라!’ 하면서 갖고 싶은 티가 보이면 좀 따서 드립니다. 


배추 무 심어놓은 것도 별로 아낌없이 내놓습니다. 김달진문학관에서 뭐 하나 받고 얻었다는 것이, 별 것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이나 기억이 되거든요. 이런 공간, 무엇이든지 찾는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5. 블로거 실비단안개의 김달진문학관과 심화선 학예사 예찬 


‘실비단안개’라는 블로거가 있습니다. 김정숙씨인데 ‘실비단안개의 고향의 봄’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해 토박이 아줌마인 실비단안개의 집은 김달진문학관과 가까운 영길 마을에 있습니다. 


황동규 시인과 함께.


대략 2km 떨어져 있는데 때로는 걷고 주로는 마을버스를 타고 문학관에 들른답니다. 그이 블로그에는 김달진문학관 관련한 글이 매우 많이 올라 있습니다. 


“문학관을 방문하여 선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그날은 밤에도 마음이 착합니다. 아주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하며 오래 알아도 낯 붉힐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커피를 잘 타는데 학예사님은 언제나 손님 대접하듯이 커피를 타 줍니다. 손님 대접처럼이라고 거리를 두었다거나 낯선 그런 뜻은 아닙니다.” 


“배가 고프다고 하니 학예사님께서 볶음밥을 시켜주었습니다.” 


“1년 동안 문학관에 많은 신세를 졌기에, 따로 마련해 둔 김치통을 들고 문학관으로 가니 학예사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아싸~ 하지요. ^^” 


“휘휘 둘러 문학관에 들어서다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학예사님이었습니다. 겨울초와 상추를 솎아 가라고 하시기에 야금야금 솎아 그렇게 놀다가 왔습니다.” 


“집사(관리원)님의 모습이 보이기에 생가로 가니 학예사님과 함께 열무를 뽑고 계셨습니다.” 


“마을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소사라 제법 걸어야 하지만 문학관으로 가는 마음은 언제나 ‘룰루랄라’입니다. 11시 버스를 탔다는 건 학예사님과 식사를 하기 위해서인데 소사 마을의 한 집에서 제사를 모셨다면서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낯선 집에 어떻게 가느냐고 하니, 새로 오신 집사님 시댁이니 함께 가도 괜찮다고 했기에 염치 좋게 어르신께서 차려주신 밥상을 받고 문학관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통하는 사이가 이런 사이가 아닐는지요. 어제 학예사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진 인화됐고요, 열무꽃은 피지 않았고요, 태산목 꽃이 피었으며, 비파가 노랗게 익고 있습니다라면서요.” 


이번에는 신달자 시인과 함께입니다.


“생가의 뜰을 거닐기만 해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김달진문학관입니다. 바람, 초록, 새소리, 대나무, 향기, 흙, 시, 커피, 사람, 사람.” 


“학예사님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그럼 저는 혼자 놀지요. 딸까 말까 - 대문쪽의 노란 비파를 확인하고 열무밭과 장독대를 지나 태산목에게 갔습니다.” 그


리고, 이른 봄날 매화 사진을 잔뜩 찍어 올린 글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기도 하다. “심화선에게 한 움큼 따 주고 싶었다.” 


6. 넷째 늦둥이가 태어난 까닭은? 


심화선 학예사는 지난해 넷째 아들을 봤답니다. 늦둥이를 낳은 일을 두고 심 학예사는 일하는 김달진문학관의 기가 좋은 덕분이라며 웃었습니다. 


생가 부엌이 여느 집과 달리 오른쪽에 붙어 있습니다. 당대 증언을 통해 복원했답니다.


생가에는 비파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태산목 가죽나무 따위가 있고 텃밭에는 겨울초 열무 배추 상추 근대 오이 토마토 고추 같은 것을  철 따라 기르고 거둡니다. 함께 어울리면서 함께 나누며 사는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김달진 시인이 진해남면중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교지 <탑>을 창간하면서 지어 붙인 ‘탑송(塔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탑의 면모가 김달진문학관에서 오롯이 느껴집니다. 


오중탑(五重塔) 아니오라

구층당(九層堂) 아니오라. 끝없는 저 하늘 우러러

머리 치켜드는 너 탑아


하도 높은 탑이오매 굳건히

대지를 밟아야 하나니

깊은 고민과 매운 눈물로 짙은 땀 속에

또 커다란 환희 속에 자라난

천만고(千萬古) 바람비에도 움직이지 않을 너 탑아


쪼고 갈고 다듬고

한 층 두 층 세 층 네 층

저 창공의 별을 응시하며 올라가는

너 날카로운 슬기 아니뇨


탑아 탑아

내 일찍 들었나니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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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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