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커피 향기로 만드는 마을 공동체의 꿈

김훤주 2013. 5.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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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물금 범어리

 

카페 소소봄 주인 이우석씨.

 

1. 자유로운 대중에 바탕하는 카페의 힘

 

카페와 살롱이 있었습니다. 살롱은 귀족 사교장이었고 카페는 서민 공간이었습니다. 살롱의 주인은 귀족의 아내들이었고 카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살롱은 주인이 초청하는 인물만 올 수 있었지만 카페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살롱은 절대주의 왕정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근대 사상이 싹튼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지성인들이 상롱을 주도한 덕분이었습니다. 카페는 선술집과 더불어 근대 사상을 널리 퍼뜨리고 나아가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게까지 했습니다. ‘자유로운 정신’들이 많이 드나든 덕분이었습니다.

 

살롱에서는 술을 마시지만 카페에서는 커피를 마신답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사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살롱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뒤인 19세기 시들해졌습니다. 17세기 중반 생겨나기 시작한 카페는 같은 시기 흥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페 소소봄 들머리.

 

이런 카페를 바탕삼아 공동체 만들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1년 출생으로 아주 젊습니다. 그이는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제대로 자리잡고 성공하려면 공동체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모여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고 여깁니다.

 

2. 카페를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서 카페 ‘소소봄’을 운영하는 이우석씨는 지난 7일 만났을 때 카페(cafe)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길게 얘기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근대 정신을 형성하고 확산한 근거지라는 얘기입니다.

 

 

귀족이나 명사만 출입할 수 있었던 살롱과 달리 드나듦에 차별이나 장벽이 없었고 거기 파는 커피가 비싸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도 손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카페는 새로운 소식과 정견 따위를 나누는 장소였고 갖은 상업 거래도 이뤄졌으며 공연·전시도 여기서 펼쳐졌습니다. 또 집집마다 우편물이 배달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소포나 편지를 배달하는 거점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유럽에서 카페는 사회와 문화를 담는 그릇이었고 지금도 그릇입니다.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곳, 겨울에는 공짜로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곳, 모르는 사람과 사쉴 수도 있고 책이나 신문도 읽을 수 있는 곳’이 카페입니다.

 

이런 설명에 이우석씨가 만들고 싶어 하는 카페의 모습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름 ‘소소봄’도 그런 뜻을 담았습니다. “‘소소봄’을 왜 하느냐고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지요. 공동체가 없는 데서는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가 있는 데서는 더 잘 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3. 사회적 가치=복지와 수익을 함께 추구

 

또 공동체가 운영도 돼야 하잖아요? 사회적 가치=복지와 수익을 동시 추구합니다. 소소봄은 ‘마을 카페’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마을 카페라는 말, 사람에게 익숙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 듣는 개념은 이밖에도 더 있습니다. 모두 자기가 하는 일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저는 ‘카페 사회사업’을 하는 ‘카페 사회사업가’입니다. 카페를 통해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카페는 담론, 이야기, 소문, 협의, 논의, 논설이나 해설 같은 것들이 떠다는 그런 공간입니다.

 

소소봄 천장에 붙여 놓은 사진들.

 

18세기 시민혁명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한 아지트 같은 공간입니다. 시민들 남녀노소 구분없이 신분에 관계없이 말을 하는 공간입니다. 카페 하나가 지역 주민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요.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소소봄’이라 지었어요.

 

밝을 소(昭), 작은 소(小), 밝은 봄이 머무는 공간, 소박한 공간, 소소한 소시민들이 어울리는 사랑방 같은 공간…. 그렇게 모이는 사람들이 마을을 잘 살게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공간…….”

 

밝은 공간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오후 햇살이 곱게 퍼지면서 창문을 넘어 안으로 스며듭니다. 게다가 여기 들어와 있는 사람들 표정도 다들 편안해 보입니다. 어린 아이랑 젊은 어머니가 함께 들어와 책을 읽거나 얘기를 나눕니다, 오랫동안.

 

 

4. 정부 지원 없이 자립 자활할 수 있어야

 

“정부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기업들이 지원이 끊어지면 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요. 보니까 망하는 기업들은 공동체가 없었어요. 공동체를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싶었어요.

 

물론, 모이는 공간으로는 밥집도 있고 술집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데는 행위가 단순한 공간이거든요. 게다가 술집은 술을 마시니까 단점들이 있을 수 있어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카페가 제격이라고 봤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바리스타(Barista, 커피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 공부를 했어요. 제가 대학 입학 00학번인데 사회복지학과를 다녔어요. 학교 다닐 때 사회복지정보원에서 주최한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벤처사회사업가’라는 말을 들었어요.

 

에스프레소 마스터 과정 수료증(위)과 사회적 기업 스쿨 수료증(아래).

 

복지관 같은 기관이 있지 않으면서도 복지사업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우석씨는 사회적 기업을 해보려고 2010년에 SK그룹에서 하는 ‘사회적 기업 스쿨’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개인 사업자로 국세청에 등록했습니다. 말하자면 자영업자입니다.

 

창업 전에 부산YMCA와 동원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면서 주민 조직 사업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을 공동체 만들기로 복지사업을 할 수도 있겠다고 보고 창업에 나섰습니다.

 

5. 카페사회사업이라는 개념도 만들고

 

카페사회사업가라고 적혀 있는 명함.

 

“저 이전에도 카페를 통해 사회사업을 한 분들이 있었겠지요. 다만 ‘카페 사회사업(가)’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이고요. 그런 분들이 일을 하면서도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자기 정체성이 헷갈려하셨을 것 같아요.

 

창업을 준비하면서 그런 분들을 만났는데, 이론과 실천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도움주신 분들이 오히려 자기 하는 일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요.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것처럼……. 저보다 먼저 한 선배인 그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알아봐 주시니 고맙고 좋았습니다.”

 

카페를 내어 한편으로는 복지를 실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익을 내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는 얘기입니다. 수익 자체, 복지 자체, 그리고 그 사업의 유지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매우 협소해진다고 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이라는 얘기겠습니다.

 

6. 카페를 지역 사회에 내어놓기도 하고

 

이런 생각에서 이우석씨는 소소봄을 지역에 종종 내어놓습니다. “27일 ‘잠옷 입는 날’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마을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미국식이랄 수 있겠네요. 무료고 이날은 장사 안 합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건데요, 잠옷 입고 와서 책 읽어주는 소리 듣다가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면 부모들이 그대로 안고 집으로 가는 겁니다. 아홉 번째 공연이네요. 2011년에 두 번했고, 지난해 2012년은 여섯 번, 올 들어는 처음.”

 

 

이우석씨는 이미 유명해져 있습니다. 4월에 나오는 부키출판사의 직업 소개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사회복지사가 말하는 사회복지사>라는 책에도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름이 나면서 찾아오게 되는 이런저런 사람에게 자기 경험과 생각을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그이의 카페 운영이 눈길을 끈 덕분이겠지요. 그렇다면 카페 소소봄 매출은 어느 정도일까요? 행여 비밀은 아닐까요? “네이버에서 ‘소소봄’ 치면 다 나와요. 공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7. 그래도 아직은 모자란 구석이 많아

 

2011년은 문을 연 5월부터 5000만원, 2012년 8000만원, 2013년은 석 달 동안 3000만원.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12개월 동안 1억원입니다. 순이익은 25%. 전세금이 30%, 인건비가 30%, 자재비가 15%.”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1년 일해 챙기는 몫이 2500만원뿐인 셈입니다. 자기 인건비밖에 안 되는 수준입니다.

 

“매출도 더 많아져야 하고 순이익도 올라가야 합니다. 카페 시장은 전쟁터이기 때문에 커피로만 살아남기는 힘든 세상입니다. 창업할 때 여기서 두 번째였어요. 지금은 스무 군데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1등이지만요.

 

가장 먼저 스스로가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지금은 로스팅한 커피를 가져오지만 앞으로는 직접 로스팅할 생각입니다. 곧 좀더 넓은 데로 옮길 계획인데요, 옮기면 그렇게 하려고요.

 

 

자본이 많으면 자본으로 성공할 수 있고, 기업가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기본인데요, 공동체가 필요한 다른 까닭도 있습니다. 공동체가 없으면 운영 주체가 자기 공(功)이 크다고 여기며 성과를 자기 몫으로 댕길 가능성이 큽니다. 사적 욕심이 발동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죠.”

 

8. 기부나 복지가 아닌 커피로 이름나고 싶어

 

기부는 적지 않게 합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왔을 때는 기부 내역이 적힌 종이가 공간 한 켠에 붙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부 내역을 인터넷에 올려놨습니다. 지역 아동센터나 장애인 시설 같은 데요. 원래는 공개하지 않았어요.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러다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 보여드릴 필요도 있겠다, 그랬더니 좋아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부나 복지로 이름이 나는 카페가 아니라, 카페다운 카페로 이름이 나는 그런 카페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안 알리고 ‘쪼대로’ 합니다. 편한 쪽으로, 하고 싶은 쪽으로요. 착하고 싶을 때 착하고, 착하고 싶지 않을 때 착하지 않게 하고…. 공개를 하면 기부를 스스로에게 자꾸 강제하는 측면도 있어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기부만 복지로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주는 사람 따로 있고 받는 사람 따로 있는 그런 복지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우석씨는 그게 아니라 합니다. “이런 식이에요. 지난해 양산 복지 박람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커피 교육을 무료로 하면서 꽃농사 짓는 분을 동참시켰어요. 교육에 오신 분들께 꽃이 심긴 화분을 하나 1000원에 팔았습니다. 화분 하나에 500원씩 남았는데 후원금으로 냈습니다. 복지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우석씨는 복지를 특정 형태로 묶어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명함에서 이름 앞에 ‘카페사회사업가’라고 새긴 까닭도 관련이 있습니다. 30대 초반인 이 젊은이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9. 드림 팩토리 공장장이 되고 싶다는

 

“공부를 안 해 공고를 갔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때 꿈이었던 사회복지사가 지금 돼 있습니다. 그래서 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꿈을 꾸고 있어요. 제가 이승환 광팬인데…,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 꿈 공장), 소셜 웰페어(Social Welfare 사회복지) 드림 팩토리 공장장이요. 다양한, 새로운 복지 형태 방법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래만 부르는 줄 알았던 가수 이승환씨가 다른 사람들 제대로 꿈꾸도록 도와주는 그런 일도 하는 모양이라는 짐작이 이 대목에서 들었습니다.

 

 

“‘소소봄’이 안락하지도 않고 풍경이 뛰어나지도 않고 맛도 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처음 시도해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되게 부족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많지만 그래도 공개합니다.

 

카페를 하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랑 마을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요. 참고해 주시고요. 실패하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이게 아니다 싶거든 찾아달라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혼자일 때 되게 힘들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무엇인가?’ 깜깜해 블랙홀 같은 그 때 도움 받을 데가 없었는데, 그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손잡아 주니까 많이 편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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