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윤창중 성추행 사태에 묻히는 것들

김훤주 2013. 5. 1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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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미국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면서 서울에 본사가 있는 매체들 대부분이 뒤집어졌습니다. 날마다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13일 대충 훑어봤더니 전국지 가운데 ‘윤창중’을 1면에서 다루지 않은 신문이 없었습니다.

 

국민일보인가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머리기사로 다뤘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그것도 대통령 미국 순방길에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한편으로는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보도로 말미암아 중요하게 다뤄야 할 다른 사안들이 숨겨지고 사라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 사라지고 숨겨지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 지배집단의 이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감춰지거나 감춰질 개연성이 높은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 짚어봤습니다. 13일 저녁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 세상읽기에서였습니다.

 

1. 윤창중 사건을 호기심 자극 수단으로 삼는 종편

 

서수진 아나운서 :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에서 한 행동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모든 신문 방송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이 대사관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느냐 아니면 손을 댔느냐, 아침에 인턴이 호텔 방에 찾아왔을 때 옷을 입고 있었느냐 아니냐 등등 갖은 얘기가 다 나오고 있습니다.

 

 

김훤주 : 이야기가 지나치게 나가는 경향도 보입니다. 종합편성채널, 종편이 그런 편인데요, 어제 우연히 보니까 심리학자인지 정신분석학자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야 전문가를 불러 앉혀놓고 윤창중 대변인이 어떤 심리 상태에서 그런 짓을 했겠느냐 얘기를 주고받더라고요.

 

장삿속이 빤히 들여다보입니다. 말초신경이나 호기심을 자극해 어떻게 해서든 대중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저질 방송입니다.

 

진 : 그러면서 점점 본질은 흐려지고 사건을 구성하는 시시콜콜한 장면들이 더욱 많이 부각되기 십상이겠지요.

 

2. 원인은 그런 인간을 그런 자리에 앉힌 인사에 있다

 

주 : 그렇습니다. 어떤 심리 상태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사태의 본질도 아니고 해결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못되거든요. 물론 진상이 하루라도 빨리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런 소소한 부분으로 치달아 정작 핵심을 놓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진 : 그러면 핵심은 무엇일까요? 다 알려진대로 그런 덜떨어진 사람을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고위 공직에 앉힐 수 있는 시스템이 문제겠지요?

 

주 : 두 말 하면 잔소리겠지요. 그런 면에서 오늘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실망스럽습니다. 진상을 밝히고 문책을 하겠다는 말만 해지,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거든요.

 

진 : 벌써 그런 지적들이 곳곳에서 나오잖아요? 문제가 수그러들기는커녕 박 대통령의 사과로 오히려 더욱 커지게 생겼습니다.

 

3. 남양유업과 우리 사회 갑-을 관계 문제

 

연합뉴스 사진.

 

주 : 그 탓에 덕 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게 생겼습니다. 바로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런 상황을 패러디한 이미지들이 인터넷에 많이 뜨지 않았습니까? 전사적인 물량 밀어내기로 말썽을 빚고 사과까지 했던 남양유업이, 다시 기자회견을 해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고맙습니다” 하고 큰 절을 하는 장면 말이지요.

 

진 : 그렇네요. 이렇게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나름대로 관심을 끌어왔던 여러 문제들이 묻히게 생겼어요.

 

주 : 말씀하신대로, 남양유업이 잘 보여준 우리 사회 갑과 을 사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갑의 횡포에 대책없이 당하기만 하는 을을 보호하는 방안들이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에 담겨야 하는데, 이미 재벌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대부분 중단돼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더욱 관심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4. 박근혜 방미, 통상임금 문제 그리고 남북 관계

 

진 : 이밖에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요?

 

주 :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까지 건너가서 그 나라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 방미 결과가 가장 먼저 묻히게 됐습니다. 이른바 한미 동맹과 안보에 치우친 측면이 있어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갖고 볼 때 성과도 있고 한계나 잘못도 있을 텐데, 그에 대한 홍보나 평가가 묻히고 있죠.

 

박근혜 대통령 일행과 미국 상공회의소의 만남.

 

진 :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 기업가들을 만났지요. 거기서 통상 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는 등 문제를 두고 불만이 제기됐는데,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해결해 드릴 테니 투자를 하라고 한 것도 그냥 넘어가기 십상이겠네요.

 

주 : 저는 그 보도를 보는 순간 박 대통령이 대법원장까지 겸임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어요. 사법부인 법원에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를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니까요. 게다가 대법원에서는 행정부와 달리 대법원장이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않고 또 그게 통하지도 않습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주어지는 급여는 모두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에 반할 뿐 아니라 노사간에 날카롭게 맞서 있는 사안에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것이어서 크게 논란이 될 뻔했는데 일단 그냥 묻어가는 국면입니다.

 

진 :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비롯한 남북 문제도 당분간 관심에서 사라지겠어요.

 

208년 2월 8일 부산항에 들어오는 니미츠호.

 

주 : 게다가 오늘(13일)은 이틀 일정으로 9만7000톤급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가 참여하는 한미 연합 해상 훈련이 시작되는데 이 또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 같으면 북한이 ‘엄중한 군사 도발이며 따라서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면 일부 매체들은 그것을 부풀리기까지 해서 떠들어댔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5. 진주의료원 폐업과 현대제철 산재 사망 사고, 국정원 댓글질

 

진 : 우리 지역 사안인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도 잠잠해지지 않았나요?

 

주 : 일단 오는 22일까지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위한 노사 교섭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조용할 수밖에 없겠다고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생겼는데도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10일 진주의료원에서 열린 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 : 사용자 쪽에서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씀이지요? 이미 공고는 지난 10일 나왔고 16일이 신청 마감이라던데요.

 

주 :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는 전국 대부분 매체들이 진주의료원 폐업을 크게 보도를 했는데 앞으로는 잘 해야 경남 지역 매체들만 보도하게 생겼습니다.

 

진 : 그렇다면 앞으로는 전국적으로는 노출이 되지 않을 테네 홍준표 도지사로서는 훨씬 부담이 가벼워지는 측면이 있겠습니다.

 

주 :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제 뜻대로만 밀어붙이려 하면 노동계와 지역 시민사회의 반발을 키워서 사태는 더욱 꼬이게 될 것입니다.

 

진 : 이밖에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주 : 제가 보기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현대제철 당진공장 산재 문제가 있습니다.

 

진 : 어느 것부터 한 번 얘기해 볼까요? 현대제철 사안은 어쩌면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지지 않았어도 크게 눈길을 끌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요.

 

2010년 4월 8일 준공식 장면

주 : 노동 관련 사안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지난 10일 새벽 한꺼번에 노동자 다섯 명이 죽어나가는 등 지난해 9월 이후 여덟 달 동안 산업재해로 숨진 사람이 열 명이나 되는데다가 뇌사 상태에 있는 사람도 한 명입니다.

 

이렇게 숨진 대부분은 또 하청업체 노동자입니다. 원청업체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고용노동부는 이렇게 많이 사람이 죽었는데도 현장감독만 하고 특별근로감독은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번 5명이 숨진 참사는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규정을 어기고 아르곤 가스를 집어넣었다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모순이 현대제철 한 곳에 집중돼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진 : 국정원 댓글 사건도 만만치 않지요. 그런데 오늘(13일) 보니까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제보한 전직 직원을 검찰이 소환 조사했다는 기사가 떴더군요. 또 우익단체들이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나치다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어요.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수사 축소 압력을 받았다는 당사자.

 

주 : 국정원 댓글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국정원이 해서는 안 되는 국내 정치에 개입한 사건입니다. 국정원이 조직을 동원해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한 것은, 백 번 양보해서 보더라도 안보 관련 정보 수집이나 방첩 활동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국정원 댓글 달기가 어느 정도 규모로 얼마나 광범하게 진행됐는지 전모를 파악하는 것과 원세훈 전 원장이 사건에 얼마나 개입돼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면 덩달아 검찰 수사가 쪼그라들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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