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축협에 붙은 미국산 쇠고기 펼침막

기록하는 사람 2008. 6. 1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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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산 산호동의 한 교차로에서 눈에 익숙한 펼침막을 발견했습니다. 요즘 많이 보급되고 있는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관련 펼침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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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원래 이 펼침막은 경기도 과천 주부들이 만들어 집집마다 내걸기 시작한 가정용 펼침막이 원조입니다. 처음 이 펼침막 보급운동을 주도한 이는 과천시의회 서형원 의원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경남도민일보 노동조합이 나서 약 5000여 장을 전국 곳곳에 보내 준 걸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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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원래 보급되고 있는 가정용 펼침막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집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합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걸 축협에서 사업장 앞에 내걸면서 내용을 바꿔버렸다는 겁니다.

'광우병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 먹지도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 라고 되어 있군요. 그리고 원래 그림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주부의 모습도 사라져버렸습니다.

물론 이런 펼침막도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핵심적인 내용을 빼버리고 그냥 '먹지도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수입해도 안 사먹으면 될 거 아냐?'라고 말하는 논리와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기정사실화시켜놓고, 사먹지 말자는 의미로 읽힐 수 있고, 이는 현재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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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바꿔버렸군요.


원래 이 그림의 원저작자는 김동호 화백(47)이라고 합니다. 그는 2년 전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의 부탁을 받고 이 그림을 그려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저작권 문제와 관련,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제가 따로 크레딧을 걸지 않았거든요. 누구나 자유롭게 한미FTA 문제점을 설명할 때 자료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확산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민중연대에 이 그림을 넘겨준 뒤 저작권 같은 걸 전혀 요구하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저는 선의의 목적으로 제 그림이 쓰인다면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선의의 목적으로 쓰인다면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다만 상업적 목적으로 쓰시면 그 문제는 별도로 고민해볼 생각이예요."

제가 볼 땐 축협이 내건 펼침막은 재협상 요구를 희석시킬 수도 있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이 펼침막을 내건 축협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산호동지점만 내건 게 아니라 마창진축산농협 산하 모든 지점에 내걸었다고 하더군요.

이거 어떡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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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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