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돈 안 되는 인문학 강의 꾸리는 창원시의원

김훤주 2013. 2. 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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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가 부쩍 관심을 끌고 있습ㄴ다. 경남도 곳곳에서 인문학 강의가 열리립니다. 자치단체나 백화점, 대학교서도 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합니다.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처음부터 스물네 차례로 장기 기획을 한 점과 자치단체를 비롯한 행정기관이나 백화점·기업 같은 자본의 도움 없이 민간의 힘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다른 인문학 강의와 구분됩니다.

이를 준비·진행·추진하는 사람 가운데 이옥선 창원시의원이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민주교수협의회가 중심에 있지만, 김남석 경남대 교수와 황창호 MBC경남 PD와 더불어 이 세 사람이 말하자면 추진기획단 노릇을 하고 있답니다. 

창동 한 술집에서 만나 인터뷰하는 이옥선 창원시의원.


선출직 지방의원은 보통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을 챙기기 바쁘고 이런 강의를 마련한다 해도 득표 또는 지역구 주민들의 평판과 관련해 판을 짜기 마련입니다. 진보 성향 의원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텐데 별로 그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적극 나서는 까닭이 설핏 궁금해졌습니다.

1. 올 4월 마무리되는 ‘행복한 인문학 교실’ 2년 장정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2011년 5월 25일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창원시 마산합포도서관 제1문화강좌실에서 김재현 경남대 철학과 교수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강의했습니다. 100명 남짓 들어가는 강의실은 차고 넘쳐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다달이 마지막 수요일 같은 장소에서 줄곧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24회로 기획했으니 오는 4월 마지막 수요일인 24일 마무리가 된답니다.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2년 가까이 진행돼 오면서 여러 성과들이 있어요. 첫째는 경남대 민교협 교수님들이 바깥에 나와 시민들을 만난 것 자체고요, 교수 본인이 대학 강단을 벗어나 실험을 해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같은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게 된 것, 그리고 일반 시민을 확보한 것도 성과지요. 청소년 인문학 교실도 여섯 강좌씩 두 차례 진행했는데 이 또한 인문학을 익히고 찾는 사람들의 저변을 넓힌 것입니다.

특히 통합 창원시에서 옛 창원 지역은 마을도서관·작은도서관 사업이 활성화돼 있고 창원시의 지원 등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지만, 옛 마산 지역에서는 인문학 프로그램 가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또 민간 주도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관의 협조를 받아낸 것도 좋고요, 창원시립인 마산합포도서관이 전적으로 돕고 장소를 빌려주잖아요.”

비판적인 얘기를 꺼내봤습니다. 여태 진행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딱딱한 이론 위주이고 지역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런 측면에서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등등…. 그랬더니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풀려나왔습니다.

“이론으로 치우치지 않고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를테면 도심 재생, 도시 역사 같은 것을 다룰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눈길을 확 끌도록 좀더 ‘섹시’하게 제목을 뽑고 내용을 채울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한(또는 안한) 측면도 있습니다. 저희 뒤에 창원 지역 여성 단체들 인문학 강의 제목을 보니 그런 ‘섹시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자극적이어야 하나, 원론적이고 학문적이고 할 수 있지 않나, 살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목표를 가져갈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기초 학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출발하면서 처음부터 대중의 취향에 맞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얘기입니다.

물론 원론만으로는 되지 않겠지만, 철학과 역사 강의가 민간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도권 교육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가 철학·역사거든요. 그런 부분이 제대로 돼 있지 못하다 보니 인생관·가치관 같은 것을 바로 세우지 못하게 되고요.”

2. 선거랑 무관한데도 인문학을 하는 까닭은?

1964년 마산 출생인 이옥선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 대표로 출마해 마산시의원에 당선됐습니다. 2007년 17대 대선 뒤 당이 쪼개지면서 진보신당으로 당적이 바뀌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신당 간판으로 마산합포구 월영·문화·반월·중앙동 선거구에 나서 선출직 창원시의원이 됐습니다.

3명 뽑는 선거구에서 3등을 했습니다. 선출직은 거의 본능적으로 선거와 득표를 의식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3등으로 당선됐다면 다음 선거에서 좀 더 나은 득표를 위해 더욱 매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장 활동에 나선 이옥선 창원시의원.


그런데 이 의원은 ‘행복한 인문학 교실’에 자기 역량의 많은 부분을 쏟아넣고 있습니다. 한 달에만 세 차례 안팎 행복한 인문학 교실 관련으로 모임을 할 정도랍니다. 시민운동 조직이라 해도 이 정도면 한 사안으로는 절대 적은 편이 아닙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득표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까요?

“선거나 득표랑은 관계도 없고 도움도 안 됩니다. 그런데도 하는 까닭이요? ‘진보’이기 때문에 그렇지 싶어요. 지역 현안을 바라보고 지역 활동들을 해 나오면서 우리 시민들한테 의식이나 철학이 많이 필요하다고 많이 느꼈어요. 공감대를 형성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마을도서관을 하나 만들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추진하는 제가 새누리당 아닌 진보신당이라 ‘말빨 있는 일부’ 주민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월영동에서 있었던 일인데, 제대로 좌절 한 번 한 셈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독서와 토론을 통한 인식의 변화, 일방통행이 아닌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 등 새로운 문화 속에서 시민의식을 갖도록 돕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한 일인데 막히니 갑갑했습니다. 제가 행복한 인문학 교실 ‘추진’에 힘을 쏟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시작은 NGO 대학원 졸업생 모임에서

이태 가까이 진행되면서 나름 성과를 낸 ‘행복한 인문학 교실’을 시작한 동기는 그렇지만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사소하달 수도 있는 조그만 모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경남대학교 대학원 NGO 협동과정이 있었어요. 여기를 제가 2007년에 졸업하고 졸업생 모임이 지속됐어요. 한 달에 한 번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인데, 이를 통해 황창호 PD랑 얘기하면서 구체화됐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이뤄져 있었고….

NGO 협동 과정에서 가르침을 주신 김남석 교수님을 찾아 만났는데 교수님도 기꺼이 동의했지요. 경남대 민교협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민교협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있으셔서 민교협 교수님들을 추동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이 가운데서도 MBC경남의 황창호 PD와 인연이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이 의원은 황PD랑 ‘좋은 친구처럼 사귄다’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기혼 여성이고 황PD는 미혼 또는 비혼 남성입니다.

황창호 PD랑은 각별한 사인데요. 2004년인가 저를 어떻게 알았는지 라디오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약국을 운영할 때였는데, 약물에 관한 여러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시사 문제와 결합해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을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때부터 좋은 친구처럼 지내 왔습니다. NGO 대학원 소개도 황PD가 했어요. 같이 공부한 기간이 1년 정도? 늦게 입학한 제가 졸업은 먼저 했고요. NGO 대학원이 저랑 황PD, 김남석 교수 셋을 하나로 묶어 줬습니다.”

4.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행복한 인문학 교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스무 달 동안 다달이 진행됐습니다. 이 의원은 딱 두 차례 빠졌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집안에 초상이 나서, 다른 한 번은 빠질 수 없는 모임이 있어서였다고 했습니다. 마산에는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인문학 강좌를 이태 동안 진행했다 해도 달라진 것이 당장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시민의식 형성이 조금이나마 이뤄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강단에만 서던 경남대 교수님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도 성과라고 봅니다. 시민들 참여에 여러 문제가 있고 그래서 더욱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할 필요는 있습니다. 무슨 주제로 할지 어떤 공간에서 할지, 아침 낮 또는 저녁 어느 때에 할지가 다 고민거리입니다. 역사 또는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지역 인물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거명하면서 직접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할 때마다 40~100명 인원이 꾸준하게 강의를 들어왔습니다. 꾸준히 참여한 ‘일반’ 시민은 10명 정도? 그런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오히려 이런 강의를 잘 듣지 않습니다. 찾아다니면서 부탁을 했는데도요. 이런 부분 보완이 좀 필요하고요, 또 일반 시민들은 교육, 나아가 ‘영재 교육’ 이런 데 더 큰 관심을 보입니다. 현실입니다. 이런 일반 주민에 대해서는 좀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요.

피드백은, 뒤풀이나 다음 강의에 오거나 할 때 했어요. 정기적으로는 잘 못했지요. 사람이 모자랐어요. 한 명이 책임을 지고 조직적으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데…. 확보된 명단이 한 400명 정도인데, 성의를 갖고 직접 전화를 한다든지 메일링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해서 제대로 소통을 하면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산이 고향인 이 의원은 1982년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약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물리학을 전공해 퀴리 부인과 아인슈타인 박사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 서로 협조하면서 연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애를 키우고 자기 뜻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네요.

1985년 학생운동과 관련해 제적을 당한 뒤 이른바 ‘현장’으로 갔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 1990년 그 현장을 마산·창원으로 옮겼습니다. 1993년 결혼을 하고 복학을 하면서 다시 지역을 떠나 96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다음 2000년 돌아왔습니다.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옥선 창원시의원.


2002년 월영동에서 월영약국을 개설했는데 2006년 시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폐업했습니다. 약국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 십상이라 동네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으면서 주민들이랑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시의원을 하는 도중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5. 생각을 정리하고 긴장을 놓지 않게 해 준 교실

이 의원 본인한테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시의원으로서 득표나 선거에 도움이 되는 바는 없었다는데 그렇다면 행여 방해는 되지 않았을까요?

“많이 배웠습니다.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참여한 교수님들, 그리고 준비하는 몇 분과는 관계가 돈독해졌습니다.
학문은 그 자체가 개방적이다 보니까(그래서 다른 생각과 관점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한 데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민교협 교수들은 학자로서 다들 나름대로는 진보적인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가 보다 싶어요. 평소에는 볼 때 보수적인 것 같았던 교수님이 진보적인 생각을 밝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반면 진보적인 것 같던 교수님들이 좀더 오히려 신중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런 과정에서 행복한 인문학 교실이 복지라든지 정치 현안, 문학·여성주의 등등에서 많은 것을 제시하고 녹여냈습니다.

시의원으로서 방해가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기적으로 정해 놓고 책을 읽거나 귀동냥이라도 하면서 다른 분들 생각을 듣거나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역 활동과 이어지는 실천적인 지침은 아니더라도 중심을 확인시켜 주거나 생각들을 잃지 않게 해 주는 일들이죠.

긴장이랄까 끈이랄까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게 하는 힘 같아요.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층들을 오히려 좀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당적인 이해랑 시민적인 이해가 부딪힐 때 정당적 이해에 끌리기 쉬운데 그렇지 않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제시해 줍니다. 이를테면, 제가 소속돼 있는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지난 12월 19일 선거 방침이 대선은 무소속 김소연 후보, 도지사 보궐선거는 무소속 권영길 후보였는데, 저는 문재인 후보를 위해 마이크를 잡기도 했습니다.”

이 날 이옥선 의원은 소주를 한 병 넘게 마셨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얘기하고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도 했습니다. 인생 전환기를 맞아 새 삶을 준비해야지 않겠나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눈에 보이는 조그만 욕심에 매이지 않아 보기는 좋았지만 조금 지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게 만들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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