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졸업식이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뀐 까닭은?

김훤주 2013. 2. 1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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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새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어 있는 졸업식

오늘 아침 집을 나와 거리를 지나가는데 이런 펼침막을 봤습니다. ‘제46회 졸업장 수여식’. 참 이상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그렇게 ‘졸업장 수여식’이라고 써온 지가 꽤 오래됐더군요.


2008년에 찍은 사진에도 졸업장 수여식이라 적혀 있었고요, 그보다 앞선 2003년에 이 ‘졸업장 수여식’을 두고 쓴 글도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오히려 무심해서 오래 전에 바뀌었는데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졸업식이던 것이 언제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었을까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부분 졸업식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그 뒤에 졸업장 수여식으로 바뀌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다섯 해 전 김주완 선배가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


다만 대학 졸업식을 두고 수여식이라는 낱말이 쓰였는데요, 학위 수여식으로 (학사·석사·박사) ‘학위’와 짝을 이뤄 쓰였습니다.

2. 어떤 심리가 이렇게 바뀌도록 영향을 미쳤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의 학위 수여식이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에 영향을 끼쳐 이름을 바뀌도록 만들었다고요.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이렇게 바뀐 배경에 깔려 있는 사람들 심리는 무엇일까요? 제 짐작으로는, 이를테면 좀 속물적인 품위를 지향하는 그런 습성이랄까 심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은 초·중·고등학교보다 수준이 높고 뭔가 있어 보이는 교육기관으로 여기면서, 거기서 쓰는 수여식이라는 표현도 덩달아 수준 높고 뭔가 있어 보이고 근엄하고 품위있는 것으로 여긴 결과이지 싶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가 저마다 나름대로 역할이 있고 또 다른 학교랑 견줘 높고낮음을 가릴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학이 학위 수여식이라 한다 해도 저렇게 졸업장 수여식으로 베껴쓰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3. 당선증 교부식도 우스운 노릇이고

학위 수여식이든 졸업장 수여식이든 이렇게 바뀐 데는 사회적인 집단 심리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간접화’라고 할 만한 표현들이 많아졌습니다.

면허·자격을 땄다는 말을 직접적인 표현이라 한다면, 면허증·자격증을 땄다는 말은 간접적인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간접 표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슨무슨 양성 과정을 마쳤다(또는 수료했다)고 하기보다는 무슨무슨 양성 과정 수료증을 받았다고 더 많이 표현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자격증·면허증·수료증 등등 ‘증’의 존재 여부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사회 흐름도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삶에서 자기가 몸소 듣고 보고 겪은 것보다 한 다리 거쳐서 듣고 보고 겪은 것이 갈수록 많아지는 흐름도 저는 이런 간접화의 원인이라 봅니다.

뉴시스 사진.



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등에 대한 당선증에도 이런 뒤집힘이 있다고 봅니다. 선거 결과 당선됐으면 그만이지 무슨 당선증을 주는 것도 그렇고, 당선증을 받아야 당선 효력이 발생한다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행정 절차상 필요하다면 그냥 공문 하나 보내면 끝날 텐데, 굳이 당선증을 교부한다면서 ‘당선증 교부식’을 합니다.

4. 졸업식의 주인은 졸업생, 졸업장 수여식의 주인은 선생님

이번에 제가 찍은 사진.


어쨌든, 거두절미하고, 졸업장 수여식은 알맞지 않고 틀린 표현입니다. 졸업식이 알맞고 맞는 표현입니다. 졸업식은 학생이 졸업하는 행사입니다. 졸업하지 않는 사람들은 졸업식에서 졸업생을 축하하게 됩니다.

학생, 졸업생이 주체가 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재학생 대표가 선배를 보내는 송사(送辭)을 읽고 졸업생 대표는 이에 대응해 답사(答辭)를 읽습니다. 그러면서 상장도 받고 졸업장도 받습니다. 그러고는 졸업의 노래를 함께 번갈아가며 부릅니다.

졸업장 수여식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입니다. 수여(授與)한다는 말은 준다는 뜻입니다. 주는 사람은 학생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입니다.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졸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상장도 줍니다. 선생님이 중심에 놓이는 행사입니다.

졸업장 수여식의 주체는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입니다. 학생, 졸업생은 주인이 아닌 객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졸업장 수여식은 틀렸습니다.(물론 제 생각일 뿐 다른 이들한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대학의 학위 수여식조차 졸업식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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