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손쉽게 파업할 수 있는 특권노조 탄생

김훤주 2008. 6. 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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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단체행동을 하려면 재적(在籍) 인원 과반 참석에 재적 인원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노조 규약에도 그리 돼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에도 그리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하지 않아도 파업할 수 있는 특권적 노조가 거꾸로 사용자로 말미암아 탄생했습니다.

재적 과반 찬성 규정을 두고 권력이 노조가 파업하기 어렵게 하려고 일부러 그리 만들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파업을 비롯한 단체행동이란 노조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리 한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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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같은 단체행동은 가장 마지막에 쓰는 가장 커다란 무기이기 때문에 적어도 과반은 동의를 해야 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조직 해산을 빼면 바로 단체행동 여부가 노조에서는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파업할 수 있는 특권을 경남에 있는 여러 노조가 얻었습니다. 경남의 삼성이라 일컬어지는 stx 그룹(회장 강덕수)의 노조들과, 단체장이 제왕 이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마산시(시장 황철곤)를 사용자로 하는 노조가 그렇습니다. 이들 노조는 앞으로 과반이 안 되는 찬성률로도 충분히 파업할 수 있는 특권을 사용자한테서 받게 됐습니다.

찬성이 절반 안 됐어도 가결 선언한 마산시장

왜냐하면, stx 조선기자재 공장의 수정만 입주를 놓고 벌인 주민 찬반투표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사람이 참여했고 따라서 당연히 절반에 못 미치는 찬성률이 나왔는데도 “주민들의 찬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고 못 박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대 주민 의사는 그대로 묵살이 됐습니다.

수정 일대 주민들의 찬반투표가 치러진 날은 5월 30일입니다. 시장 황철곤은 이날 바로 가결을 선언했습니다. 1150명 투표권자(그것도 마산시가 일방적으로 정한) 가운데 570명(49.6%)만 투표했고 또 520명(45.2%)만 찬성했는데도 그리 했습니다. stx중공업도 마산시의 행태에 발맞춰 6월 5일 ‘전체 주민 뜻에 따라’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금속노조 stx조선지회나 stx엔진지회 같은 stx 계열사 노조나, 마산시장이 사용자인 민주노총 경남본부 마산상용직(환경미화) 지회는 이제 그야말로 살판났습니다. 대충 아무렇게나 찬반투표를 해놓고는, 그냥 지회장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가결이라고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stx그룹과 마산시가 저지른 행태대로 한다면, 앞으로 절반을 밑도는 조합원이 참여했어도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할 수 있고, 또 거기서 절반이 안 되는 찬성률이 나와도 파업을 벌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 생존권이 노조 파업권보다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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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생각할 때,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내어놓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일개 단위 사업장 노조 조직의 파업 실행 여부는 물론, 다른 어디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하다고 봐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니 가결 결정 기준 또한 더 높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뒤집어 말하자면, 생활 터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전체 주민의 절반도 참여하지 않은 투표에서 전체 주민의 절반도 찬성하지 않은 결과로 결정한다면, 그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파업 여부는 이를테면 3분의1 정도 참여에 4분의1 정도 찬성만으로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마산시장 황철곤과 stx그룹 회장 강덕수는, 전체 주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찬성밖에 얻지 못했는데도 이를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찬성 의사라 간주했으므로, 해당 노조의 단체행동 찬반 투표에는 당연히 이보다 헐렁한 규정을 적용하거나 최소한 같은 정도로만 적용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사용자가 만들어준 특권 노조

노동조합에서도 나름대로 지켜지는 민주주의 일반 원칙을 stx그룹 회장 강덕수와 마산시장 황철곤은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게 무너뜨린 민주주의 일반 원칙은, 그러므로 마산시와 stx그룹에서만큼은 마찬가지로 무시돼야 할 것입니다. 노동조합 파업 결정을 좀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특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산시장 황철곤과 stx그룹 회장 강덕수는 자기네 편한 대로 민주주의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런 비난이 일어난다 해도, 눈치 보거나 움츠러들 그런 존재들이 전혀 아니리라 여겨지기는 합니다만.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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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지역사회, 지방자치제도, 지방정치의 변화! 민주화 20주년 맞이한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적 쟁점을 다룬「민주주의 총서」그 4번째 이야기.『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20년간 한국의 지역과 지방자치, 지역 민주주의에 대한 진행형의 정리물로, 그 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현재 상황과 전망은 어떠한지를 알아본다. 본문은 먼저 1987년부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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