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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은 할 수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데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은 먼저 들머리에서 "형사 재판에 있어서 심증 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고 한 다음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란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낱말이 어렵고 문장이 비틀려 있어 정확한 뜻을 알기가 힘들지만, 어쨌든 합리적 의심은 ①논리와 경험칙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②요증 사실(要證事實=당사자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어야 합니다.
요증사실이 어려운 말인데요, 그것이 당사자(검사나 피고인)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라면 간단하게 말씀드려 '증거라고 제출된 발언이나 물건'이 될 수 있겠고, 그러므로 한 번 더 간단하게 하자면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란 '앞서 제출된 증거와 상반돼서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저물 무렵에 김훤주가 동쪽으로 가는 모습을 김주완이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주완은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여기서 ⓐ는 요증사실이고 ⓑ는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저녁 무렵에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햇빛이 쏟아질 까닭(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제출된 증거와 상반되는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할 수 있는 의심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부추기는 대법원 판결문
김명호 피고인과 박훈 변호사는 법정에서 석궁 위력이 엄청나서 완전 장전된 상태에서 발사되면 사람 몸 정도는 관통해 버린다는 사실과,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꽂히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다퉜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석궁의 엄청난 위력과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났다는 조그만 상처는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 의심에 대한 반증이 대법원 판결문에는 없습니다.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의 피묻은 옷가지에 대해 적어놓은 대목이 유일한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유전자형 분석 결과 모두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피고인은 조끼와 속옷에 모두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면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은 판결문을 저는 처음 봅니다. 쟁점을 확실하게 흐려버리는 뛰어난 재주를 부렸습니다. 먼저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에는 화살로 뚫렸다는 구멍 근처에 피가 있는 반면 흰색 와이셔츠는 구멍 근처에는 피가 없고 이상하게도 오른쪽 팔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옷가지 핏자국에서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했지 그것이 박홍우 판사의 피와 동일하다는 얘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상처를 입었다는 증명이 없습니다. 또 옷가지의 피가 박홍우의 피와 같다는 증명이 있어야 다음(상처가 났는데 그것이 화살 때문이냐 아니면 자해 때문이냐 등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뒷부분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증명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증명된 것은 '여러 옷가지에 동일한 남자의 피가 묻어 있다' 뿐입니다. 그 피가 박홍우 판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꼼수'까지 부리는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자기 발언이나 뒤집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체포 당할 당시에 범행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으며, 범행 직후 고등학교 동창인 언론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의 이름으로 담당 판사를 상대로 일을 저질렀으니 이를 보도해 달라고 통화를 하였다."고 한 다음 김명호 교수가 말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이렇습니다. "피고인은 구금되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부터 위 피해자에게 석궁을 고의로 발사할 생각은 없었고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몸싸움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되어 위 피해자가 상해를 입게 되었다고 진술을 바꾸고 있다."
김명호 교수는 경찰과 검찰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고의로 발사하지는 않았다'고 한결같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수사를 받기 전에 했던 말을 장황하게 서술함으로써 김명호 교수가 '나쁜 놈'처럼 비치게 만들었습니다.
상식으로 보더라도, 2007년 1월 15일 박홍우 판사 집 앞에서 체포될 때까지 있었던 10분 동안 했다는 발언보다 그 뒤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판결까지 1년 넘게 걸린 세월 동안에 나타난 일관성이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다른 정황도 있습니다. 동료 이경호 교수의 발언입니다. 이경호 교수는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건 직후 김명호 교수랑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통화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형 작가가 펴낸 책 <부러진 화살> 42~43쪽에 나옵니다.
"김 교수가 판사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데, 옆에서 경찰이 끄라고 한 것 같아요. 전화가 끊겼어요. 그런데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받아요. 잠실지구대래. 어떻게 된 거냐고? 박홍우 판사를 찾아가서 겁만 줄려고 했는데, 활을 잡는 바람에, '활이 뭐야?' 그랬죠. 난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갖고 있었던 걸 몰랐어요. '내가 석궁을 가져갔어.' 그래요. 황당했죠. 활을 잡아서 뒤엉켜서 하다 보니깐 화살이 나갔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대요. 다친 것도 같고 안 다친 것도 같고. 하여튼 일어나서 툭툭 옷을 털면서 자기 집에 갔대요. 그 정도 이야기하다가 딱 끊겼어요."
공판중심주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자백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경호 교수의 말이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형사 사건으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직감만으로도 알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1985년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와 1989년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테러 규탄 총파업으로 두 차례 수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대목은 대법원 스스로가 공판중심주의를 어기고 지키지 않았다는 자백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법관은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나 진술된 증언을 중심으로 삼아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없을 정도 수준에서 판결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문은 이 대목에서 김명호 교수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열넉 달 동안이나 일관되게 해온 진술을 수사받기도 전에 했다는 말 몇 마디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대목은 법정에서 나오지도 않은 내용을 바탕삼아 심증을 형성했다는 대법원의 자백일 따름입니다.(이어집니다.)
김훤주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은 먼저 들머리에서 "형사 재판에 있어서 심증 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고 한 다음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란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낱말이 어렵고 문장이 비틀려 있어 정확한 뜻을 알기가 힘들지만, 어쨌든 합리적 의심은 ①논리와 경험칙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②요증 사실(要證事實=당사자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어야 합니다.
요증사실이 어려운 말인데요, 그것이 당사자(검사나 피고인)가 증명해야 하는 사실 관계라면 간단하게 말씀드려 '증거라고 제출된 발언이나 물건'이 될 수 있겠고, 그러므로 한 번 더 간단하게 하자면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란 '앞서 제출된 증거와 상반돼서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저물 무렵에 김훤주가 동쪽으로 가는 모습을 김주완이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주완은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습니다.
여기서 ⓐ는 요증사실이고 ⓑ는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저녁 무렵에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햇빛이 쏟아질 까닭(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제출된 증거와 상반되는 다른 증거가 나왔을 때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할 수 있는 의심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부추기는 대법원 판결문
김명호 교수가 제시한 합리적 의심을 대법원 판결문은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김명호 피고인과 박훈 변호사는 법정에서 석궁 위력이 엄청나서 완전 장전된 상태에서 발사되면 사람 몸 정도는 관통해 버린다는 사실과,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꽂히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다퉜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석궁의 엄청난 위력과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났다는 조그만 상처는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 의심에 대한 반증이 대법원 판결문에는 없습니다.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의 피묻은 옷가지에 대해 적어놓은 대목이 유일한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유전자형 분석 결과 모두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피고인은 조끼와 속옷에 모두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면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을 처음 맡은 이회기 재판장(영화에서 이경영)은 김명호 교수의 문제 제기를 나중에 맡은 신태길 재판장처럼 막무가내로 탄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은 판결문을 저는 처음 봅니다. 쟁점을 확실하게 흐려버리는 뛰어난 재주를 부렸습니다. 먼저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에는 화살로 뚫렸다는 구멍 근처에 피가 있는 반면 흰색 와이셔츠는 구멍 근처에는 피가 없고 이상하게도 오른쪽 팔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옷가지 핏자국에서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했지 그것이 박홍우 판사의 피와 동일하다는 얘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상처를 입었다는 증명이 없습니다. 또 옷가지의 피가 박홍우의 피와 같다는 증명이 있어야 다음(상처가 났는데 그것이 화살 때문이냐 아니면 자해 때문이냐 등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뒷부분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증명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증명된 것은 '여러 옷가지에 동일한 남자의 피가 묻어 있다' 뿐입니다. 그 피가 박홍우 판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꼼수'까지 부리는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자기 발언이나 뒤집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체포 당할 당시에 범행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의 이름으로 판사를 처단하려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으며, 범행 직후 고등학교 동창인 언론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국민의 이름으로 담당 판사를 상대로 일을 저질렀으니 이를 보도해 달라고 통화를 하였다."고 한 다음 김명호 교수가 말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이렇습니다. "피고인은 구금되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부터 위 피해자에게 석궁을 고의로 발사할 생각은 없었고 위협만 할 생각이었는데 몸싸움 과정에서 석궁이 발사되어 위 피해자가 상해를 입게 되었다고 진술을 바꾸고 있다."
김명호 교수는 경찰과 검찰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고의로 발사하지는 않았다'고 한결같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김명호 교수가 수사를 받기 전에 했던 말을 장황하게 서술함으로써 김명호 교수가 '나쁜 놈'처럼 비치게 만들었습니다.
상식으로 보더라도, 2007년 1월 15일 박홍우 판사 집 앞에서 체포될 때까지 있었던 10분 동안 했다는 발언보다 그 뒤 2008년 3월 14일 항소심 판결까지 1년 넘게 걸린 세월 동안에 나타난 일관성이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다른 정황도 있습니다. 동료 이경호 교수의 발언입니다. 이경호 교수는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건 직후 김명호 교수랑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통화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형 작가가 펴낸 책 <부러진 화살> 42~43쪽에 나옵니다.
"김 교수가 판사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데, 옆에서 경찰이 끄라고 한 것 같아요. 전화가 끊겼어요. 그런데 궁금해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받아요. 잠실지구대래. 어떻게 된 거냐고? 박홍우 판사를 찾아가서 겁만 줄려고 했는데, 활을 잡는 바람에, '활이 뭐야?' 그랬죠. 난 김명호 교수가 석궁을 갖고 있었던 걸 몰랐어요. '내가 석궁을 가져갔어.' 그래요. 황당했죠. 활을 잡아서 뒤엉켜서 하다 보니깐 화살이 나갔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대요. 다친 것도 같고 안 다친 것도 같고. 하여튼 일어나서 툭툭 옷을 털면서 자기 집에 갔대요. 그 정도 이야기하다가 딱 끊겼어요."
공판중심주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자백
나중에 항소심을 맡은 신태길 재판장(영화에서 문성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이경호 교수의 말이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형사 사건으로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직감만으로도 알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1985년 이적표현물 제작 배포와 1989년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테러 규탄 총파업으로 두 차례 수사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대목은 대법원 스스로가 공판중심주의를 어기고 지키지 않았다는 자백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법관은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증거나 진술된 증언을 중심으로 삼아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없을 정도 수준에서 판결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문은 이 대목에서 김명호 교수가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열넉 달 동안이나 일관되게 해온 진술을 수사받기도 전에 했다는 말 몇 마디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대목은 법정에서 나오지도 않은 내용을 바탕삼아 심증을 형성했다는 대법원의 자백일 따름입니다.(이어집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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