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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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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교수가 억울하게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했다든지 그이가 일으킨 석궁 사건이 정당하다든지 아니면 그이가 훌륭한 인물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아직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그이가 석궁을 들고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박홍우 판사를 찾아간 사실만으로도 범법이 성립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얘기하는 바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신속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를 김명호 교수가 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판중심주의를 어겼어도 정당하다는 엉터리 대법원

대한민국은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6년 정도 법원을 드나들며 취재를 해 봤습니다. 공판중심주의(公判中心主義)란, 공판에서 진행되는 소송 절차를 중심으로 재판을 해야 하며, 법관의 심증 형성(心證形成)도 공판에서 나오는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있고 참고인(피해자나 증인 포함) 진술 조서가 있고 여러 가지 증거를 검사가 제시했을 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고인과 검사 사이에 공격과 방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방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된 법정(공개주의)에서 법정에서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에 근거(직접심리주의)해야 되며, 법원(재판부)은 이런 모든 과정을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와 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조차도 잘못(위법)이 있다고 한 만큼 다시 거론할 까닭이 없으며, 다만 항소심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 또한 1심 못지 않게 엉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도 없고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한 적도 없습니다.


작가 서형이 밝힌 항소심의 엉터리 판결 현장
 

영화에 나오는 박훈(왼쪽) 변호사와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 항소심 판결은 2008년 3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있었습니다. 신태길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었습니다. 2007년 8월 28일 1심 8차 공판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법정에 들어가 재판 과정을 기록했던 작가 서형은 자기가 쓴 책 <부러진 화살> 120쪽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신태길 재판장은 재판 과정이나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로 가득 찬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법관의 심증 형성은 공판에서 나온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신태길 재판장이 어디서 이런 심증을 형성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집니다. "판결문은 피고인(김명호 교수)이 안전 장치를 푼 석궁을 들고 계단에서 내려와 피해자(박홍우 부장판사)를 향해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며 피고인에게 상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넉넉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주저 없이 발사했다고 이야기를 한 바가 없었다. 박홍우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명호 교수가 판결문처럼 주저함이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면, 피고인 김명호에게는 '상해의 고의'가 아니라 '살해의 고의'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석궁의 위력은 화살이 피해자 박홍우의 몸통을 관통해 버릴 정도이기 때문입니다.(송파경찰서 발사 실험 결과 1.5m앞에서 쐈는데 두께 2cm 합판을 뚫고 15cm 튀어나갔습니다.)


다시 이어집니다. "안전 장치를 풀어두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건 이야기한 사람도,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박홍우는 손으로 석궁을 잡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손으로 잡지 않았기에 우발적으로 발사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홍우가 손으로 잡지 않았다는 것을 신빙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신태길 재판장은 수사 과정이나 공판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피해자 박홍우 손에 상처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박홍우가 석궁을 잡은 적이 없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법정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 항소심 판결문을 채운 신태길 재판장의 영화 속 모습.


서형의 기록이 옳을까? 형해화된 공판 조서가 옳을까?


서형의 이런 기록이 틀렸다고 이야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항소심 판결문과 공판 조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여섯 공판 가운데 2월 25일 공판은 기록이 없다시피 합니다.


세 쪽짜리 공판조서가 있을 뿐인데 이를테면 피고인이 오랫동안 주장했던 내용을 '피고인, 재판장에 대하여 석명을 위한 발문 요구' 이렇게 열아홉 글자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회기 재판장이 그만둔 자리에 신태길이 들어오면서 녹음·녹취를 법원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서형은 법정에서 공판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블로그 서형 인터뷰(http://2bsi.tistory.com)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면 2월 25일 사정은 서형의 기록만 있는 셈인데, 이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은 당사자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은 있겠습니다. 하하.

'유리한'을 '불리한'으로 둔갑시킨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이 엉터리임을 보여주는 초절정 핵심은 서형이 펴낸 단행본과 정지영이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부러진 화살'을 두고 "피고인(김명호 교수)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한 데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라고 규정한 다음 "(그래서) 수사기관에서 (부러진 화살을)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없으므로 증거 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2011년 12월 14일 창원서 열린 시사회에 나온 정지영(왼쪽) 감독과 박훈 변호사.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검찰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일 따름이고 피고인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물입니다.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화살이 부러진 상태에서는 사람 몸에 들어가 박힐 수 없습니다. 또 사람 몸에 들어가 박힌 상태에서는 화살이 부러질 까닭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석궁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박홍우 부장판사와 김명호 교수가 몸싸움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과정에서 박홍우 판사 몸에 박혀 있던 화살이 부러질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릅니다. 박홍우 판사의 상처 깊이가 1.5c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화살에 충격이 주어졌다면 그냥 빠질 뿐이지 부러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건 당시 김명호 교수를 체포하고 석궁과 화살을 압수한 송파경찰서에서 해 본 실험과도 맞지 않습니다. 박홍우 판사 진술대로 계단 3~4개 위에서 석궁을 쐈더니 2cm 두께인 합판을 관통하고도 모자라 15cm가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홍우 부장판사 배꼽 왼쪽에 난 상처는 깊이가 최대 1.5c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 표현 "기다렸다가 다가가 (김명호 교수가) 피해자에게 화살 1발을 발사하고"와는 상태가 다름을 알게 해주는,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물일 따름입니다. 김명호 교수가 박홍우 판사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다치게 했더라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다는(이른바 고의성은 없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식과 사실에 따라 대법원 판결문을 다시 쓴다면 이렇게 돼야 마땅합니다. "피고인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고 검찰에게 불리한 결정적인 증거물이므로 수사기관에서 일부러 폐기 또는 은닉할 이유가 충분한 만큼 이를 증거 조작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고……." 그렇지 않습니까?(이어집니다.)

김훤주
부러진화살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지은이 서형 (후마니타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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