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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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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실과 맞아떨어지느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글을 읽고 또 엔하위키 내용을 보니 그 까닭이 조금 짐작됐습니다.

엔하위키에서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보면 마지막 결론으로 "김씨는 사법부의 증거 조작과 무리한 법 적용을 주장하나, 최소한 판결문만으로는 김씨에게 내려진 판결은 전혀 문제가 없는 판결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영화와 사실은 다르며, 사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 제대로 된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영화를 맹신하여 김씨의 무죄를 주장한다든가, 김씨를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운 영웅이라는 식으로 우상화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일보는 "인터넷ㆍSNS '부러진 화살, 진실과 다르다' 커지는 목소리"라고 제목이 달린 기사를 1월 30일치에 내었습니다. 부제로는 "엔하위키 '판결문만으론 문제 없어'… 진중권 '김前교수의 퍼포먼스에 낚여'"라고 달았습니다.


"법원이 불공정한 재판 진행으로 피고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를 유죄로 몰았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대중의 자발적 목소리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네티즌들이 집단지성으로 만들어 가는 인터넷 백과사전의 일종"이라는 꾸밈말까지 붙여가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엔하위키'(
http://angelhalowiki.com)가 대표적이다. 이 사이트는 '피해자의 상처는 자해이며, 증거는 모두 조작됐다'는 김 전 교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해했다는 주장의 증거가 (오히려) 없다',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주장은 논점을 흐리는 것. 직접 증거가 없어서 법원의 무리한 처벌이라는 주장을 좇으면, 살인자가 칼로 사람을 죽인 후 칼을 바다에 버릴 경우엔 무조건 무죄가 된다'고 하는 식이다."라고 끌어와 썼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의 권위를 넘어서야

그렇습니다. 제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여기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법원 판결문을 기준으로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판결문에 적혀 있는 내용을 사실로 간주하고 보면 영화 부러진 화살의 법정 안 장면이 그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은 법원 재판 과정에 잘못이 많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증거나 증인 채택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진위를 두고 공방을 벌이기 마련인 검사와 피고인 사이 진술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재판 과정에 잘못이 많으면 당연히 판결에도 잘못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서 나온 대법원의 엉터리 판결문을 기준으로 해서 법원이 재판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부러진 화살이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합니다.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대법원 판결문을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문이 과연 제대로 된 판결문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법원 또는 법관이 그래도 엉터리를 저지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사실 여부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 판결문을 들이밀면서 부러진 화살 영화는 허구라 얘기합니다.

항소심에서 갑자기 사직한 이회기 재판장 뒤를 이어 재판을 진행한 신태길 부장판사.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대법원 판결문에 사실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재판 과정이 잘못돼 있는데 재판 결과가 반듯하게 나올 리가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금과옥조로 모시는 대신 비판적인 눈길로 샅샅이 뜯어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도 인정한 엉터리


대법원 판결문을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에 대해서도 조금 얘기를 곁들이겠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문이 말을 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만 한정해 놓고 보더라도 대법원 판결문이 이중으로 잘못됐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호 성균관대학교 전 교수와 박훈 변호사는 2008년 3월 14일 항소심에서 이른바 석궁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다음 대법원에 상고합니다. 여러 상고한 까닭 가운데에는 1심 재판 과정이 잘못됐다는 엉터리였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봅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에 규정된 필요적 변호 사건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제1심의 공판 절차가 변호인 없이 이루어진 경우, 그와 같은 위법한 공판 절차에서 이루어진 소송 행위는 무효이므로, 이러한 경우 항소심으로서는 변호인이 있는 상태에서 소송 행위를 새로이 한 후 위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필요적 변호 사건'이란 징역 3년 이상에 해당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경우로 반드시 변호사를 붙여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문에도 있듯이 이렇게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필요적 변호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82조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취지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석궁 사건에서 김명호 교수는 2007년 9월 18일과 10월 1일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 교수에게는 변호사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재판은 변호인과 피고인이 모두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10월 15일 징역 4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된 1심을 두고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원심(항소심)은, 이 사건이 필요적 변호 사건임에도 제1심 법원이 제8회 공판 기일과 제9회 공판 기일에 변호사 없이 개정하고 증거 조사를 실시하고 그 증거들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은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이렇게 해서 1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은 대법원 판결문조차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라 함으로써 제대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영화 부러진 화살이 다룬 항소심이 증거·증인 채택을 하지 않았지만 1심에서 충분히 다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주장은 헛소리 이상이 될 수 없게 됐습니다.

전혀 '다시 심리'하지 않고 엉터리로 판결한 항소심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어지는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입니다. 중요한 대목입니다.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항소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항소심은 '다시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위 법리란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파기된 제1심 재판에 기대지 않고 항소심에서 진술을 듣고 증거를 조사한 결과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비춰 말하자면 항소심에서는 '진술 및 증거 조사와 관련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증거·증인 채택과 사실 조회 등등에 대한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의 요구를 묵살한 것밖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항소심을 함께한 김명호(오른쪽) 교수와 박훈 변호사.


항소심은 2007년 11월 12일 시작됐는데 12월 10일과 12월 17일, 2008년 1월 28일 네 차례는 이회기(영화에서 이경영)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았고 영화에 주로 나오는 재판장인 신태길 부장판사(영화에서 문성근)는 2월 25일과 3월 10일 두 차례만 공판을 진행했습니다.(3월 14일 재판은 선고만 했고요.)

이회기 재판장 시절인 12월 17일과 이듬해 1월 28일에는 홍성훈 송파경찰서 경찰관과 안만영·이동복 잠실지구대 경찰관과 박규주 서울대병원 외과 의사 증인 심문이 있었고 신태길 재판장 시절인 3월 10일에는 권영록 119대원과 김형석 송파경찰서 경찰관 증인 심문이 있었습니다.


핵심 증인인 석궁 사건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김명호 교수의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맡았던)에 대한 증인 신청은 기각됐으며, 이날 출석한 증인들은 주변 인물인 셈입니다. 물론 이날 출석한 증인 심문서도 공소 내용과 상반되는 증언이 있었으나 신태길 재판장은 변론을 종결했습니다.(이는 뒤에 따로 다룹니다.)

박홍우 부장판사 증인 신청, 핏자국 감정 신청, 석궁 실험 신청, 석궁 발사 화살 위력에 대한 감정촉탁 신청, 사건 당시 현장 CCTV 존재 여부 사실 조회 신청 등이 거부됐고 2월 25일 재판은 녹음·녹취마저 합당한 까닭 없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 판결문은 원심(항소심)이 정당하다고 엉터리로 적혀 있습니다.(이어집니다.)

김훤주
부러진화살대한민국사법부를향해석궁을쏘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법학
지은이 서형 (후마니타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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