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합천활로 ② 정양늪생명길

김훤주 2012. 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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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히 마음 가다듬어 주는 아담한 습지

1. 천연기념물들이 깃들어 사는 정양늪

정양늪은 합천읍 못 미쳐 정양로터리에서 진주 가는 쪽으로 난 도로를 한 100m 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들머리가 나타난다. 정양늪을 이루는 물줄기는 아천천이다. 아천천은 앞서 용주면 즈음에서 발원해 황계폭포를 만든 황계천을 대양면에서 받아들인다.

이렇게 남동쪽으로 흘러내리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튼 아천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강이랑 만나지는 너른 지점에 만들어 놓은 습지가 바로 정양늪이다.

합천에는 정양늪을 '호수'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원래는 황강 합류 지점에 길게 흙과 모래가 쌓여 경계가 지어지면서 그런 모양을 띠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 합천댐이 들어서고 물살이 느려지는 바람에 바닥이 얕아졌다. 한편으로는 그 경계 지점이 조금씩 매립되면서 몇몇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넓이가 88만6600㎡로 제법 아담한 여기는 한 때 개발 압력을 받아 매립 이야기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2006년을 지나면서 논란은 사라지고 생태 공원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성 계획은 2011년 올해 안으로 완성돼 현실에서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이는 공원 꼴을 갖추는 것일 뿐, 정양늪의 바탕 모습은 지금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알려진대로 습지는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걸러내는 정화 역할을 한다. 정양늪도 마찬가지여서 무리지어 자라는 줄, 갈대, 마름, 노랑어리연, 이삭사초, 물옥잠, 검정말, 나사말 따위가 그런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대 먹을거리가 풍성해져 각시붕어, 참몰개, 동마자,모래주사 같은 물고기는 물론 금개구리 무자치 따위가 살게 됐고 나아가 이들을 먹이로 하는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와 황조롱이, 멸종위기종인 말똥가리 같은 새들까지 깃들게 됐다.

습지의 정화 기능은 자연 생태계만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사람도 정양늪 같은 습지에 스며들면 '정화'가 된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단순해지고 기쁘거나 즐거울 때는 차분해지며, 울적하거나 슬픈 때는 그런 기운이 제대로 씻겨나간다.

아름다움(美)과 더러움(醜), 맑음(淸)과 흐림(濁) 같은 사람의 구분을 넘어, 생물과 무생물의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지 싶다. 습지가 사람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또다른 까닭이다.

2. 황토흙길 따라 펼쳐지는 습지 생태의 전형

자동차 10대 가량 세워둘 수 있는 정양늪 들머리에 서면 왼쪽으로 나무데크, 오른쪽으로 황토흙길이 놓여 있다. 나무데크는 200m쯤 돼 보이고 황토흙길은 1km남짓 된다. 이 두 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 좋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황토흙길을 아천천 둑방길과 이어붙인 다음 건너편 산자락을 지나 나무데크로까지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열릴 것이다.

먼저 황토흙길을 걷는다. 황토가 제대로 깔렸다. 알갱이가 크고 작은 것들이 골고루 섞였다. 신발 벗고 맨발로 걸어도 좋겠다 싶은데, 그렇게 하면 까칠까칠한 감촉과 더불어 발바닥을 통해 황토의 기운이 몸 속으로 스며들 것 같았다.

북에서 남으로 가는 길이라 해질녘에는 석양과 노을을 안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어차피 돌아나와야 하니 한 번은 등을 져야 하겠지만…….

황토흙길은 진주로 이어지는 왕복 2차로 도로와 오른편으로 동행하는데 오가는 자동차가 많지 않아 시끄럽지는 않았다. 덕분에 왼쪽 습지 생태의 전형을 보고듣는 눈과 귀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물결, 물 위에 떠 있는 마름과 개구리밥, 물 속에 뿌리 박고 자라는 이런저런 물풀, 둥치가 나름 굵어져 있는 왕버들과 갯버들, 간간이 날아올라 여유롭게 선회하는 왜가리나 백로 같은 새들이 제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버들이 바짝 붙은 한 군데서 바라보고 있으면 나름 그럴 듯한 풍경이 들어온다. 한가운데 나무 너머에는 하얀 꽃을 머금은 연들이 한창 세력을 불린다. 저 멀리 오른쪽에 왕버들이 한 그루 있는데 거기서부터는 다른 물풀이 무리를 지어 번지고 있다. 그보다 가까운 이 쪽으로는 물살의 흐름이 거의 없는지 물 위에는 개구리밥 같은 것들이 둥둥 뜬 채로 조용하다.

문득 돌아보면 짧은 황톳길이지만 느낌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 아마도 쪽 곧지 않고 군데군데 굽이가 진 때문이다. 덕분에 습지 풍경과 어우러진 황톳길이 한결 그럴 듯하다. 이럴 때면 꼭 사람살이도 마찬가지겠다 생각이 든다. 좋고 멋진 굽이도 있고 괴롭고 비통한 고비도 불쑥 찾고 해야만 사람살이의 결이 한결 다양하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3. 왕버들 군락으로 들어가는 나무데크

돌아나와 나무데크로 발걸음을 옮긴다. 맞은편 황톳길에서 볼 때 짙은 갈색 줄기로 부드러운 초록빛 가지를 지탱하는 버들 군락 가운데로 들어가는 통로다. 물길을 따라 옆으로 길게 늘어선 품이 멀리서 볼 때는 그럴 듯하다.

데크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면 그 속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럴 듯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별것은 아니다. 돋아나는 새싹도 있고 바람을 가르며 멋지게 길게 미끄러지듯 내려앉는 새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줄기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황톳물이랑 나무에 걸려 있는 찢긴 비닐 따위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습지 정화 작용의 결과임을 안다면 그렇게 좋게만도 여겨지지 않고 지저분하게만도 여겨지지 않는다. 습지는 맑음과 흐림,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뒤섞여 있으면서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이다.

아름다움은 더러움으로 이어지고 더러움을 바탕삼아 아름다움이 생긴다고 일러준다. 나아가 아름다움이나 더러움 그리고 맑음이나 흐림 따위는 사람 마음의 작용일 따름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도 일러준다.

그냥 모든 것은 그러할 따름이고 다만 시시각각 달라질 뿐임을 통째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덕분에 사람들이 습지에서 고난스러운 마음 작용을 잠시나마 풀어내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 있는 습지의 모습이, 사람 눈과 귀를 씻고 머리를 헹구고 가슴의 티끌을 털어내 주는 것이다.

돌아나오며 보니 정양늪 물줄기가 황강으로 콸콸콸 쏟아져 흘러들고 있었다. 정양늪을 이루도록 바탕을 만들어주는 물줄기였다. 걷는 동안 바로 옆 한우 경매장에서 나오는 확성기 소리와 소울음이 조금은 거슬렸지만 무슨 절간에서 명상이나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러려니'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코스 : 정양늪 들머리 주차장~황톳길(왕복)~나무데크(왕복)(1시간~1시 30분)

길 안내
자가용
창원·진주·부산 방면 : 남해고속도로~군북(의령)나들목-의령읍~대의고개~삼가면~합천읍~황강레포츠공원
대구 방면 : 88고속도로~고령나들목~합천읍 ~황강레포츠공원
서울 방면 : 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거창나들목~합천읍~황강레포츠공원

대중교통
마산 합성동터미널 1시간 오전 7시 50분(창원), 10시 40분(창원), 오후 12시 50분, 2시 45분, 5시 30분, 6시 40분 6차례
진주시외터미널 50분 오전 6시 50분~오후 8시 13차례
대구 서부터미널 1시간 오전 6시 10분~오후 8시 20분 22차례
부산 사상터미널 1시간40분 오전 7시~오후 7시 15차례
서울 남부터미널 5시간 : 오전 10시 8분 12시 오후 2시 3시 4시 45분
※ 합천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고 택시를 타면 기본 요금이 나온다.

숙소 : 맞은편 합천읍내에는 시골 동네답지 않게 여관이 아주 많이 모여 있다.

주변 여행지 : 바로 옆 합천교 건너편에는 황강레포츠공원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함벽루가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에는 돋아나는 새싹이 좋고 여름에는 풍성한 초록이 새삼스럽고 가을에는 낙엽과 단풍, 물풀들 서걱대는 소리가 그럴 듯하고 겨울에는 눈이라도 온 가운데 철새 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요금 : 입장료나 주차요금은 따로 받지 않는다.

문의 :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 055-930-3755~6


김훤주
※ 합천군에서 2011년 12월 펴낸 <나를 살리는 길 합천활로>에 실려 있습니다.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에 연락하시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해인사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예술문고
지은이 이재창 (대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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