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노동조합의 민주주의와 신흥재벌의 민주주의

김훤주 2008. 6. 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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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산에서는 진해에 있는 stx조선 공장의 수정만 유치를 놓고 한창 말썽이 많습니다. 이 말썽의 장본인은, 황철곤 그리고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입니다. 거리에는 갖가지 관변단체들이 “사랑해요 stx! 어서 와요 stx!!" 따위 몸 팔아 밥 벌어 먹는 구호를 난리스럽게 붙여놓고 있습니다.

반면 지역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숫자로 보면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아주 완강하게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의 stx 유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바로 생존 자체, 여태 살아왔던 그대로 앞으로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민 무시 행정의 배후에는 신흥 재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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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장 황철곤

마산시장 황철곤은, 지난 4월까지 시장 자리를 걸고 반드시 stx 유치를 이룩하겠노라고, 제가 보기에는 떡고물이 생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그런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민 반대에 부닥쳐 이룩하지 못하고, ‘그 4월이 양력 아니고 음력이었나?’ 비아냥을 받기도 했습니다.

비양댐이 싫었던지, 마산시장 황철곤은 행정조직은 물론 자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관변단체까지 모조리 동원해 관제데모를 일삼더니 5월 30일에는 주민투표라는 행정 수단까지 쓴 끝에 유치를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민 49.6%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91.2%가 찬성했습니다. 반대 주민은 물론 요구 조건이 투표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이들의 요구는 ‘(직접 관련이 되지 않은) 한 마을의 주민들을 빼고 나머지 지역도 지금이 아니라 문제가 터진 1년 전에 살고 있었던 만 19세 이상이 투표 주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합당한 요구를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는 받아들이지 않고 깔아뭉갰으며, 당연히 투표 인원은 반대 주체들이 셈한 숫자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직접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한 마을 주민 150명 정도와, 1년 사이 주민등록을 옮긴 이들이 더해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 결과를 보고, 이제 반대 주민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투표 결과를 다룬 같은 기사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마산시장 황철곤이 그 자리에서 유치 확정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투표 결과를 두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찬성이라 간주한 것입니다. 5월 30일, 음력 4월 26일이었습니다.

수정(水晶)만에 조선기자재 공장 짓겠다는 stx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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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그룹 이미지 신문 광고

그러고 나서 6월 5일 어제 stx중공업이 마산 수정만에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회장 강덕수가 아닌 부회장 이인성 이름으로 ‘수정지구 일반산업단지 개발에 대한 stx중공업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저는 한 주일 전 있었던 투표 결과를 자세히 뜯어봤습니다.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가 결정한 투표권자는 1150명이고 이 가운데 투표한 이는 570명입니다. 이 570명 가운데 40명은 반대했고 10명은 자기 의사를 뚜렷하게 표시하지 않았거나 못한 반면 520명은 찬성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는 투표일 현재 없다고 파악된 이른바 부재자가 204명이고, 나머지 376명은 대다수 반대하는 의견을 지닌 이들입니다. 투표 참여한 이들 기준으로 삼아,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는 “91.2% 찬성으로 stx 유치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주민으로 보면 1150명 가운데 520명은 절반에 못 미치는 45.2%밖에 안 됩니다. 게다가 반대 주민 처지에서는 직접 관련 없는 마을 주민과 지난해부터 입주해 들어온 사람들은 마땅히 투표 주체에서 빼야 하고, 이들의 성향은 반대보다는 찬성이 더 높으리라고 손쉽게 짐작이 됩니다.

보기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150명 가운데 관련이 별로 없(다)는 마을 주민이 150명이면, 이들을 뺀 전체 인원은 1000명입니다. 이 가운데 찬성 비율 91.2%를 똑같이 적용하면, 찬성 주민은 384명이 되며 이는 전체의 38.4%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45.2% 찬성률도 실제보다는 높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 투표와 그 결과는 거칠게 말하자면 관권 조작이요 부드럽게 말해도 민심 왜곡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반대 주민들로서는 기가 차거나 막히는 일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더욱 기를 쓰고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저도 이들 심정을 이해합니다. 제 경험에서 공무원은, 시장이나 군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주민에 대한 바람벽일 뿐입니다.)

노조의 민주주의와 재벌의 민주주의

이를 두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생각해 봤습니다. 정신과 의지로서 민주주의 말고, 순전히 제도로서 민주주의 말입니다. 결론 삼아 말하자면, 신흥 재벌 stx의 민주주의는 노동조합보다 훨씬 못하다, 입니다. 노동조합은 주인인 조합원을 더 존중하는데, 재벌과 자치단체는 그만큼 주인인 주민을 깔본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규약입니다. 제19조는 “재적 조합원 과반수 참석으로 성립되고 출석 조합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의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의 이번 주민 투표는 처음부터 ‘불성립’입니다.

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쟁의행위는 어떨까요? 이는 규약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이 정한 바이기도 한데, 언론노조는 규약 제46조에서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재적 조합원 과반수 찬성”을 조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이번 주민 투표는, 절대 91.2% 찬성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따라서 ‘부결’입니다.

주민들의 사는 터전을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는, 분명히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자치단체 민주주의 현실은 이 꼬라지입니다. 횡포라면 오히려 처지고, 독재라고 해야 걸맞은 그런 수준입니다. 이래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하지만, 실은 떡고물이 그이들에게 더 큰 관심사이리라 저는 봅니다.

마산 수정만에 stx가 들어오느냐, 그것도 아니랍니다. stx 본사가 아니라 뜨내기 협력업체들이 주로 들어온다는 얘기입니다. 경기가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가장 먼저 움직이는 이들입니다. 게다가 한 번 들러본 이는 아시겠지만, stx 조선소가 있는 진해 죽곡동 일대는 완전 죽은 땅입니다. 사람 살 데가 못 됩니다.

stx, 공해 퍼뜨리기와 도둑질과 윽박지르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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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수정만 주민들의 반대 운동 모습

stx가 대동조선이던 시절, 진해 죽곡동 주민들은 한 해 넘게 동네를 이전해 달라고 싸웠습니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밤낮없이 터져 신경쇠약에 걸린 이가 여럿이라 했습니다. 쇳가루가 날려 빨래도 널지 못할 지경이고 천식 같은 기관지 계통 질병이 다른 바닷가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쇳가루뿐만 아니라 페인트 가루도 억수로 날려, 새 자동차가 하루이틀만에 누더기가 되기도 하는 땅입니다. 하물며 본사가 이런데, 협력업체가 주로 있는 작업장이 어떨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업이 안고 있는 한계입니다. 방진막(防塵幕)을 설치하면 되지만, 돈이랑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나라 자본은 절대 그리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름에는 너무 더워 장시간 작업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낮에는 가리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하지만, 감시하는 눈이 뜸한 밤에는 아예 걷어버리기 일쑤입니다.

stx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심한지도 모릅니다. 공장 둘레 공해 상황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의 stx 유치가,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히자, 사기꾼이나 써먹을 법한 수법으로, 수정만 입주 포기하고 중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알만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중국은 사업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협박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이들은 중국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것 말고 한 가지 보기만 더 들겠습니다. 법원에 가 있는 사건입니다. 선박용 디젤엔진이나 해양.산업플랜트 생산을 하고 있는 stx중공업 얘기입니다. 남의 기술을 훔쳐 쓰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8년 3월 18일 두산중공업 전직 간부 13명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stx중공업에 취업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이들 13명은 두산중공업에서 중역 등으로 오랫동안 일해 오다가 그만두고 곧바로 stx중공업에 들어갔습니다.

재판부는 “두산중공업은 담수화와 발전 사업 분야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정보를 영업비밀로 관리해 왔고 이들 전직 간부들은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제3자에게 유출하지 않기로 약속한 적이 있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 6월 stx중공업이 담수화와 발전 설비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직 경영 기술 중요 자료 확보를 위해 이들 두산 전직 간부를 채용한 것 같고 이들은 급여나 처우에서 전직할 까닭이 없었음에도 바로 모두 옮겨갔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이들 13명 가운데 일부가 포함된 5명은, 두산중공업의 바닷물 담수화 설비사업 원천기술과 업무상 기밀 따위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빼돌린 뒤 stx에 건넨(영업비밀누설 등) 혐의로 형사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이 같은 정황을, stx그룹을 대표하는 회장인 강덕수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런 싸가지 없는 기업에게, (대부분 매립이 됐다고는 하지만) 수정만 생활 환경을 맡겼을 때 깨끗하게 지켜지리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본의 속성을 저급한 수준에서 보여주는 표본입니다. 지금은 다급하니까 이리 하지만 나중에 생태 망가뜨리지 않고 팽개치지도 않는다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 뒷감당을, 황철곤이 시장으로 있는 마산시가, 어떻게 하려고 저리 날뛰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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