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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해인사에 들렀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이 주관한 합천 블로거 탐방 일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홍류동 소리길 걷기에 앞서 해인사에 가본 것입니다.
걸음이 보경당 앞에 머물렀는데, 들머리에 "김아타 '얼음 불상'" 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장경천년문화축전의 해인아트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아타는 예전에 얼핏 듣기로 우리나라 보다는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 더 알아주는 독특한 조각가입니다.
얼음을 조각해 상을 만들고 그것이 녹아내리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통해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거나 말거나 한다는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한 번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기서 뜻밖에 마주쳤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기사를 통해 이런 전시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자세히 읽지는 않았기에 그것이 해인사 법당에서 열릴 줄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아무 망설임없이 성큼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거의 다 녹아 없어지고 부처님 무릎이나 발목에 해당함직한 부분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뒤쪽에 있는 금빛 불상은 그대로 온전했습니다만.
얼음이란 원래 고정된 형상이 없는 물이 어는 바람에 형상을 얻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조건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또 아닙니다. 형상만 바뀌었을 뿐 존재는 그대로 한다고 봐야 맞습니다.
이것은 제가 알기로는 석가모니께서 오랜 세월 수행을 통해 깨친 진리의 핵심입니다.
"형상이란 그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있는 형상에 매이는 것도 어리석음이지만 형상이 없다고만 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다, 세상만물은 모두 '있는 그대로'일 따름이니 그런 것에 이런저런 의미를 매기고 거기에 다시 매이는 것은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는 법이다."
물론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뜻 그대로가 아니고 제가 나름대로 깜냥껏 짚어본 것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원래 얼음 불상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버리고 바닥에 조금만 남은 그런 모습이 제게는 감흥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없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형상에 매일 때는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형상을 지우고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냥 거기에 그것이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형상이 녹아 사라지고 얼음이 물이 되고 다시 공기 속으로 올라가 또다른 비나 눈 같은 형상으로 돌아오니까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기 있던 얼음부처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녹아 없어지기만 했을까요? 사람들이 부처님 진신사리에 현혹되듯이, 부처님 녹은 물을 금지옥엽으로 여기며 가져가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불교의 탑이라는 물건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서 만든 물건이라니, 그리고 그런 모심은 또 사람 마음의 작용임이 분명한 노릇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그게 뭐 어떻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돌아나와 걸음을 옮기다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한 번 더 들여다 봤습니다. 뒤편 금색으로 빛나는 불상을 배경으로 삼아 텅 비어 있는 얼음 부처 있던 공간이 무슨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김훤주라는 사람 마음의 작용이고 거기서 무엇이라도 하나 느끼고 싶은 욕심과 집착이겠지요.
어쨌거나 좋았습니다.^^
김훤주
걸음이 보경당 앞에 머물렀는데, 들머리에 "김아타 '얼음 불상'" 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장경천년문화축전의 해인아트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아타는 예전에 얼핏 듣기로 우리나라 보다는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 더 알아주는 독특한 조각가입니다.
얼음을 조각해 상을 만들고 그것이 녹아내리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통해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거나 말거나 한다는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한 번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기서 뜻밖에 마주쳤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기사를 통해 이런 전시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자세히 읽지는 않았기에 그것이 해인사 법당에서 열릴 줄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녹아내리고 있는 얼음불상. 9월 26일 모습입니다. 해인아트프로젝트 사진.
아무 망설임없이 성큼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거의 다 녹아 없어지고 부처님 무릎이나 발목에 해당함직한 부분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뒤쪽에 있는 금빛 불상은 그대로 온전했습니다만.
9월 29일 찾아갔을 때 얼음 불상.
얼음이란 원래 고정된 형상이 없는 물이 어는 바람에 형상을 얻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조건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또 아닙니다. 형상만 바뀌었을 뿐 존재는 그대로 한다고 봐야 맞습니다.
이것은 제가 알기로는 석가모니께서 오랜 세월 수행을 통해 깨친 진리의 핵심입니다.
"형상이란 그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있는 형상에 매이는 것도 어리석음이지만 형상이 없다고만 하는 것도 어리석음이다, 세상만물은 모두 '있는 그대로'일 따름이니 그런 것에 이런저런 의미를 매기고 거기에 다시 매이는 것은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는 법이다."
물론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과 뜻 그대로가 아니고 제가 나름대로 깜냥껏 짚어본 것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원래 얼음 불상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버리고 바닥에 조금만 남은 그런 모습이 제게는 감흥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없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형상에 매일 때는 있음과 없음의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형상을 지우고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냥 거기에 그것이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형상이 녹아 사라지고 얼음이 물이 되고 다시 공기 속으로 올라가 또다른 비나 눈 같은 형상으로 돌아오니까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기 있던 얼음부처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녹아 없어지기만 했을까요? 사람들이 부처님 진신사리에 현혹되듯이, 부처님 녹은 물을 금지옥엽으로 여기며 가져가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불교의 탑이라는 물건도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서 만든 물건이라니, 그리고 그런 모심은 또 사람 마음의 작용임이 분명한 노릇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그게 뭐 어떻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돌아나와 걸음을 옮기다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한 번 더 들여다 봤습니다. 뒤편 금색으로 빛나는 불상을 배경으로 삼아 텅 비어 있는 얼음 부처 있던 공간이 무슨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김훤주라는 사람 마음의 작용이고 거기서 무엇이라도 하나 느끼고 싶은 욕심과 집착이겠지요.
어쨌거나 좋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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