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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 카센터에 들렀다가 이런 그림을 봤습니다. 어쩌면 글이라고 해야 될 것 같기도 한데, 한자로 참을 인(忍)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에 더해 왼쪽 옆에는 세로로 무인불승(無忍不勝)이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참음이 없으면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랍니다. 승이 있으니 따라서 패(敗)도 있게 마련인지라 여기가 바로 승패의 세계인 모양입니다.
물론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한 순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을 추슬러 어떤 상황에서든 제대로 맞서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겠지요.
어쨌거나 신기해 보여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고 끄집어내어 보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반 서울 있을 때 얘기인데 그 때는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버스 정체가 아주 심했습니다.
제가 당시 20대 초반이었는데도 두 시간 넘게 이런 버스를 타고 가면 녹초가 되곤 했었는데, 이 날도 버스 손잡이에 매달린 채 무심하게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손놀림이 들어왔습니다.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운전대에 대고 꾹꾹 눌러쌓는데, 처음에는 무엇 하는지 몰랐으나 한참을 보니 바로 참을 인(忍)를 되풀이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가 마음이 참 답답한가 보구나, 저렇게 글자를 씀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 여유를 벌 수 있기도 하구나 여겼더랬습니다.
다시 그러면서, 여기 카센터에서는 저렇게 써놓은 참을 인(忍)자 마흔두 개를 바라보면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벌 수도 있겠구나,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참음은 임시 방편밖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아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한 번 거꾸로 해 봤습니다.
화 나고 마음이 답답하고 해서 참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원인은 여럿입니다. 세상 탓일 수도 있고 남 탓일 수도 있고 자기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자기 마음이 억눌러 참아야 할 정도로 격동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이 말이 세상을 바꾸는 데 애를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는 읽지 말아 주시기를!) 그리고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무인불승(勝)을 거꾸로 새기는 것입니다. 나아가 무인불성(成)까지 만들어내어 그 뜻일랑 뒤집어 새기는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이기려고 하지 않으면 참을 필요조차 없다", "이뤄야 한다는 마음을 지우면 참을 필요조차 없다". 승리와 성공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 매이면 애가 타고 서둘러지고 샘도 나고 감정도 출렁거리게 됩니다.
이겨야 한다, 나아가 무엇이든 이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거나 버리면 화도 없어지고 답답함도 없어지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자기 감정을 애써 눌러 참을 까닭이 있을까요?
어렵겠지만, 내친 김에 이 승(勝)과 성(成)을 조금씩이나마 마음에서 지워보겠습니다. '만인에 대한 무한 경쟁'이라는 지금 우리 시대의 극악한 상황을 완전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김훤주
그에 더해 왼쪽 옆에는 세로로 무인불승(無忍不勝)이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참음이 없으면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랍니다. 승이 있으니 따라서 패(敗)도 있게 마련인지라 여기가 바로 승패의 세계인 모양입니다.
물론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한 순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을 추슬러 어떤 상황에서든 제대로 맞서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겠지요.
어쨌거나 신기해 보여서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고 끄집어내어 보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반 서울 있을 때 얘기인데 그 때는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버스 정체가 아주 심했습니다.
제가 당시 20대 초반이었는데도 두 시간 넘게 이런 버스를 타고 가면 녹초가 되곤 했었는데, 이 날도 버스 손잡이에 매달린 채 무심하게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 눈에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손놀림이 들어왔습니다.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운전대에 대고 꾹꾹 눌러쌓는데, 처음에는 무엇 하는지 몰랐으나 한참을 보니 바로 참을 인(忍)를 되풀이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가 마음이 참 답답한가 보구나, 저렇게 글자를 씀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 여유를 벌 수 있기도 하구나 여겼더랬습니다.
다시 그러면서, 여기 카센터에서는 저렇게 써놓은 참을 인(忍)자 마흔두 개를 바라보면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벌 수도 있겠구나,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참음은 임시 방편밖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아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한 번 거꾸로 해 봤습니다.
화 나고 마음이 답답하고 해서 참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원인은 여럿입니다. 세상 탓일 수도 있고 남 탓일 수도 있고 자기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자기 마음이 억눌러 참아야 할 정도로 격동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이 말이 세상을 바꾸는 데 애를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는 읽지 말아 주시기를!) 그리고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나'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무인불승(勝)을 거꾸로 새기는 것입니다. 나아가 무인불성(成)까지 만들어내어 그 뜻일랑 뒤집어 새기는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이기려고 하지 않으면 참을 필요조차 없다", "이뤄야 한다는 마음을 지우면 참을 필요조차 없다". 승리와 성공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 매이면 애가 타고 서둘러지고 샘도 나고 감정도 출렁거리게 됩니다.
이겨야 한다, 나아가 무엇이든 이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거나 버리면 화도 없어지고 답답함도 없어지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자기 감정을 애써 눌러 참을 까닭이 있을까요?
어렵겠지만, 내친 김에 이 승(勝)과 성(成)을 조금씩이나마 마음에서 지워보겠습니다. '만인에 대한 무한 경쟁'이라는 지금 우리 시대의 극악한 상황을 완전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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