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습지가 생명의 보고이기만 할까?

김훤주 2011. 10. 24.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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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습지-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가장 활발한 땅

습지는 6m 이하로 언제나 또는 때때로 물에 젖어 있는 땅을 이릅니다. 람사르협약에 따른 규정입니다. 람사르협약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중요한' 습지를 보전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습지가 '물새 서식지'로서 제 노릇을 하려면 다른 많은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먹을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물새는 물고기나 벌레 따위도 먹고 식물 열매나 뿌리 따위도 먹습니다.


물새가 제대로 살려면 이런 것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많은 데가 습지라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습지에는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말로 '종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생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갑니다.

10월 22일 청소년들과 함께 노닐었던 창원 동판저수지.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우포늪(소벌)의 한 부분인 사지포(모래벌). 청소년들과 같은 날 걸었습니다.


잠자리 애벌레나 반딧불이에서부터 삵이나 황조롱이에 이르기까지, 물옥잠, 수련, 가시연, 어리연, 줄, 부들, 개구리밥, 말즘, 나사말, 억새, 갈대, 버드나무 등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명이 있습니다.

오경환 경상대학교 교수 등등이 2004년 벌인 조사에서 우포늪 물 또는 물가에 사는 식물의 가짓수가 350을 넘는다고 나왔습니다. 여기에 동물과 물가 아닌 데 사는 식물을 더하면 1000가지를 훌쩍 넘어갑니다.


이런 생명의 탄생은 생명의 소멸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습지는 수많은 생명들이 소멸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소멸하는 것들은 썩어서 땅으로 돌아가고 물로 돌아갑니다.


습지는 다른 데보다 훨씬 더 땅이 기름집니다. 이렇게 기름진 까닭은 숱한 생명들의 사멸에 있습니다. 사멸한 생명들이 유기물질로 돌아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유기물질들이 바로 생명들이 싹틀 수 있게 하는 영양분이 됩니다.


이런 사멸이 없다면 물은 맹물이 되고 땅 또한 척박한 상태로 남습니다. 나무가 썩고 풀이 썩고 잎이 썩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물고기가 죽어서 썩고 새가 죽어서 썩고 벌레가 죽어서 썩고 그렇게 되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판저수지 둑길을 걷고 있는 청소년들. 물웅덩이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생명의 탄생과 생명의 소멸은 맞닿아 있습니다. 붙어 있습니다. 소멸이 없으면 탄생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한 번 탄생했으니까 언제 어디서든 한 번은 소멸하게 돼 있습니다.


습지는 그래서 생명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죽음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습지는 그러니까 생명의 소멸과 탄생이라는 순환이 가장 활발하게 잘 일어나는 곳입니다.

2. 습지-원래는 사람과도 가까운 존재

이런 습지가 옛날에는 사람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도관이 길어진 만큼 사람의 삶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같은 옛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물가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았습니다. 먹을거리와 이동 수단과 안전을 물과 습지가 마련해 줬기 때문입니다.


물과 물을 이어주는 강이나 바다는 물고기 같은 먹을거리를 줄 뿐만 아니라 이쪽 사람과 저쪽 사람을 이어주기도 했습니다. 옛날 산이나 들판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무서운 짐승도 많았고 수풀도 잔뜩 우거져 길을 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철기 시대 접어들어서도 사람들은 물가에 살았습니다. 전통 마을 입지를 결정하는 요건 가운데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에서 땔감과 먹을거리를 챙깁니다. 물은 사람살이에 없어서는 안 되기에 언제나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배산임수를 하면 또다른 이점이 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가도 마찬가지이고 너른 평야에 가도 마찬가지지만 곡식을 심어 기르는 농토는 언제나 물줄기를 끼고 있습니다. 농토로 가꿀만한 땅이 물줄기 둘레에 가장 많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은 물과 습지가 사람과 가까이 있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고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든지 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먹을거리는 여전히 습지 또는 습지 가까운 데서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돗물을 받아서 먹거나 쓰지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습지는 사람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생수는 어떻습니까? 지하수를 뽑아 만드는 생수는 생명의 근원인 물이 어디서 오는지 사람으로 하여금 까먹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수 산업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폐해도 적지 않습니다. 피터 글렉이라는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퍼시픽 연구소 소장인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임은 분명합니다.


"미국에서는 날마다 1초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이 생수병 마개를 열며 그 병들은 이내 쓰레기가 된다. 하루에 8500만 병 한 해에 300억 병 생수가 소비자에게 100억 달러 가까운 지출을 요구한다. 미국 소비자가 생수 1병을 마시는 동안 전세계적으로는 4병이 소비되는 현실이다."

3. 습지와 사람, 이어짐과 나뉨

이렇듯 습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물과 뭍이 이어져 있고 식물과 동물이 이어져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과 생명의 소멸이 이어져 있고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습니다. 결국 하나입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쑥부쟁이는 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포늪 창산다리에서 사지포제방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 또한 그 자체로 보면 이어져 있습니다. 소멸과 탄생이 이어져 있고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돼야 다시 어린아이가 태어납니다.


사람은 물론 그렇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의 작용 때문입니다. 사람은 종종 이것과 저것을 구분합니다. 이를테면 죽음과 삶을 구분합니다.

죽음을 삶과 달리 구분해서, 사람이 죽으면 그 주검을 자연에 그대로 돌려보내지 않고 파묻거나 태우거나 합니다.(지금은 이런 일이 너무 일반화돼 있어서 다른 방법은 생각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구분이 사람 자체에게뿐만 아니라 자연에게까지 적용되곤 합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우포늪 보전지역 지정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포늪에 가서 창산다리에서 사지포 제방까지 3km남짓을 걸을 것입니다.


우포늪과 우포늪을 만들어낸 토평천은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우포늪과 토평천을 창산다리 위아래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아래쪽은 생태계 보전지역이고 위쪽은 아닙니다.


창산다리 위쪽이 더러워지면 그 아래쪽도 당연히 더러워집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구분해서 관리합니다. 또 생태계 보전지역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지만 아닌 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그런 데 매이지 않고 삽니다.


사람들이 우포늪이라 통칭하는 거기는 사실 네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포(소벌)와 목포(나무개벌)과 사지포(모래벌)와 쪽지벌이 그것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구분돼 있지 않았지만 사람이 제방을 쌓는 등으로 해서 구분됐습니다.


이런 구분은 인식의 역전을 낳기도 합니다. 주남저수지가 대표적입니다. 주남저수지 둘레 지도를 눈여겨보시면 알 수 있듯이, 원래 여기는 낙동강이 평지를 만나면서 확 넓어진 자연 습지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들어서 제방을 쌓고 농경지를 만들면서 주남저수지 동판저수지 산남저수지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일대가 인공저수지인 것처럼 사람들이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에 따라 저수지 바깥쪽은 원래부터 습지가 아니었던 것처럼 인식되고 그러면서 개발은 더욱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우포늪 제방.


4. 가까이 있는 작은 습지의 가치

오늘 우리는 우포늪과 동판저수지를 둘러봅니다. 둘러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알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크든 작든 습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린다면, 우포늪이나 동판저수지처럼 커다란 습지만 소중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개울이나 도랑이 소중합니다. 하다 못해 물웅덩이조차도 소중합니다. 


 그런 도랑이나 개울, 물웅덩이가 흐르고 흘러야 우포늪이나 동판저수지 같은 그럴 듯한 습지가 있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이뤄지는 곳이어서 소중합니다. 가까이 있는 조그만 습지가 잘 보전돼야 멀리 있는 커다란 습지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김훤주
※ 청소년 잡지 <푸른 글터>가 마련한 10월 22일 환경 기행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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