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창녕 장날에 거기 시장을 찾았습니다. 소벌(우포늪)에 대해 원고 한 꼭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슨 느낌이 있는지 한 번 둘러보려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왼쪽에서 춤추는 청년이랑 오른쪽 잠자는 주인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소벌은 장마에 잠겼던 자취가 뚜렷했습니다. 물풀들에는 개흙이 묻어 있었고 둘레 배수장 같은 건물 벽에는 2m도 더 되는 높이에 개구리밥 같은 물풀이 말라 붙어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다니며 사진도 좀 찍고 아이들 물에 들어가 노는 모습도 좀 담고 한 다음 돌아나왔습니다. 점심 때 치고는 좀 늦었습니다. 혼자라서 밥집에 들어가기가 궁상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냥 갈 수 없겠다 싶어서 장터 국밥집에 스며들었습니다.
수구레 국밥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방면 옥야에 가게가 있는데 그 가게에서 창녕 장날마다 여기로 나와서 천막을 치고 국밥과 국수를 팝니다. 수구레는 소 가죽에 붙은 살점이라고 합니다. 다른 데서는 보기 어려운 먹을거리인데다 맛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막걸리 한 잔과 더불어 국밥을 먹고 있는데 이런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년 하나가 노래 테이프를 파는 트럭 좌판 앞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댑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랑곳없이 춤을 춥니다.
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저것은 막춤입니다. 리듬이나 박자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 정형이 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되는대로 몸을 흔들어대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입가 웃음을 머금고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말을 걸기도 합니다. 손을 흔드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지나가다 돌아와서는 청년 손에다 무엇인가 쥐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타고 가던 자전거에서 내려서 바라봅니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 뒤통수에는 '조PD짱' 뭐 이렇게 읽히도록 머리를 깎아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 곡식을 파는 할머니한테 물어봤더니 "정신 지체가 좀 있는데 와서 저렇게 한 지는 꽤 됐다"고 했습니다. 언제부터 왔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셨습니다.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별 생각 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이래저래 장날 풍경을 구경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청년이 노래 테이프 파는 주인한테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없지 않기에 들었던 생각입니다.
정신 지체가 있는 청년을 데리고 있으면서 여기저기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저렇게 몸을 흔들게 하고는 겨우 밥 정도만 챙겨 먹이고는 장사에 악용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앵벌이짓을 시키는 '정신 멀쩡한 인간들'이 간혹 신문·방송에 나오곤 하기 때문에 든 생각입지요.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 청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래 테이프 파는 주인에게 갔습니다. 아까 그 청년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집에 갔다"고 대답했습니다. 같이 다니지 않느냐고, 데리고 다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웃으면서, "장애가 좀 있는데 집이 영산인 모양이라. 장날마다 와서 이렇게 놀다 가지.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즐거운 인생이야." 했습니다.
이어서 "영산에서 창녕까지 올 때 갈 때 다 걸어다닌다더라."고도 했습니다. 영산~창녕은, 줄잡아도 10km는 되는 거리입니다. "그렇게 춤을 추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한테 돈 푼 좀 받고, 그렇게 사는 모양이지."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그 주인을 두고 했던 '의심'이 민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저 청년이 지금 괴로워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나름 즐거운 인생일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측은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할 뿐이겠지.
그렇다면, 저 청년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인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태어났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한 바탕 인생이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춤추는 저 청년 인생이나, 청년한테 춤추는 무대 제공해 주는 노래 테이프 주인의 인생이나,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제 인생이나 높고 낮음 없이, 크고 작음 없이, 많고 적음 없이 다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독재자 박정희가 1965년 만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랐습니다. 군데군데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안으로……을 하고, 밖으로 ……을 해야 할 때다" 뭐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교과목 가운데는 '시련과 극복'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이런저런 시련이 있었고 선조들은 그것을 잘 극복해 왔다. 우리에게도 이런저런 시련이 있지만 선조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잘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고, 그렇다면 그런 사명이 있음을 느끼고 깨달아야 마땅한데, 그런 사명감이 없이 사는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니다. 뭐 이렇게 논리적으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니 생각해 보지 않아도, 사람이 무릇 태어날 때 어떤 사명을 띤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냥, 태어났을 뿐입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나기 싫은데도 억지로 태어난 것 또한 아닙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아갈 따름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 원래부터 주어진 사명이랄까 목표라는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것은 사람이 지어낸 것일 따름이고 그런 것에 메이거나 말거나 또한 사람의 일일 따름입니다.
그런 굴레에서 한 순간 벗어나 바라보면 사람은 다 같다고 들었습니다. '태어난다, 산다, 죽는다.' '다만 태어나는 모습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죽는 모습이 다르다.' 이처럼 본질은 같고 무늬만 다를 뿐이니, 그 다름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못하겠지요. 인간의 가치는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다 같다는 얘기입니다.
여태 보지 못했던 엉뚱한 장면을 보고, 여태 하지 못했던 생각을 뜬금없이 한 번 해 봤습니다. 창녕에 가는 걸음이 있으시거들랑, 여기를 한 번 찾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창녕 장날은 3일과 8일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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