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본 곳

창녕 옥천 골짜기 신돈 폐사지와 물놀이

반응형
창녕 옥천 골짜기가 아주 크고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깊은 맛은 있어서 여기 들어서면 여름이라도 공기 자체가 다르답니다. 옥천 마을 들머리 군내버스 종점에서 가파르지 않은 길을 오르느라 맺힌 땀방울이, 여기 물가에 앉으면 얼마 안 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3일 오전 10시 30분께 창녕 읍내 군내버스 터미널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1500원에 타고 10시 10분 즈음 옥천에 닿았습니다. 벌써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평일 아침나절인데도 사람이 곳곳에 박혀 있으니 지금이 한창 피서철이기는 한가 봅니다.

이쪽저쪽 펑퍼짐한 바닥이나 그늘 아래에는 이미 텐트들이 들어서 알록달록합니다. 물웅덩이에는 남녀노소 여러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고무공을 갖고 놀고 다른 녀석은 물총질을 하느라 바쁘답니다. 청년들은 웃통을 벗은 채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중년 여인네는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에 들어갔습니다.

위쪽에는 일가족이 자리잡은 모양인데, 부부는 물가에서 느긋하게 아이들을 지켜보고, 아이 하나는 얕은 물에서 자맥질을 합니다. 다른 아이는 건너편에서 몸통을 숙이고 다가오더니 어버이 가까운 앞에서 반두를 들어올리고는 잡힌 물고기가 있나 없나 두리번거립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더위 때문인지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들고 골짜기로 곧장 들어가 그늘을 찾아 자리를 깝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옥천 골짜기를 찾은 보람을 절반밖에 못 누립니다. 바로 옆에 옥천사 폐사지가 있고 멀지 않은 위쪽에 오래 된 관룡사가 있습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적당하게 흘리는 땀이 나쁠 리는 없을 것입니다.

들머리에서 걸어가다 커다란 주차장이 왼쪽에 붙어 있는 곳에서 길은 갈라집니다. 왼쪽은 화왕산으로 이어지는 등산길이고요, 오른편이 관룡사로 이르는 길이랍니다.

관룡사 가는 길은 양쪽으로 벚나무가 심겨 있어 풍성한 그늘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물이 흐르는 또다른 골짜기가 관룡사까지 동행해 주기에 땀이 났어도 청신한 바람이 곧바로 말려줍니다.

걷다보면 주차장으로 쓰이는 너른 자리가 나옵니다. 콘크리트 깔린 쪽으로 가는 대신 오른쪽 돌계단으로 가면 돌장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절간 영역을 알리고 삿됨을 쫓는다는데요, 작은 오른쪽은 할멈이고 상투를 튼 왼쪽은 영감이랍니다.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할멈 장승.

왼쪽에 있는 영감 장승. 상대적으로 우락부락합니다.


관룡사는 정문이 옆으로 나 있고 앞으로는 좁다란 돌계단과 석문이 있습니다. 대웅전과 약사전과 원음각 같은 건물도 그럴 듯하지만 뜨락에서 대웅전 뒤로 바라보는 풍경이 실은 더 그럴 듯하답니다. 대웅전 바로 뒤 솔숲도 좋고 멀리 바라보이는 병풍바위도 나쁘지 않습지요.

관룡사 정문 범종루 옆에 남녀 한 쌍이 있습니다.

관룡사 돌계단과 석문.

대웅전 뒤쪽 멀리에 병풍바위가 보입니다.

대웅전 뒤쪽 왼편에 있는 소나무숲입니다.


내친 김에 관룡사 서쪽 요사채 뒷길로 500m쯤 떨어진 중턱 용선대까지 가도 괜찮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석가모니 돌부처가 모셔져 있는데, 사통팔달 막히지 않은 데라 바람도 시원하고 동쪽과 남쪽 아래로 풍경을 내려다보는 눈맛도 꽤 좋습니다.

대웅전 오른편에서 약수를 한 모금 머금은 다음 되짚어 내려옵니다. 이번에는 옥천사 폐사지입니다. 화왕산 등산길과 관룡사 가는 길이 갈라지는 왼편 산자락에 있는 전봇대 바로 옆에 조그만 흙길이 있습니다. 여기로 접어들면 10~20m 거리에 옥천사 망한 절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제대로 망한 절터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절로 허물어지거나 해서 돌탑 석등 따위 석재가 층층이 쌓인 폐사지가 적지 않은데, 여기 이 절터는 아랫돌 위에 제대로 놓인 윗돌이 하나도 없을 정도랍니다. 석등 몸통으로 짐작되는 돌덩이는 뒤집어져 있고, 석등 받침돌에는 정에 쪼인 자국이 뚜렷하답니다.

망한 절터는 오른편 돌축대 위에 있습니다.

석등 받침. 오른쪽에 정으로 쫀 자취가 뚜렷합니다.


옥천사의 패망은 이 절 출신인 고려 시대 '신돈'과 관련돼 있습니다. 신돈은 1365~1371년 개혁을 추진하면서 전민변정도감을 만들어 억울하게 빼앗긴 토지와 강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돌리려 했습니다. 땅(田)과 사람(民)을 가려서(辨) 가지런히(整) 하려 한 것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반겼지만 권문세족들은 자기네 기득권을 빼앗는 신돈이 미웠겠지요. 신돈은 결국 1370년 왕의 신임을 잃고 실각한 다음 이듬해 처형당합니다. 권문세족들은 그러고도 모자라 이 절간까지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둘러보는 사이 솔바람 덕분에 땀이 다 식었습니다. 어쨌거나 돌아나와 앞쪽 가게에 들어가 '전통 약주' 한 통과 묵 무침 하나를 주문해 먹었습니다. 술 맛은 그저 그랬지만 묵은 부드럽고 맛이 은근했습니다.

오후가 되니 자가용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주차장도 골짜기도 '만차'가 돼 버렸습니다. 먹을거리 마실거리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배낭에 들 정도만 챙겨 군내버스 타고 나서면 이런 민폐를 끼치거나 스스로 고달픔을 불러들이지는 않겠지요. 놀다 쉬다 하다가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오후 2시 40분에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돌아나왔답니다.

김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