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날은 더웠답니다. 낮 더위는 '원래 그렇겠거니' 참았는데요, 밤이 돼도 더위가 수그러들지를 않았습니다. 물기가 잔뜩 밴 탓에 칙칙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미 나선 걸음입니다. 이럴 때는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조금씩 움직임으로써 땀이 비어져나올 빌미를 줄여야 한답니다.

8월 5일 오후 4시 30분 즈음, 진주성에 닿았습니다. 찜통더위에 나들이 하는 사람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 촉석루에 올랐더니 난간이 있는 가장자리를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다들 조금은 늘어져 있었는데, 난간이 아니라 가운데 기둥에 기대어 앉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땀을 식힌 다음 앞을 보니 젊은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나간 듯하고 아버지는 잠든 아이 몸통 위로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이기도 하고 어쩌면 무심하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정겹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바깥을 보면 밝은 가운데 나무들이 푸르게 빛납니다. 아직 햇볕에 지치지는 않은 모양이지요.

잠든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는 아이 아버지.

촉석루(남장대)에서 바라보이는 성 안 풍경. 나무들이 싱싱합니다.

조선시대 무관 복장을 한 이의 노력이 가상합니다. 얼마나 덥겠는지 생각만 해도 땀이 흐릅니다.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조금 오르막이라 최대한 움직임을 줄이고 느릿느릿 걷습니다. 박물관 안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차림새를 보니 다들 간편한 복장입니다. 당연히 신발도 갖춰 신지 않았습니다. 진주성 놀러 온 김에 구경까지 덤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진주성 바깥 날씨가 너무 더워서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박물관에 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실에는 아예 들어가지 않고 들머리 의자에 사람들이 죽 늘어 앉았습니다.

박물관 안쪽 모습. 전시실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쪽 긴의자에 앉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시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가 간편한 복장입니다.


박물관 위쪽 서문에는 호국사라는 절간과 창렬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다들 진주성과 임진왜란이랑 관련돼 있습니다. 어쨌거나 여기서 발길을 돌려 내려왔습니다.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진주성 정문 앞 '향토 음식 거리'에 있는 한 밥집에 들어가 칼치찌개를 주문해 소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바닥에 무 대신 감자를 깔아 끓였는데 감자가 맛이 괜찮습니다. 감자는 여름이 제철이고 무는 가을이 제철인 때문이겠지요.

7시 넘어 밥집을 나와 도로 오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무슨 잔치가 벌어지나 싶어 가 봤더니 진주청소년수련관의 제11회 청소년 동아리 축제였습니다.

야외광장에서 고만고만한 남녀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얘기를 하고 퍼포먼스를 해대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놀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으니 좋다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까 남자아이 여자아이 서로 말 걸고 하는 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를테면 '까대기'가 되겠는데, 여자아이가 먼저 적극 나서는 경우가 많아 보였습니다. 남자아이가 까탈을 부리고 여자아이가 달래는 모습도 띄었습니다.

진주성에 다시 들었습니다. 이미 어두워져 있습니다. 남강이 흐르는 남쪽 성벽을 따라 서문을 향해 걸거갑니다. 가다가 멈춰 불빛이 어리는 강물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진주 사람들은 남강 하나만으로도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흐르는 강물이 이런저런 쓰임새로 보탬과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편안한 풍경을 끊임없이 안겨준다는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머리가 차분해지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식습니다.

어느덧 서장대에 다달았습니다. 호국사와 충렬사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서문 못 미쳐 남강쪽으로 천수교 밤풍경을 바라보기 좋은 높은 자리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습니다. 바라보이는 천수교는 멀리 흐릿한 아파트 불빛을 배경삼아 다릿발과 난간 아래로 점점이 반짝이는 불빛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서장대에서 찍은 천수교 야경.


계단을 타고 성문을 나와 강가에 서니 새삼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다지 새뜻하지는 않지만 더위에 지친 뒤끝이다 보니 반가웠습니다. 바람을 받으며 천수교를 건너 둔치로 내려서는데, 밤중인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 더위가 식기를 기다려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옷차림을 보아 하니 그랬습니다.

물론 데이트를 하는 것 같은 남녀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다들 선남선녀가 되는 법, 밤중이라 얼굴이나 몸매가 한 눈에 가늠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니 저이들도 다들 멋지고 예쁘겠지 지레짐작을 해본답니다.

잔디를 밟는 감촉이 깔끄럽습니다. 맨발이 아닌데도 그랬습니다. 얼마쯤 가면 우거진 대나무도 만난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은편 진주성 밝은 불빛은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야경과 이렇게 동행하는 즐거움도 작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가면 밝게 빛나는 촉석루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데가 나옵니다. 그 오른쪽 아래에 의암이 있습니다. 논개가 왜장을 끼고 떨어져 순국했다는 곳입지요. 그런데 강물은 마냥 흐르기만 합니다.

삼각대 없이 찍은 탓에 사진이 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진주교와 맞닥뜨립니다. 진주교를 다시 건너면 진주성과 중앙시장과 시외버스터미널이 나옵니다. 반대편으로 건널목을 건너면 얼마 가지 않아 여러 많은 시내버스들이 달려와 멈춰서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밤 9시 30분 조금 덜 돼 여기 서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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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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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배 2011.08.19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촉석루 돌담아래에서 우리 아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
    부모님과 함께 의암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